여행에서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는 현지 음식을 경험하는 것이지만, 중국 여행에서는 종종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기도 한다. 특히 함께 간 일행 중에 중국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디서 어떻게 식사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그렇다고 한식만 고집하며 현지의 다양한 맛을 놓치기에는 너무 아깝다.
이 포스팅에서는 중국 음식이 왜 진입장벽이 높은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부담을 줄이면서도 현지 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비교적 무난하고 입맛에 맞기 쉬운 메뉴들을 소개한다.
중국 음식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는 ‘기름짐’이다. 볶음(炒)·튀김(炸) 등 고열에서 빠르게 조리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면서 식용유 사용량이 한국보다 훨씬 많다. 예컨대 중식에서는 웍에 재료를 덜어내는 속도만큼 기름도 넉넉히 부어야 불맛(鍋氣)을 살린다고 알려져 있다.
게다가 돼지비계나 오리 껍질 등 지방이 많은 부위를 과감히 사용하기 때문에 한식과는 차원이 다른 기름진 요리들이 많다. 대표적인 홍샤오로우(红烧肉)는 살코기보다 비계 비율이 높아 한국인에게는 쉽지 않은 ‘헤비 메뉴’로 통한다.
또한 중국 요리에서는 라유(辣油)나 마라소스 같은 기름 기반 소스를 즐겨 쓰는데, 향신료를 기름에 우려내어 색·향·맛을 모두 기름에 흡수시키는 방식이다. 심지어 맑은 국물이 드문 탕(湯) 요리도 기름층이 한 겹씩 떠 있는 경우가 많아, ‘국물조차 기름으로 느껴진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튀김 재료를 한 번 기름에 데친 뒤, 다시 웍에 담아 볶거나 끓이는 ‘기름에 데치는(滑)’ 방식도 기름짐을 증폭시킨다. 꿔바로우(鍋包肉)는 바삭한 튀김옷 위에 달콤 새콤 소스를 부어 다시 볶고, 탕수육·깐풍기는 튀긴 고기를 매콤한 기름 소스에 한 번 더 담근다.
이런 기름진 음식은 한국인에게 부담스러울 뿐만 아니라 여행 중에 소화불량, 속 쓰림을 유발하기도 한다. 특히 한식을 자주 먹지 않는 어르신이나, 평소 기름진 음식에 약한 사람이라면 ‘중국 음식은 부담스럽다’는 인상을 받기 십상이다.
중국 음식이 ‘톡 쏘는’ 느낌을 주는 건 향신료 문화가 한국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요리에는 마늘·생강·된장 등으로 재료 본연의 잡내를 제거하는 방식이 발달했지만, 중국에는 팔각(八角), 정향(丁香), 화자오(花椒), 쯔란(孜然)처럼 우리에게는 생소한 향신료로 잡내를 덮는 문화가 있다. 예컨대 마파두부 같은 요리에서는 향신료를 곱게 갈아 듬뿍 뿌리기 때문에 향신료만 건져먹을 수도 없다.
중식의 많은 향신료 중에서도 ‘마라(麻辣)’ 문화는 독특하다. 화자오의 산초 성분은 혀를 저릿하게 마비시키는 ‘麻(마)’ 효과를 내고, 고추가 주는 ‘辣(라)’ 자극은 얼얼한 매운맛을 선사한다. 한국인이 흔히 느끼는 ‘매운맛’과 완전히 달라, 한 숟갈만 먹어도 입안 전체가 얼얼해져 당황하기 쉽다.
또한 고수(香菜) 등 향이 강한 채소를 곁들이는 것도 문제다. 한국인 중에는 고수를 ‘비누 냄새’나 ‘풀 냄새’로 느끼는 경우가 많아, 고수향이 나면 아예 입을 대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중국 음식에는 한국에서 ‘특수 부위’라고 부르는 내장·기름 부위가 많이 활용된다. 소 창자, 돼지껍데기는 물론이고 돼지 귀, 오리 혀, 선지(血豆腐)까지 식재료가 된다. 이런 재료는 씹는 촉감이 낯설고 특유의 향이 있어,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비위가 약해진다’는 인상을 주기 십상이다.
