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함께하는 삶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유기견을 키우기 시작했었다. 그때부터 개를 키우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키우고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상하게 고양이와는 인연이 없었다. 고양이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으나 내가 키울 수밖에 없는 고양이를 만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의 첫 번째 고양이인 복자가 나에게 찾아왔다. 한밤중 아파트 계단 옆 풀숲에서 새끼 고양이가 울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를 발견했다고 바로 데리고 올 수는 없다. 새끼 고양이가 잠시 어미 고양이와 떨어져 있을 때, 사람들이 버려진 고양이로 착각하고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어미 고양이는 한없이 새끼 고양이를 찾아다니게 되는 비극이 발생할 수 있다.
일단 고양이 캔을 주고 하루 더 기다려 보기로 하면서 안 떨어지는 발거음을 떼었다. 그렇게 복자를 본 첫날이 지나갔다. 다음날 퇴근길에 우리 집에 가까워질수록 뚜렷하게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제 그 자리에 복자가 캔도 먹지 않은 채 울고 있었다. 거의 탈진 상태로 보였다. 나는 복자를 품에 안았고, 그렇게 복자는 나의 가족이 되었다.
두 번째 고양이는 유학을 다녀온 직후에 만나게 되었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우리 집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애써 외면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바로 우리 집 앞 상자 안에 고양이가 들어있는 것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얼른 꺼내어 살펴보았다. 노복이는 복자보다는 체력 상태는 좋았지만 피부병이 굉장히 심한 상태였다. 아마도 이것이 버려진 이유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부병 때문에 버려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진짜 가족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복자와 노복이는 서로 장난도 치고 의지하기도 하면서 이곳에서 산책냥이로서의 삶을 누리고 있다. 복자는 조금 뚱뚱한 고양이가 되었으며, 노복이는 생선을 달라고 떼를 쓰는 고양이가 되었다.
고양이는 매력적인 동물이다. 고양이는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고양이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으며 세상 이치를 모두 안다는 듯이 무심한 듯 쳐다보는 눈에는 우주가 들어있다.
고양이를 보고 있으면 세상에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괘념치 않으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 순간을 즐긴다. 그저 흘러가는 삶의 속도에 맞춰 자신의 자리를 조금 바꿀 뿐인 것이다. 날씨가 추우면 벽난로 앞에서 추위를 피하고 날씨가 따듯하면 나무 위나 지붕 위에서 휴식을 취하듯이 말이다.
그러다 무료해지면 가끔 나에게 아기 고양이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그러면 그게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사람은 희소성이 있는 것에 끌리는 욕망이 있다. 그래서인지 항상 내 곁에 다가오지 못해서 안달하는 개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고양이는 세상 모두가 자신을 사랑해 주길 바라지 않는다. 다만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 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사람마저도 자신이 선택한 때에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바란다. 진정으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는 동물이다.
복자와 노복이는 어떤 기준에서는 품종묘처럼 멋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고양이가 언제나 사랑해주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게 만드는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듯, 복자와 노복이도 그렇다. 나에게는 언제나 보고 싶고 만지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나의 고양이들이다.
오늘도 복자와 노복이가 나에게 다가와 인사해 주기를, 내가 “복자야~, 노복아~”라고 부르면 그 귀여운 목소리로 대답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