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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둑괭이 May 25. 2022

③닭은 평화의 상징입니다

비둘기야 미안

둘째 날



   오늘은 제주에 있는 친구가 쉬는 날이어서 같이 다니기로 했습니다. 1.5톤 트럭을 타고 이곳저곳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제주 동부 지역을 계획했습니다.

지난밤의 숙취로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가량 늦은 아침 8시 30분경 첫 번째 식사 장소로 출발했습니다.


#5. 백리향


   아침 조, 하늘 천, 조천(朝天)입니다. 백리향은 조천항 근처에 있습니다. 시인 곽재구는 ‘포구기행’에서 조천을 ‘아침 하늘’이 아니라 신비한 ‘하늘의 아침’이라 했습니다. 어떤 의미인지 쉽게 짐작되지 않습니다. 조천에 특별히 신비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지나간 시간들, 밤새 쓰라린 숨결을 위로하는 시심(詩心)은 해석이 아니라 묵묵히 받아들일 때 전달되는가 봅니다.


백리향 백반정식은 조천리 중심지에 있습니다. 옆에 농협 하나로마트가 있고 맞은편엔 병원, 한약방도 있습니다. 당당하게 태극기를 걸고 이 거리의 중심이 됩니다.


백리향 백반정식


빨간색 파라솔이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정감 가는 곳입니다. 백리향은 현지 주민들이 좋아하는 밥집입니다. 이곳에서는 유명 관광지에서 18,000원 혹은 25,000원에 먹는 갈치구이를 15,000원에 먹을 수 있습니다. 제육볶음도 기본으로 나옵니다.


백리향 고등어 정식

우리는 정식(7,000원, 고등어구이 +제육) 2개에 된장찌개(7,000원)를 추가해서 먹었습니다.

밥 뚜껑만 한 크기의  계란물 입은 분홍 소시지, 간장으로 조린 제육볶음이 맛의 중심입니다. 상추쌈에 고등어구이 조각 한 번, 제육 한 번 교대로 담아 먹습니다. 된장찌개는 칼칼하게 아침 입맛을 돋워 냅니다.

초딩 입맛 자랑하는 친구는 좋아하는 맛이라 밥 두 공기를 비웠습니다.


동네 어르신으로 보이는 여든 후반의 할머니가 조심조심 자리에 오셔서 정식 1인분을 건강하게 드십니다. 아직 학교 가기 전 나이의 두 자녀를 데리고 온 부부도 있습니다. 갈치구이를 주문해서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신비롭지는 않지만 참 평화로운 아침입니다.

백리향에선 갈치구이 정식을 드세요. 고등어구이는 언제든지 만날 수 있어요. 15,000원에 주위 사람 눈치 안 보고 갈치구이를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점심때 갈치조림을 먹을 예정이라 고등어구이 정식을 먹었는데 약간 후회했습니다.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은 다른데…. 많이 다른데...


밥 먹고 갈 곳은 지미봉(地尾峰)입니다. 우리말로 풀면 땅끝 오름입니다. 함덕 바다를 지나고 월정리 바다를 지나고 세화 바다를 지나면 보입니다. 지금의 구제주가 중심이었던 때 동쪽 땅끝에 있는 오름이라고 지어진 이름입니다. 구좌읍 종달리에 있습니다.

조천에서 트럭을 타고 3~40분은 가야 합니다.

근처에는 신비로운 비자림도 있고 능선이 아름다운 용눈이오름도 있습니다. 지미봉은 비자림이나 용눈이오름에 비하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입니다. 성산일출봉이나 우도처럼 유명한 곳도 아니지만 우도와 성산일출봉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명당입니다.

지미봉 꼭대기에는 봉화가 있습니다. 외적의 침입이 있었을 때, 육지 것들의 난리가 있었을 때, 연기를 내거나 불을 올려 소식을 전하고 먼 곳에서 이를 보고 방비하게 했겠지요. 그동안 지미봉은 얼마나 많은 연기로 급박한 사정을 전했을까요. 동쪽에서 가장 높아 멀리서도 잘 보이는 생명줄 같이 유용한 오름입니다.  


지미 오름은 해발 166m입니다. 그렇게 높은 오름은 아니지만 가파른 오르막 길이었습니다. 거의 정상까지 직진입니다.  25분 정도 걸렸네요. 두 번 쉬었습니다.