한편 해산물 요리에서는 민물고기를 즐겨 쓴다는 점도 특징이다. 잉어·메기·붕어 등 민물고기는 ‘흙내’가 진하게 배어 있어, 바닷고기만 익숙한 사람에겐 생선 요리는 ‘냄새나는 음식’으로 오해받는다.
또한 소 힘줄·건조 육류(干锅)·말린 오리 껍질처럼 질기거나 단단한 식감을 지닌 식자재도 많이 사용하는데. 노년층이나 치아가 약한 사람은 자칫 ‘턱이 아파서 못 먹겠다’고 얘기할 정도다.
마지막으로 취두부(臭豆腐)·피단(皮蛋)처럼 냄새 자체가 강한 발효 음식은 ‘냄새’를 맡는 순간부터 식욕을 잃게 만든다. 특히 취두부 같은 경우는 가게 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지독한 냄새가 나서 발길을 돌리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처럼 지나친 기름기, 강한 향신료, 낯선 식자재는 중국 음식의 큰 진입장벽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진입 장벽을 우회하여 실패 확률이 낮은, 부담 없는 메뉴를 추천해보고자 한다.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국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냉면이 꼽힐 것이다. 그만큼 중국에서는 냉면 가게가 많은데, 중국 동북지방, 특히 연변(延边) 일대의 냉면은 한국식 냉면과 비슷하면서도 중국 현지의 특징을 두루 갖추고 있다. 투명한 소고기 육수에 담백한 맛을 살리고, 면발은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워 한국인의 소화에도 무리가 적다. 기름기가 거의 없어 속이 편하고, 여름철 무더위를 식히는 데도 제격이다.
냉면 위에는 삶은 계란·오이채·편육 등이 고명으로 올라와 한국식 재료 구성과 흡사하다. 다만 한국 냉면보다 면발이 굵고, 육수에 향을 더하기 위해 간장·식초·겨자를 조금 섞어 새콤달콤한 맛을 낸다. 덕분에 ‘낯설지만 거부감 없는’ 느낌을 준다. 물론 모든 냉면집이 연변식을 표방하는 건 아니고 찾아보면 완전 한국식 냉면집도 많다.
특히 조선족이 많이 사는 북방 지역에는 동포가 운영하는 식당이 많은데, 한국어 메뉴판이나 한식 반찬이 기본 제공되는 곳도 적지 않다. 여행 중에 중국의 무거운 요리를 피하면서도 ‘중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을 경험하고 싶다면, 냉면도 나쁘지 않다.
쓰촨(四川)이 화자오 중심의 마라맛이라면, 후난(湖南)은 청양고추 스타일의 매운맛이 특징이다. 화자오의 얼얼함 없이, 매운 고추 본연의 칼칼함이 한국인의 미각에 더 익숙하다.
대표 메뉴인 辣椒炒肉(라자오차오로우, 고추 돼지고기볶음)은 제육볶음처럼 돼지고기와 고추를 한데 볶아내는데, 마늘·대파·고추의 아삭한 조합이 입안을 시원하게 자극한다. 마치 한식의 제육볶음을 중식 스타일로 만든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약간 기름기가 많기는 하다)
다만 마늘·고추를 걱정될 정도로 때려 붙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 사람은 ‘자극이 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 이럴 땐 “약간 맵게(小辣 또는 微辣)”로 주문하면, 비교적 순한 버전을 맛볼 수 있다.
후난요리는 한국인의 매운맛 경험을 살리면서도, 중국 남부의 식문화를 은근히 느껴볼 수 있는 중간 지대 메뉴다. 부담 없으면서도 ‘중국적 매운맛’을 경험하고 싶다면 후난요리를 추천한다.
