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꺼 Nov 06. 2023

뉴욕에서 Baked Alaska를 먹은 후기

미국 음식 'Baked Alaska'

Baked Alaska


뉴욕에서 있었을 때의 일이다.


현지에서 사귄 미국인 친구와 종종 맨하탄에 식도락 여행을 다니곤 했었는데, 대부분은 나의 강력한 요청으로 '미국 음식'을 취급하는 레스토랑을 주로 갔었다. 미국 음식이라 하면 패스트푸드나 다른 나라의 음식을 미국식으로 개량한 메뉴들 밖에 떠오르지 않아, 미국스러운 음식을 먹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친구는 ‘미국 음식은 패스트푸드 밖에 없다’는 얘기에 민감해서, 나에게 미국 음식을 소개해주는 데 늘 진심이었다. 그 친구 덕에 여러 미국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Baked Alaska(구운 알래스카)’였다.


‘구운 알래스카’라니 이름부터 굉장히 특이하다. 이런 류의 이름에는 보통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Baked Alaska는 뉴욕의 어느 식당에서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음식이라고 한다. 미국이 알래스카를 매입한 게 1867년이라고 하니 역사가 이미 100년도 넘은 것이다. (실제로 음식을 팔기 시작한 건 1876년이다) 가만 보면 미국도 역사가 마냥 짧은 것 같지도 않다. 그나저나 Alaska앞에 Baked는 왜 붙는 것일까? 이 부분은 만드는 과정에 해답이 있다.


사실 Baked Alaska는 정확히는 디저트이다. 보통 디저트는 만드는 과정이 복잡하기 마련인데, Baked Alaska도 굉장히 손이 많이 간다. 우선 바닥에 팬케이크 같은 얇은 빵을 깔고, 그 위에 아이스크림을 돔처럼 쌓는다. 아이스크림도 한 종류가 아니라 여러 종류를 겹겹이 쌓는 경우가 많다. 그다음에는 돔 모양의 아이스크림 바깥에 머랭을 바른다. 머랭은 계란의 흰자에 설탕을 넣고 휘저어 거품을 낸 것을 말한다. 제과에서도 가장 어려운 기술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아이스크림이 보이지 않게끔 머랭을 바르고 모양을 낸다. 이미 충분한 것 같은데 아직 끝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내기 전에 바깥 부분을 토치질을 해서 구워낸다. 이때 바깥의 머랭만 굽고 안쪽의 아이스크림은 녹지 않게끔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는 아예 손님 앞에서 직접 불을 붙여 쇼를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머랭을 딱딱하게 만들려면 장기간 냉장시켜야 하기 때문에 Baked Alaska를 제대로 만들려면 최소 3일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아니 무슨 디저트 하나 만드는 데 3일이나 걸리나 싶으면서도, 이래서 음식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조리 방법이 복잡하기 때문인지, 뉴욕에서도 Baked Alaska를 취급하는 레스토랑은 굉장히 드물다. 뉴욕 음식으로 소개되어 있음에도 정작 뉴욕에서도 접하기 힘든 아이러니한 음식이다. 나도 가장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은 예약이 안돼서 가지 못했고, 대신에 브루클린에 다른 레스토랑이 있어서 그곳을 방문했다. 내가 묵었던 곳과 브루클린은 지리적으로 정반대라서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넘게 걸려 가야 했다. 그 화려한 비주얼에 혹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이런 고생을 하며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디저트만 시키기는 눈치가 보여 다른 음식도 함께 주문했다. 친구가 나의 미국 음식 깎아내리기에 약이 올랐는지 Oyster(굴)이랑 Crab soup(게 수프)처럼 미국 동부를 대표하는 요리들만 시켰다. 많이 시킬 필요 없다고 만류했지만, 본인이 한 턱 쏠 테니 먹어보라고 한다. 이건 마치 벌집을 건드린 것 같은 기분이다. 메뉴판을 보니 가격대도 상당해서 얻어먹는 입장에서도 부담스럽다. 설령 맛이 없더라도 맛있다는 리액션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굳이 억지로 리액션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음식이 맛있었다. Oyster부터 Baked Alaska까지 거를 타선이 없이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그동안 고평가 하지 않았던 미국 음식의 저력을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특히 Baked Alaska는 단 거 위에 단 거를 쌓아 올리는 구조니 맛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도넛에 들어가는 단순한 단 맛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이스크림의 단 맛, 머랭의 단 맛, 초콜릿의 단 맛이 어우러져 다층적으로 느껴졌다.


평소 디저트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여태껏 먹어본 디저트 중에서는 Baked Alaska가 가장 퀄리티가 있었던 건 분명했다. 특히 뉴욕이 아니면 먹어볼 수 없는 음식이기에 나중에 다시 뉴욕을 가더라도 다시 도전해 볼 것 같다. (그때까지 친구야 잘 지내고 있어~)



참고할만한 콘텐츠

[Youtube] Baked Alaska 만드는 과정 (영문)

작가의 이전글 '산해관(산하이관)' 여행 다녀온 후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