왼쪽으로 우도가 펼쳐져 있고 오른쪽엔 성산일출봉이 있습니다. 날씨만 좋았다면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를 선명하게 보았을 텐데 아깝습니다.

우도                                                                        성산일출봉


지미봉 정상에서 본 우도 전경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 이름 붙여진 우도. 우도를 가 본 적은 있지만 온전히 우도 전체 모습을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항공 뷰로 본 게 아니어서 그렇겠지만 옆모습은 꽤 날씬하게 보입니다.


내려올 때는 약간 돌아가서 올레길 중간으로 내려왔습니다. 지미 오름은 제주올레길 21코스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지미 오름을 다녀오면서 어젯밤 숙취는 풀리고 머리가 상쾌해졌습니다. 배도 출출합니다.

이제 조천으로 되돌아가면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아침에 차로 지나쳐왔던 제주 동쪽 바다를 볼 생각입니다. 세화해수욕장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갔습니다.


   #6. 다시버시


   이 곳 역시 현지 도민들이 좋아하고 추천하는 밥 집입니다. 갈치조림(1인분 15,000원)을 먹습니다. 묵은지 고등어조림도 경쟁력 있다고 했지만 갈치조림을 먹습니다.


갈치조림 2인 상


다시버시 갈치조림은 고추장 비율이 좀 높은 듯 보였습니다. 굵은 고춧가루 대신 고운 고춧가루를 쓴 것 같기도 하고요. 냄비에 붉은 테두리가 생길 정도로 졸여서 먹었습니다. 양념에 덮인 갈치 토막은 젓가락질을 할 때마다 하연 속살을 보였고, 무와 감자가 서로 다른 감칠맛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갈치 한 줄 숟가락으로 걷어서 밥 위에 놓고 익은 무조각 얹어 쓱쓱 비벼봅니다.


이 집 밑반찬의 주인공은  파김치입니다. 온전히  두 줄기 놓여 있는 파김치는 조림 맛이 익숙해질 즈음 먹으면 입가심 역할을 합니다. 다시 조림 맛을 느끼게 해 줍니다.

맛집입니다. 성산에서 제주시로 이동하거나 반대의 경우, 식사 시간에 맞지 않더라도 꼭 들러야 할 식당입니다.



   다시버시는 ‘다시 보고 온다’는 뜻의 제주말입니다. 다시 와도 갈치조림을 먹겠습니다.

다시버시는 11시~20시까지가 영업시간입니다. 휴일은 따로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침을 먹었던 백리향은 8시~20시까지 영업합니다. 휴일은 2주/4주 일요일입니다.

제주에서는 식당 운영시간을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주시내 고깃집, 횟집이 아니면 저녁 8시 넘어 영업하는 곳이 잘 없습니다. 다른 음식들은 오후 2시~3시에 끝나는 집이 많고요. 오후 3시~5시까지는 브레이크 타임이 있는 식당도 많습니다. 그 시간도 재료가 일찍 소진되면 지켜지지 않습니다. 시작 시간도 식당마다 제각각입니다.

예정한 곳으로 가기 전에 꼭 확인하고, 혹시 모르기 때문에 두세 군데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다시버시에서 식사한 후에는 평대리에 있는 작은 카페 ‘요요무문’에서 당근케이크와 커피를 마시고, 좀 더 해안도로를 지나면 있는 ‘말이소’에서 말고기 김밥을 테이크 아웃한 뒤, 함덕에 있는 ‘도로록’에서 흑돼지 카츠 샌드를 먹습니다. 그런 다음 차를 집에다 두고 제주 동문시장에 가서 6시부터 시작되는 야시장을 즐기기는 일정입니다.

  

요요무문 계단 고양이 그림

요요무문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습니다. 인테리어가 멋진 곳도 아니고 조용하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 해서 갔는데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나 봅니다. 무슨 커피를 줄 서서 마시겠습니까? 당근케이크 포기할 수 있습니다. 방금 갈치조림을 배불리 먹었고 어차피 당근케이크는 끼니 수에 넣지도 않았습니다.


바로 말이소로 향했습니다. 얼마 멀지 않았습니다.