중국식 샤브샤브는 크게 홍탕(마라탕)과 백탕(맑은 육수)으로 나뉜다. 마라탕은 향신료와 기름이 잔뜩 들어가 부담이 크지만, 백탕은 맑은 육수에 재료의 맛을 그대로 살린다. 중국 음식의 향신료·기름짐이 걱정된다면, 백탕을 선택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특히 베이징의 대표 요리인 涮羊肉는 백탕 화구로 쓰이는 구리 냄비(铜锅)가 독특하다. 화구가 예쁘고 열 보존이 좋아 시각적·문화적 체험 요소도 훌륭하다. 화구 가장가리에서 끓는 맑은 국물에 얇게 썬 소고기·양고기를 살짝 데쳐 먹으면, 고소한 감칠맛을 즐길 수 있다. 취향에 따라 버섯·두부·청경채 같은 익숙한 채소를 중심으로 재료를 골라 담으면 소화 부담도 적다.
샤브샤브의 또 다른 장점은 ‘양념장’이다. 기호에 따라 고기 양념장으로 참기름 + 마늘 소스를 가볍게 찍어도 되고 중국인들이 애호하는 참깨 소스도 먹어볼 만하다.
중국 현지인의 ‘집밥’이라고 할 수 있는 가정식(家常菜)은 비교적 향신료의 사용이 적고 간장·소금·마늘·설탕 같은 기본양념 중심으로 조리된다. 이는 맛이 순하고 부담이 적어, 특히 입맛이 민감한 사람들이 먹기 좋다.
대표 메뉴로는 西红柿炒鸡蛋(토마토 계란볶음), 清炒青菜(청경채 마늘볶음), 土豆丝(감자채 볶음) 등이 있다. 토마토 계란볶음은 토마토의 새콤함과 계란의 부드러움이 조화를 이루고, 감자채 볶음은 식감이 아삭해 입맛을 돋운다. 모두 채소 위주라 속이 편안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정식은 호텔 조식 뷔페나 주변 식당에서도 자주 볼 수 있어 접근성도 높다. “집에서 먹는 음식“이라는 의미 그대로, 여행 중 거부감 없이 한 그릇 뚝딱 비울 수 있는 메뉴다.
볶음면은 국물이 없어 향신료가 국물에 녹아드는 부담이 거의 없다. 중국 중화면은 물론 쌀국수(米粉), 칼면(刀削面) 등 면 종류도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다.
추천 요리로는 삶은 면을 달걀·파·양배추 등을 함께 볶은 鸡蛋炒面(계란 볶음면)이나 다양한 야채를 함께 볶는 蔬菜炒面(야채 볶음면)은 적어도 향으로는 깔 게 없다.
1인 식사로도 부담 없어 혼자서 여행 중 메뉴 선택이 어려울 때 간편하게 즐길 수 있다. 반찬 없이도 한 그릇으로 끼니를 떼울 수 있어, 바쁜 일정에 점심으로 먹기에 제격이다.
小米粥(율무죽), 玉米粥(옥수수죽), 南瓜粥(호박죽) 등 중국식 죽류는 기름기가 거의 없어 소화 부담이 ‘0’에 가깝다. 간도 소금·설탕을 최소한으로 사용해 자극이 없고, 한국에서 먹는 죽과 같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에 부담 없이 먹기에 좋다.
이 때문에 죽은 호텔 조식 뷔페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식 죽보다는 다소 묽은 감이 있는데, 원래 중국식 죽은 삶은 땅콩, 계란, 청경채 무침, 샤오빙(烧饼) 같은 담백한 반찬과 곁들여 먹는 문화다. 이렇게 먹으면 영양 균형도 잘 맞는다.
동북요리는 화자오·팔각 없이 간장·마늘·설탕으로 맛을 낸다. 그래서 한국인의 감칠맛 기준에도 잘 부합하고 밥과 함께 반찬처럼 먹는 요리가 많다. 동북요리의 주된 조리법은 센 불에 볶거나 뭉근하게 끓이는 것이다. 덕분에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고, 짭짤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특징이다.
대표 메뉴로는 土豆炖排骨(감자갈비찜), 地三鲜(감자·가지·피망 볶음), 鸡公煲(닭고기 전골) 등이 있다. 특히 地三鲜은 야채로만 이루어진 구성임에도 밥과 함께 먹기 좋다. 가지를 싫어하던 사람도 이 음식을 먹으면 가지의 재발견을 할 수 있다. 다만 동북요리를 시킬 때는 내장·비계가 들어간 요리는 피하고, 고기와 채소가 균형 있게 들어간 메뉴를 고르는 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