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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Jan 14. 2021

귤복이의 집안 입성기

나는 우리 집에 이미 넘쳐날 정도로 애들이 많기 때문에 입양하는 일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아직은 집안과 밖에 공간이 있지만, 아이들이 행여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싶어서 입양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가도 그만 눈을 질끈 감고 발을 돌리는 적이 수도 없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내 마음이 얼마나 부서져 내리는지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하지만 나는 계속 보호소의 봉사를 가야하고 그곳에서는 자신에게 도움의 손길만을 바라는 아이들이 언제나 넘쳐난다. 그런 아이들을 외면한 채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뿌듯한 감정은커녕 언제나 우울할 뿐이다. 그래도 그곳에서 밥도 물도 없이 지내는 아이들이 눈에 밟혀 내 감정 따위는 뒤로 한 채 다시 보호소를 향하게 된다.     

귤복이가 친구들과 산책길에서 놀고 있다. 친구들하고도 잘 어울리고 다른 아이들 괴롭히지 않는 착한 아이이다.


그런 그곳에서 다리가 부러져있는 귤복이를 처음 만났다. 다리가 부러져서 굉장히 아플 텐데도 귤복이는 내가 건네는 간식을 너무도 잘 받아먹었다. 그리고 다음번에 갔을 때는 다행히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귤복이가 ‘브리타니 스파니엘’이라는 품종견이라서 치료를 해준 것 같았다(품종견은 그래도 좀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귤복이를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제일 푸대접을 받는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귤복이는 입양을 못 가는 다른 아이들처럼 점점 그 색을 잃어가고 있었다. 다리를 다친 개를 입양해 갈 사람은 없었고 귤복이는 더러운 철창에 갇혀 내가 밥과 물을 주면 그걸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그리고 깁스도 풀었는데도 귤복이에게 둘러 논 엘리자베스 카라는 무슨 일인지 벗겨주질 않았다. 좁은 철창에서 깔데기까지 쓰고 있는 귤복이가 너무 애처로웠다. 


처음 산책을 하던 날 귤복이는 너무 신이 나 있었다. 혹시 몰라 목줄을 하고 있었는데 너무 간절히 달리고 싶어해서 풀어주었더니 어디로 가지 않고 주위에서 잘 놀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귤복이가 다른 개와 함께 합사되어 있었다. 그리고 합사시킨 다른 개는 무척 사나웠다. 귤복이는 내가 주는 닭고기를 받아먹고 싶어 했지만 옆의 개가 그것을 저지시켰다. 나는 어떻게든 귤복이 입에 닭고기를 넣어줬지만, 이 아이가 내가 없을 때 밥이랑 물은 먹을 수 있는 건지 걱정이 되었다. 그 보호소는 봉사자도 받지 않는 곳이라서 내가 몰래 도둑봉사를 하는지라 애를 여기로 옮겨라. 말아라. 건의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저 마음을 졸이며 귤복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우리집에 있는 방석이 모두 작은 사이즈다 보니 귤복이에게 맞는 것이 없다. 귤복이는 그래도 방석에 자기 몸을 비집어 넣고 자는 것을 좋아한다.


다음번에 보호소에 가보니 귤복이는 사육장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나를 보며 도움의 눈길을 보내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제는 포기한 듯 잔뜩 겁먹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더이상 그대로 둘 수 없어서 귤복이를 사육장에서 꺼냈다. 귤복이는 너무 말라서 내가 들어도 별 힘이 들지 않았다. 보호소에 귤복이를 입양하겠다고 통화를 하고 귤복이를 차에 태웠다. 춥고 더럽고 무서운 곳에서 나와 따듯하고 깨끗한 담요 위에 놓인 귤복이는 아주 얌전히 집까지 왔다. 겨울, 귤철에 왔다고 해서 귤복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우리 집에서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애교쟁이 귤복이는 산책할때 전혀 신경을 쓰지않아도 위험한 짓은 전혀 하지 않고 산책을 아주 잘 하는 이쁜 아이이다.