말고기 김밥(사진 퍼옴)


말이소


가게를 옮긴 것도 아니고 폐업을 했더군요. 언제부터 붙어있었을지 모르지만 말이소 간판 대신 임대 안내가 있었습니다. 약간 멘붕이 왔습니다. 4월 말까지도 말고기 김밥에 대한 후기가 있었는데…. 벌써 2시가 넘어버렸습니다. 다음 행선지인 ‘도로록’도 살짝 걱정되었습니다.

에버노트를 열어서 확인해봤습니다.

10시~18시, 매주 수요일 휴무’ 브레이크 타임도 없었습니다. 일단 함덕으로 갔습니다.


오후 2시 45분

차에서 내리자마자 도로로 가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까이 갔더니 마감 안내판이 떡하니 나를 반깁니다. 커튼 사이로 주인장이 보여서 간절한 눈빛 한 번 보냈습니다. 주인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나옵니다.


“죄송해요. 재료가 다 떨어졌어요” 나온 그 길로 문을 잠그더니  골목 안으로 휙 가버렸습니다.

주차하고 오겠다는 친구도 아직 오지 않았는데...

 

도로록은 영업일과 시간이 들쑥날쑥한 것 같습니다.

흑돼지 가츠 샌드를 먹어보지 않아서 이런 리스크를 감수하고라도 찾아와야 할 만한 곳인지 확신이 서진 않습니다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찾아올 생각입니다.

도로록이 아니어도 함덕엔 두 군데 대안이 있었습니다.

해물칼국수로 유명한 ‘버드나무집’과 수요 미식회에서 소개되어 대박 난 카레 전문 ‘모닥 식탁’입니다.

너무 유명한 집이라 20끼 식단에서 우선순위가 아니었습니다. 어쨌든 가보려고 했지만 버드나무집, 모닥 식탁 두 곳 다 브레이크 타임이 있더군요. 오후 3~5시 59분까지, 6시부터 저녁시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말고기 김밥과 흑돼지 카츠 샌드는 전 일정 중에 색다른 맛을 보여줄 집이라고 나름 기대했는데 많이 아쉽네요.


   #7. 청춘당 찹쌀 꽈배기


아쉬워하는 모습이 안되어 보였는지, 친구가 다른 제안을 합니다.

   “여기 근처 줄 서서 먹는 꽈배기 집이 있는데 가볼래?”

   “가보지 뭐”

다행히 줄은 서지 않았습니다. 손님은 끊김 없이 계속 들어왔습니다. 청춘당 꽈배기는 조천에서 삼양으로 가는 왕복 6차선 일주동로 한편에 맥락 없이 서 있습니다. 주위가 다 밭이라 뜬금없는 곳에 있다는 들판에 건물 하나 우뚝 서있는 형상입니다. 손님들도 대부분 차를 몰고 들어옵니다.



찹쌀 꽈배기가 제일 맛있었고, 찹쌀도넛, 찹쌀 유자 도넛도 맛났습니다. 찹쌀 고구마 치즈 도넛도 다 맛있었습니다. 친구 말이 핫도그는 아니랍니다.

찹쌀 꽈배기


찹쌀도넛


청춘당 꽈배기는 매장에서 직접 반죽을 하고 바로 기름솥에서 튀겨 줍니다.

방금 지은 밥처럼, 방금 잡은 고기처럼, 방금 만들어진 찹쌀 도넛은 맛있습니다. 자꾸 손이 가고 왠 만큼 먹어도 물리지 않습니다. 특히 꽈배기는 씹을수록 쫄깃하고 담백한 단맛이 육즙처럼 입에서 맴돌았습니다.

청춘당 꽈배기는 여수가 본점입니다. 전국에 20군데가 넘습니다. 제주도에만 세 군데 매장이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습니다. 여수에서 누가 왜 ‘청춘당’이라는 이름으로 프랜차이즈를 했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업가가 레트로 트렌드를 읽고 찹쌀 꽈배기라는 아이템으로 이처럼 대박 나게 했을까요?

옛날 것을 끄집어낸다고 다 레트로가 되는 게 아니겠지요. 레트로는 과거(舊) 것에 대한 재현이기보다 재해석이고, 이를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마음은 빠르고 새로운(新) 것을 쫓아다니느라 소홀했던, 잊어버린 것에 대한 반성이나 반가움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삼양에 있는 친구 집으로 돌아와 좀 쉬었습니다.

이제 저녁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하는 동문시장 야시장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계획입니다.


