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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Nov 17. 2017

안락사 문턱에서 나에게로 온 숑숑이

동물과 함께하는 삶

숑숑이는 유일하게 유기견 보호소에서 직접 입양한 개다. 나는 보통 입양을 기다리는 보호소의 개들을 입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직업적으로 병원에 버려진 동물들을 너무 많이 접하게 되기 때문에 그런 아이들만 입양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숑숑이 (줄여서 숑이라고 부른다)는 좀 특별하게 다가온 아이였다.


입양 당시 숑이와 입양 후 숑이의 모습. 입양 당시에는 털을밀어 보았을 때 온몸이 피부병으로 덮여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유기견 보호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해왔던 터라 항상 입양 공고 메일이 오고 있었다. 하루는 메일 한 통을 열어보았고 거기서 처음 숑이를 보게 되었다. 서울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있었으며 원룸에서 자취를 하던 때라서 한 생명을 책임지기에는 버거운 때였다.

                                                                             

하지만 다리를 다쳤으며 곧 안락사 위기에 처해 있다는 숑이를 외면할 수가 없었다. 보호소에 입소된지 열흘이 훨씬 넘었으니 언제 안락사가 되어도 무방할 상황이었다. 풀이 죽어 케이지에 웅크리고 있는 숑이에게 그 기억이 마지막인 채로 생을 마감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는 기쁨과 행복도 많다는 사실 꼭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슈나우져를 좋아한다. 슈나우져는 흔히 3대 악마견에 속하지만 그들이 가진 무한한 에너지와 긍정의 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지치고 힘들 때 이들이 주는 기쁨은 배가 된다. 나는 결국 보호소로 찾아가 숑이를 데리고 오게 되었다.   

  

대학원실에서의 숑이. 숑이는 나와 출퇴근을 같이 했으며 내가 병원 근무를 하거나 실험을 하는 동안에는 이곳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때부터 숑이와 나만의 행복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숑이는 항상 나와 함께했다. 출퇴근도 같이 하였으며 근무 시간에는 대학원실에서 지내고 근무 이외의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는 병원 뒤쪽 공터에서 나와 산책을 즐겼다. 근무가 끝나면 함께 관악산으로 등산을 갔다. 숑이는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였으며 출근도 퇴근도 산책도 나와 함께라면 언제나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나는 온 마음으로 나를 사랑해주는 숑이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름이면 관악산의 개울가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했다. 시원한 물속에 발을 당그고 행복한 듯 첨벙첨벙 뛰어다녔다.


산책으로 인해 짧게 다듬어진 뭉뚝한 발톱을 사랑했고, 실컷 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정신없이 자는 숑이의 모습도 사랑했다. 나와 함께 침대에 누워서 온기를 나누며 새근새근 잠을 잘 때 나던 숨소리도 사랑했고, 더운 여름날에도 내가 안고 있으면 언제까지나 가만히 기다려주는 충성심도 사랑했다. 슈나우져답게 에너지가 넘쳐흘러 언제나 나를 지치게 만드는 것도,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도저히 식이조절을 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도 모두 사랑했다. 나는 숑이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마당에서 햇빛을 받으며 쉬고 있는 숑이. 숑이는 마당의 잔디밭을 좋아해서 실컷 친구들과 놀고 나면 배를 깔고 쉬고는 했다.

                                                                                             

그런 숑이가 지금은 당뇨병이라는 병마와 싸우고 있다. 데리고 온 지 10년 만이다.


서울대학교 동물병원에 내원하는 개들은 대부분 매우 위독하거나 만성 질병으로 고생하는 경우 많기 때문에 유일하게 건강한 숑이를 모든 보호자들은 부러워하였다. “우리 애도 예전에 저렇게 건강했는데…”라는 말을 가장 많이 듣곤 했었다. 그 시절이 너무 그리운 요즘이다.


건강하기만 했던 숑이가 당뇨병에 걸려 점점 누워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그 모습을 지켜보기가 너무 힘든 요즘이다.


숑이는 가장 힘들고 외로운 시절에 나와 함께 해준 보물 같은 존재이다. 하늘에서 나에게 내려온 위로이자 선물이자 행복이다. 이런 숑이를 잃고 싶지 않지만 병세는 나날이 깊어진다. 엄마로서도 수의사로서도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때 오는 좌절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게 아프다.

                                                                      

당뇨병으로 인해 양쪽 눈 모두 백내장으로 지금은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이다. 또한 항상 왕성한 식욕을 주체하지 못해 불어날 대로 불어난 몸으로 뒤뚱뒤뚱 다니던 숑이가 아무리 먹어도 살이 자꾸 빠져간다.


시력을 잃었지만 숑이는 산책을 빠지지 않았다. 앞을 못 보는 숑이를 배려해서 걸어서 하는 산책 대신 집 앞 과수원에서 자유롭게 다니는 산책을 한다.


하지만 이 비타민 같은 녀석은 나의 이런 슬픔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나 꿋꿋하고 씩씩하게 자신의 장애를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내가 도와주려고 해도 뭐든지 혼자서 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으며 산책도 빼먹지 않고 같이 나가고 집에도 혼자서 돌아오곤 하였다. 나이를 먹고 눈까지 안 보이게 되었어도 숑이는 나에게 짐이 되기는커녕 많은 걸 가르쳐 주는 것 같았다.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을 것을 탓하며 좌절하기보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그것을 즐길 줄 아는 것이다.

                                                                                             

숑이가 장애가 있다 보니깐 우리 가족 모두 좀 더 숑이에게 신경을 쓰게 되면서 다른 개들도 숑이를 특별하게 대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숑이의 위상이 날로 높아져서 말리노이드란 집채만 한 편백이도 숑이에게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숑이는 이런 위치를 즐기는 것 같다. 어느 때보다도 목소리가 커지고 애들을 호령하려고 든다. 정말 무한 긍정 에너지이다.


터질듯한 엉덩이와 빵빵한 배를 자랑하던 당시의 숑이 뒷모습이다. 내가 밖에 나와 작업하면 항상 따라 나와 테이블 위에 누워 낮잠을 즐기곤 하였다.

                                                          

나보다 더 빨리 지나가는 숑이의 시간을 멈출 수는 없지만 지금 함께하는 순간을 더 즐겁고 행복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래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숑이와 함께 보내려고 노력한다. 그것이 내가 지금 숑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숑이와 함께 따듯한 낮에 마당에서 일광욕을 즐길 생각이다. 숑이는 나와 함께 하는 일이라면 모든 좋아하니깐 분명 마음에 들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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