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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꺼 May 07. 2024

심야의 양꼬치

중국 여행은 역시 양꼬치로 시작한다

상하이 푸동(浦东) 공항 출국장을 빠져나왔을 때는 밤 12시가 넘었을 때였다. 소문대로 입국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입국하려고 대기 중인 여행객에 비해 출국 심사관이 턱없이 적어, 출국심사를 받는 데만 거진 1시간 넘게 걸렸다.


생각보다 일정이 지체되어 그냥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일찍 도착한다고 해서 딱히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라서 예정대로 미리 알아봤던 공항버스를 타기로 한다. 사실 심야 시간대에 나 홀로 택시를 타는 것이 약간 무섭기도 했던 게 사실이다.


공항버스는 주간에는 6개의 노선이 운행하지만, 야간에는 1개의 노선만 운행한다. 야간노선은 하차 정류장도 관광객이 많이 들리는 번화가 위주였다. 이렇게 되고나니 혹시 늦게 도착할까봐 숙소를 정류장 근처로 예약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푸동공항 야간버스 노선도 (한국어)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공항버스 마크를 따라 공항을 나왔다. 그런데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어둑했다. 긴가민가 하면서 걷긴 하는데 택시 기사가 집요하게 호객을 했다. 혹시 버스 운행이 종료된 건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매표소에 다다르니 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했었다. 심지어 매표소는 무인기가 아니었고 직원까지 있었다.


버스표를 구매하여 막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주말에 만나기로 한 중국인 친구로부터 잘 도착했냐는 연락이 왔다. 친구는 최근 일이 갑자기 많아져서 야근하다가 이제야 집에 돌아왔다고 했다. 상하이의 회사생활이 만만치는 않은가 보다.


그 뒤로 1시간 정도 시내로 가는 버스에서 친구와 메신저를 주고받았다. 한 달 전부터 상하이를 간다고 말했건만, 친구는 그제야 숙소를 어디로 잡았는지, 계획이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보았다. 어차피 나도 중국여행만큼은 '혼자서도 잘해요' 모드라서 굳이 일정 검사를 받지는 않긴 했지만, 다 도착해서 여행 일정을 얘기하고 있자니 너나 내나 괜히 룸메이트로 서로 같이 살아준 게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메신저로 친구에게 물었다.


"근데 지금 이 시간에 간단하게 맥주 한 잔 할만한 데 없어?"

"글쎄... 꼬치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아. 내가 숙소로 배달시켜 줄까?"

"아니, 난 식당에 가서 먹는 게 더 좋아"

"이 시간에? 여전하네 형도"


최근 한국도 자정 넘어 먹을 수 있는 야식 메뉴는 순댓국이나 감자탕 정도로 한정되듯이, 중국에서도 꼬치 말고는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했다. 다행히도 숙소 근처에 평점이 나쁘지 않은 양꼬치 가게가 늦게까지 영업하였다.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과 여행의 회포를 풀고 싶은 마음이 충돌했지만, 오랜만의 중국행인데 그냥 잠들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식당을 먼저 들리기로 한다. (어차피 프런트 데스크는 24시간 운영 중이었다)


난징동루


친구와는 주말에 만나기로 하고, 상하이의 번화가인 난징동루(南京东路)에 내렸다. 처음 가본 곳이었는데 낮과는 달리 굉장히 적막했다. (어쩌면 초행길이라 더욱 적막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몇 블록을 걸어도 가로등 말고는 불빛이 없어 식당이 문을 닫은 게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어느 모퉁이를 돌고 나니 한 블록 정도 되는 거리에 가게와 사람들이 불야성을 이루었다. 잠 못 이루는 상하이 사람들은 모두 여기에 모인듯했다. 내가 알아본 양꼬치 가게도 바로 그 거리에 있었다.


식당에 들어가 빈자리에 앉았다. 종업원은 메뉴판 대신 식탁 위의 QR코드를 가리키며 핸드폰으로 주문을 하라고 했다. 한국에선 아직 QR로 주문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생소하게 느껴졌지만, 중국 메신저인 위챗으로 손쉽게 주문이 가능했다.


요즘 한국에도 중국인이 운영하는 양꼬치 가게가 많지만, 본토와 가장 큰 차이는 메뉴의 다양성에 있다. 중국에서는 양꼬치는 물론이요 온갖 특수부위들과 야채, 빵 등의 안주거리들을 꼬치로 판매한다. 어떤 걸 시켜도 향신료인 쯔란(孜然) 맛이라 특별할 건 없지만, 그래도 수많은 선택지 중에서 나만의 메뉴를 찾아가는 즐거움이 있었다.


마음 같아선 여러 가지 꼬치를 시키고 싶었지만, 주문 최소 수량이 있어 두 가지만 시켜도 1인분이 되었다. 결국 기본 양꼬치와 설화맥주 그리고 최애 메뉴인 부추 꼬치를 시켰다. 주문하자마자 종업원이 맥주를 바로 갖다주었다. 중국에서의 맥주는 예상대로 미지근하다. (중국인들은 차가운 맥주가 몸에 안 좋다고 안 마시는 경향이 있다)


설화맥주


안주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돌아보니 잊고 있던 풍경이 펼쳐졌다. 실내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를 피워대는 빡빡이 아저씨와 언제부터 마셨는지 식탁에 퍼질러 자고 있는 중국인들까지. 유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갔던 술집에서 자주 봤던 풍경 그대로다.


이내 쯔란이 잔뜩 묻은 양꼬치와 부추 꼬치가 나왔다. 중국은 미리 조리가 되어 나오기 때문에, 따로 불판에 꼬치를 구울 필요가 없다. 양꼬치의 크기도 한국보다 훨씬 작다. 구워진 양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더니 한국과는 다른 세상에 왔음이 비로소 체감되었다. 이 순간을 위해 무리해서 퇴근 후에 중국으로 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으로 5일간의 상하이에서 얼마나 많이 새로운 것들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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