#8. 동문시장 야시장


   버스를 타고 동문시장 입구에 있는 마트에서 치즈 그라인더(강판)를 샀습니다. 치즈와 올리브유도 한 통 샀습니다. 페페론치노가 없어서 대신 레드페퍼도 한통 구했습니다.

치즈는 ‘프레지아노 레지아노’가 필요한데 ‘그라노 파다노’ 밖에 없네요.

제주에서 혼자 사는 친구가 파스타면만 사놓고 아직 해 먹지 못했다고 해서 파스타 만들어 먹을 때 필요한 재료를 시장에 오자마자 구입한 것입니다.

동문시장은 서귀포 올래 시장과 함께 제주를 대표하는 큰 재래시장입니다.

야시장은 ‘동문시장 8’에 있었습니다.

다양한 음식이 길 양쪽으로 늘어서 있었고 그 길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거나 각 코너에서 조리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습니다.   

흑돼지, 전복, 딱새우 등 제주를 대표하는 재료를 응용해서 만든 요리가 많았습니다. 중국, 이탈리아, 터키, 일본 등 나라별 요리도 있었고요.


우리의 첫 번째 픽은 멘보샤였습니다. 딱새우를 넣은 멘보샤와 흑돼지를 넣은 멘보샤 반반.

또 다른 코너에서도 흑돼지 소로 만든 왕만두도 먹었으니 중식을 한 셈이네요. 멘보샤는 이곳 동문 야시장의 대표음식 다웠습니다.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은 기본이었고 딱새우 고유의 맛과 식감이 느낄 수 있게 조리되었습니다. 흑돼지 넣은 멘보샤는 그리 특별하지 않으니 혹 기회가 되면 딱새우로만 주문하는 게 좋습니다.

50여 개의 푸드트럭을 모아 놓은 듯 먹음직한 음식거리는 시간이 갈수록 더 열기를 더 해 갔습니다. 재래시장에 젊고 새로운 에너지가 되는 듯합니다.


#9. 상호네 숯불구이


   오늘 저녁은 원래 모살물이었습니다. 어제 당겨다 썼지요. 그래서 흑돼지를 먹는 일정을 넣었습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친구에겐 미안했지만,  고등어 정식, 갈치조림, 찹쌀 꽈배기, 멘보샤, 중국 만두 등 이제껏 먹은 음식은 모두 친구가 좋아하는 음식이었으니...

노형동에 있는 숙성 흑돼지 고깃집 ‘숙성도’를 갔습니다.

   저녁 7시 20분

생각보다 대기자들이 많았습니다. 각오한 바, 웨이팅 리스트에 14번째로 이름을 적었습니다. 라스트 오더가 11시니 먹을 수 있겠다 속다짐 했습니다. 30분이 지났지만 순서는 쉽게 줄어들지 않습니다. 이 속도면 지금부터 족히 1시간 이상은 더 기다려야 될 것 같는데… 친구 눈치가 보였습니다. 그에게 흑돼지고기 웨이팅은  90분이 아니라 9시간 같을 수도 있겠습니다.

친구는 속절없이 담배만 피고 건너편 만두집 찜기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만 바라봅니다.

‘저 집 만두 맛있겠다’ 다 들리게 혼잣말도 합니다.

조용히 음식점 리스트를 보았습니다. 마땅한 곳이 없습니다. 내일은 혼자 성산일출봉 둘러 서귀포에서 1박 하는 일정을 보낼 예정이라 그 지역 식당 이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친구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기 전에 얼른 말을 이었습니다.

   “닭갈비는 어때? 근처에 맛있게 하는 집이 있어. 숯불로 구워주는 곳인데…”

   “먹을 만하겠네”

   말도 끝나기 전에 친구가  동의합니다.


닭은 평화의 상징입니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백색 살 닭고기는 먹습니다.

4,000년 전부터 인류와 함께했다는 닭은 키우기가 쉬웠고 사료량 대비 가장 효율적인 단백질 공급원이었습니다. 소를 먹지 않는 곳, 돼지를 먹지 않는 곳에서도 닭은 먹었습니다.

비둘기도 그만한 사정이 있어 평화의 상징이 되었겠지만, 닭은 종교 규범을 떠나 인종을 떠나 먹고 나눌 수 있는 화합의 식재료였습니다. 닭을 앞에다 두고 나누며 많은 인간들이 평화를 찾았을 것이라고 상상해봅니다..

