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꺼 Dec 24. 2023

경기 북부의 먹거리를 찾아서 - 1. 만두

이북식 만두, 김치 만두, 그리고 호박 만두

대학생 시절 전국 각지의 친구들과 설날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바로 남부 지방에서는 설날에 먹는 떡국에 만두를 넣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살던 파주에서는 떡국에 만두를 넣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너무나 당연하여 만두가 들어갔다고 굳이 ‘떡만둣국’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그냥 떡국이라고 부르면서도 그 안에는 으레 만두가 들어 있었다.


이후 타 지역의 친구를 만날 때마다 설날 떡국에 만두가 들어가는지 물어보았다. 설날 풍속이야 집안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주변 사람들을 통해 수집한 데이터로는 대체로 한강을 기준으로 만두 경계선이 나뉘는 듯했다. 경상도 친구들은 왜 설날 떡국에 만두를 넣냐고 반문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고, 심지어 경기 남부 출신의 친구들조차도 만두를 안 넣는 집안이 꽤 많았다.


생각해 보면 경기 북부는 확실히 만두를 많이 먹는다. 설날 시즌이 되면 가족끼리 옹기종기 모여 만두를 빚는 게 주요 일과 중에 하나이고, 김장 김치를 이웃과 나누듯이 직접 빚은 손만두를 이웃에게 나눠주는 것이 설날의 풍경이었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에 만두가 떨어질 일이 없었다. 물론 요즘에는 직접 만두를 빚는 집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손만두 전문점에서 손만두를 사서 이웃에게 선물하는 경우는 여전히 많다.


칼만두국


그렇지만 만두 문화권이라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정작 경기 북부를 여행 오는 지인들에게 만두를 먹어보라고 추천하기에는 꺼려진다. 만두라는 음식이 이미 전국적으로 대중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가 있다. 뉴스를 보니 대전이 전국에서 칼국수 집이 가장 많은 도시라고 한다. 하지만 대전 사람들도 외지 사람들에게 성심당을 가보라고 할지언정 칼국수를 먹어보라고 추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전국에서 칼국수 맛집 하나 없는 동네는 없기 때문이다.


만두도 마찬가지이다. 확실히 경기 북부에 직접 빚는 손만두집이 다른 지역보다 많긴 한 것 같은데, 그것 만으로는 이 지역이 만두로 특별하다고 하기는 애매하다. 심지어 자주 먹는 만두도 흔한 고기만두와 김치만두라서 디테일하게 설명하지 않으면 좀처럼 어필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 북부인의 명예를 걸고 디테일한 소개를 해보려고 한다. 경기 북부의 만두 여행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다른 지역에서는 생소한 ‘호박만두’를 먹어보는 것이다. 호박만두는 황해도 지역을 대표하는 만두로 속 안에 늙은 애호박이 들어간다.


경기 북부에서도 주류는 아니고, 토박이 어르신들이 있는 집안에서나 별미로 먹는 만두였다. 필자도 어린 시절에는 자주 먹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한동안 잊고 지냈었다. 주류가 아니기 때문에 호박만두를 취급하는 식당도 많은 편은 아니다. 토박이들 위주로 소비되기 때문에 외지 사람들에게 있기 있는 소위 ’SNS 맛집‘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도 인터넷에 '호박만두'를 검색하면 지역마다 식당이 한 두 군데는 있기 때문에 발품만 팔면 충분히 맛볼 수 있다.


다만 호박만두는 호불호가 강한 편이라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 이북 만두답게 만두피가 두꺼운 것은 물론, 대체로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과 호박의 물컹한 식감으로 인해 시판 만두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맛이 없다는 건 절대 아니다) 보통 호박만두를 파는 가게에서는 김치만두도 같이 팔기 때문에 반반씩 주문하거나, 아니면 칼만둣국(칼국수+만두)을 주문하는 걸 추천한다.


만약 새로운 경험보단 타율 높은 맛집을 원한다면 ‘이북식 손만두’를 찾아보는 걸 추천한다. 보통 식당 이름에 ‘평양손만두’ 혹은 ‘개성손만두’가 들어가며, 평양냉면집과 비슷한 스타일의 큼직한 고기만두로 국 혹은 전골을 만든다. 북한과 가깝다는 지역 특성상 대게 실향민이 운영하거나 실향민들이 많이 찾는 맛집인 경우가 많다.


일반 만두 전문점과 뭐가 다를까 싶지만 이북만두를 먹어보면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피의 두께나 소의 배합, 만두의 크기, 고명의 퀄리티 등이 세세하게 다른데 이 차이를 즐기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정리하자면 새로운 미식 경험을 하고 싶다면 '호박만두'를, 인지도 높은 만두 맛집을 찾고 싶다면 '이북식 만두'를 검색하면 된다. 다만 주변 지인에게 하나만 추천해야 한다면 단연 다른 지역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호박만두'를 권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동서울 터미널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해야 할 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