귤복이는 무척 애교가 많은 편이었다. 내가 앉아 있으면 큰 키로 나를 안고 있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혼자 집을 쓰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문을 열어두고 사용하고 있다. 문만 닫기면 애들이 문을 부숴놔서 애들이 무서워서 조금 창피하지만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 귤복이는 내가 변기에 앉아있을 때도 나에게 와서 두팔 벌려 나를 안아주고 있다. 나는 귤복이에게 안긴 채로 조금 민망하고 부담스럽고 불편하게 일을 봐야 한다. 그렇다고 못 하게 하면 상처받을까봐 그러지도 못하고 귤복이의 애정표현을 온몸으로 느끼며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귤복이의 애정 공세에 뒤질세라 아이들이 너도나도 모여들어 나는 아주 공개적으로 화장실을 쓰고 있으니 이 웃픈 현실을 어째야 좋을지 모르고 있다.    

 

친구들이 집에서 꽁냥꽁냥 장난을 치는데 그 옆에서 깨지 않고 잘도 잔다.


보호소에서 올 때는 분명 나에게 안겨서 왔는데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지금은 전혀 안을 수가 없다. 귤복이는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하는 데다가 먹고 자는 것도 엄청 좋아하는 아이이다. 친구들하고 신나게 놀기는 하지만 그만큼 자는 시간도 길다. 그래서 그런지 무서운 속도로 살이 붙고 있어서 아직 걱정할 만한 단계는 아니지만 조금씩 조절이 필요하지 싶다. 귤복이가 오고 나서 부터는 큰 키를 이용해 말썽을 부려서 더 이상 책상 위가 안전지대가 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책을 찢어논 것 이외에는 큰 말썽을 부리고 있지 않아서 그저 그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꽤 커진 몸에 턱없이 작은 방석을 깔고 쿨쿨 신나게 자고 있다. 귤복이 사이즈에 맞는 방석을 구매해야 할 듯 하다.


그대신 온갖 식재료가 있는 주방 공간에는 출입을 금하고 있다. 귤복이가 뭐든 끄집어내는데 1등이라서 엄마가 처음 귤복이의 방문에 기함을 토한 뒤로는 주방 공간에는 들어오게 하지 않고 있다. 근데 귤복이도 굳이 들어 올려고 하지 않아서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다만 생선을 굽는 기계가 생선 타는 냄새 때문에 밖에 비치 되어 있는데 다 구워진 생선을 그릇에 올려놓자 그 생선을 잽싸게 채가는 일이 있고 나서부터는 생선을 가져올 때 2인 1조로 한사람이 귤복이를 저지시키고 다른 사람이 생선을 들고 들어가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귤복이가 아타까운지 항상 생선 꼬리를 잘라서 귤복이를 주시곤 하신다. 이렇게 귤복이는 참 다양한 귀여운 짓을 해서 가족들을 당황하게 한다.     


귤복이가 눈 내리는 날 밖에서 놀고 있다. 독자분이 감사하게 보내주신 옷을 입고 귤복이는 신이 났다.


귤복이는 이곳에서 따듯한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눈이 오면 목이 긴 폴라티를 입고 눈 속을 활보하고 해가 지고 밖이 추워지면 절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난로가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단잠을 잔다. 처음 데리고 왔을 때는 왈가닥에 호기심 천국이어서 내 방을 다 헤집어 놓더니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지 요즘에는 잠잠하다. 내가 지나가다 귤복이 옆을 지나치면 언제나 자신의 배를 보이며 통행세를 요구한다. 나는 그 당당한 요구에 언제나 배를 한참을 만져줘야 길을 갈 수가 있다. 이런 귤복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귤복이가 다쳐서 버림을 받은 것인지, 버림받고 헤메다가 다친 것인지는 알수가 없지만, 지금은 그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나와 우리 가족은 언제까지나 사고뭉치 귤복이를 사랑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친구랑 사이좋게 벽난로 옆에 누워 잠을 잔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몰래 한컷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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