오늘 닭갈비가 친구와의 평화를 지켜 줄 것 같았습니다.



   ‘상호네 숯불구이’는 노형동 신도시(?) 아파트 단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제 이름과 같다고 정한 것은 아닙니다.

통상 우리가 알고 있는 닭갈비는 춘천 닭갈비처럼 갖은 야채와 함께 철판에 볶아주는데 이곳은 양념한 고기를 숯불에 구워줍니다. 어제 택시 기사의 말처럼 구제주(이도2동)에 본점이 있고 신제주(노형동)에 점포를 확장한 도민 동네 맛집입니다.

순한 맛, 매운맛 닭갈비


순한 맛과 매운맛을 1인분씩 시키고 한라산과 제주막걸리를 시켰습니다. 숯불구이 닭갈비에 막걸리가 어울릴 것 같았고 제주산 막걸리 맛도 궁금했습니다.

숯향을 입은 닭고기는 익숙한 맛이었습니다. 평화롭습니다.

“ 이거 배고플 때 먹으면 한정 없이 들어가겠는걸” 모처럼 친구가 음식 평을 합니다.

오늘 다섯 번째 음식이다 보니 시장끼를 걷어내고도 맛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단체손님을 포함해 꽤 많은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제주에 오기 전 20끼를 준비하면서 현지에서 사시는 분들이 좋아하는 '도민 맛집' '현지인 맛집'을 주로 가려고 했습니다. 맛 모르고 멋 모르는 초보 여행자 시절은 이미 겪은 터고 중급 여행자 행세를 하려면 ‘현지인 맛집’에서 제주의 음식문화를 겪어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주에서 태어나서 살고 있는 현지인들 중에는 평생 귤을 돈 주고 사 먹어본 적이 없는 분들이 많다고 합니다. 괸당(친인척) 중에 한 명은 감귤 농사를 하거나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 상품화되지 않는 귤을 받아서 먹기 때문입이다. 제주에 있는 식당, 카페에도 그런 귤이 있어서 손님들도 그냥 먹게끔 카운터 앞에 담아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주도민에게 갈치구이, 조림, 고등어구이, 조림 잘하는 맛집을 추천해달라고 하면 잘 모른다고 합니다. 그분들에게 갈치나 고등어 요리는 외식 메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급 여행자 행세를 하려고 찾았던 기준에는 ‘현지인 맛집’과 ‘제주 음식 맛집’이 꼭 일치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에겐 평화였고 배려였고 익숙한 맛이었지만 상호네 숯불구이 식당이야말로 정말 현지인들이 외식을 하기 위해 찾는 현지인 맛집일 수 있습니다. 제주도민이라고 몸국, 각재기국, 객주리 조림 같은 것만 드시지 않겠지요.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출근해야 하는 친구를 위해 일찍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파스타 레시피를 알려주기 위해 동문시장에서 장만했던 재료들을 다 꺼내 들었습니다.

 “올리브유를 많다 싶을 정도로 넉넉히 넣어, 다진 마늘을 3/2스푼 넣고 낮은 온도에서 충분히 마늘향이 올리브유에 우러나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해”

“동시에 파스타면 삶을 물을 준비하는 거지. 소금 한 스푼 넣고, 끓어오르면 파스타면을 삶는다. 면 삶는 권장 시간이 9분으로 안내되어 있으면 7분에 면을 팬에 올려서 3~4분을 더 익힌다고 생각하면 돼”

“ 팬에 파스타면을 담고 면수를 두 국자 부어서 익히는 작업을 하는데 중간중간 면을 뒤집어 줘야 해. 올리브유와 파스타면에서 나오는 전분이 섞여 유화되는 과정이기도 해”

“ 불을 껀 후, 오늘 사온 치즈를 충분히 갈아서 넣고 1~2분간 면을 한 방향을 젓고 앞뒤로 뒤집으면, 자작하게 남아있던 소스가 크리미 하게 바뀌면서 면에 다 붙게 되어있어”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 먹어봐”

도저히 배가 불러서 못 먹겠다는 친구에게 억지로 한 입 넣었습니다.

건성으로 맛있다고 한마디 하고는 양치질을 합니다.

저라고 배가 안 부르겠습니까?  할 수 없이 제가 다 먹었습니다.   

  

친구는 내일 아침 6시 40분에 집에서 나간다고 하네요. 저도 친구 출근길에 같이 나설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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