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조용하게 휴양하기 좋은 랑카위의 숨은 보석
랑카위에서 해변을 찾는다면, 대부분은 판타이 체낭(Pantai Cenang)을 떠올린다. 공항에서도 가까운 데다 숙소, 식당, 상점이 몰려 있어 여행자들이 자연스레 모이는 곳이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체낭이 조금 시끄럽다. (나 같은 사람들) 북적북적하고, 음악도 크고. 그런 분위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그 아래쪽에 자리한 판타이 텡가(Pantai Tengah)가 의외로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판타이는 한국어로 해변을 의미한다)
체낭과는 도보 10~15분 거리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상점도 적고, 사람도 적고, 소음도 없다. 대신 리조트들이 해변을 따라 이어지고, 풍경은 한결 느긋하다. 공항에서도 차량으로 15분 정도 거리인데, 랑카위의 크기를 감안하면 꽤 가까운 편이다. 이곳은 체계적으로 조성된 관광지라기보다는 리조트 몇 곳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면서 형성된 마을에 가까웠다.
쇼핑이나 액티비티보다는 느긋하게 쉬는 여행을 선호한다면, 체낭보다는 텡가 쪽이 잘 맞는다. 반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유흥이나 다양한 상점을 기대한다면 체낭에 머무는 게 더 낫다. 물론 리조트에서 하루를 보내다가 저녁쯤 그랩을 타거나 도보로 체낭 쪽에 들렀다 돌아오는 것도 가능하다. 단, 길 일부에 가로등이 부족하니 도보 이동 시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해변은 길이 약 1.5km 정도. 크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아담함 덕분에 산책하기 좋다. 딱 숙소에서 잠깐 나와 바람 쐬기 적당한 거리다. 텡가 해변의 가장 큰 장점은 해변 전체가 서쪽을 향하고 있어 일몰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별다른 뷰포인트를 찾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바다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을 마주할 수 있다. 체낭보다 사람도 적어서 사진 찍기 좋은 구도를 잡기에도 훨씬 수월하다.
이곳에서는 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제트스키나 패러글라이딩 같은 해양 스포츠는 체낭 쪽이 선택지가 훨씬 많다. 텡가에서는 그저 해변을 따라 걷거나 숙소 수영장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일부 리조트에서는 요가나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해, 굳이 외부 일정을 넣지 않고도 실내에서 시간을 충분히 보낼 수 있다.
숙소는 리조트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선택지가 넉넉하다. 객실마다 인피니티 풀이 딸려 있는 Ambong Pool Villas, 친환경 콘셉트의 The Frangipani Langkawi Resort & Spa, 가성비가 좋은 Tropical Resort 등 다양한 옵션이 있다. 이처럼 대부분의 리조트들이 해변과 가까워 접근성이 좋고, 잘 관리되어 있어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식사는 양보다 질에 가까운 편이다. 식당이 밀집해 있지는 않지만, 리조트에 부속된 고급 식당이나 독립형 레스토랑의 퀄리티는 높은 편이다. 예를 들어, 말레이와 웨스턴 푸드를 모두 다루는 Cactus Restaurant, 랑카위에서 보기 드문 정통 이자카야 스타일의 Unkaizan Japanese Restaurant, 깔끔한 분위기의 캐쥬얼 레스토랑 Fat Cupid 등이 있다. 앞서 소개한 식당이 아니더라도 구글맵에서 검색만 해도 괜찮은 식당이 꽤 손쉽게 나온다.
직접 방문했을 때는 유독 해산물 식당이 눈에 띄었다. 텡가 쪽 해산물 식당은 한국의 횟집과는 운영 방식이 다르다. 생선을 먼저 고르고, 원하는 조리법을 지정해 주문하는 구조다. 내가 방문했던 The Corner Seafood Restaurant는 규모는 작지만 음식 맛과 가격 모두 만족스러웠고, 구글 평점도 4.9로 높은 편이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이 지역에는 카페는 별로 없다. 대부분은 숙소 안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체낭 쪽 카페에 함께 들르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해변 근처에는 오토바이 렌트 가게가 눈에 띄었다. 지역 자체가 작아서 숙소 간 이동 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어 보였다. 또한 편의점이나 마트는 거의 없었다. 필요한 물품, 특히 술이나 간식류는 체낭 쪽에서 미리 구매해 두는 것이 좋다. (숙소 내 미니바는 품목이 제한적이고 가격도 비싸다.)
판타이 텡가는 랑카위에서 조용한 휴식을 원한다면 충분히 고려해볼 만한 곳이다. 나는 여행 중 대부분의 시간을 리조트 안에서 보내는 편이지만, 산책이나 저녁 식사처럼 어쩔 수 없이 외출해야 하는 순간은 있다. 그래서 주변 환경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숙소가 아무리 좋아도 결국 아쉬움이 남는다. 그런 점에서 판타이 텡가는 내가 원하는 외출만큼은, 그러니까 해변을 걷거나 식사하러 나가는 정도에는 부족함이 없었고, 오히려 더 잘 맞았다. 그래서 다음에 랑카위를 다시 찾게 된다면, 체낭보다는 텡가 쪽 숙소를 선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