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이 세상을 창조하였을 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개와 고양이에게 그 주인보다 몇 배나 짧은 수명을 주셨다. 어쩌면 주인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반려동물에게 그들이 고통을 받지 않게 하시려는 배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번 온 마음을 주고 서로 보듬어주는 사이가 된 반려동물을 어느 날 나에게서 앗아간다는 것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하지만 나는 그 짧은 수명이라도 그 수명만큼만 내 곁에서 채우고 가주었으면 하고 바랄때가 있다. 많은 아이들을 돌보다 보니 사고로 세상을 떠나거나 병에 걸리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나의 곁을 너무도 빨리 떠나보내는 일들을 겪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아이들을 떠나보내는 일에 비하면 평소의 노고는 아무 일도 아니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아이가 없는데 그 아이들을 나를 떠날 때 나는 사실 버티기 힘이 들 정도로 상처를 입는다.
평소와 다를 바 없던 어느 날, 아침 산책을 위해 방문을 열고 나왔는데 익숙한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바로 눈복이의 산책을 재촉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상하게 생각하고 눈복이를 찾았는데 우리집 주차장 있는 쪽 마당에 눈복이가 축 늘어진채로 바닥에 누워있었다. 나는 눈복이한테로 달려가서 눈복이를 안아올렸지만 이미 심장은 뛰고 있지 않았다. 아무런 외상도 없고 구토를 한 흔적도 없었다. 뭘 잘못먹은 건지, 독사에 물린건지, 심장마비가 온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그냥 나도 굳어버렸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부모님에게 눈복이의 소식을 알리고 눈복이를 우리집 정원 가운데에 묻어주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너무 놀라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눈복이는 아직 한참을 더 살고도 남을 나이였다. 이렇게 허망하게 갈 아이가 아니였다. 나는 뭐가 잘못됐는지 한참을 되짚어 보았지만 정말 모르겠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했었고 그리고 제일 팬이 많은 우리 눈복이였다. 손님들도 항상 제일 먼저 달려나가 반기는 손님 맞이 개였다. 그래서 눈복이는 팬이 많았다. 덩치는 산만했지만 누구보다 착하고 따듯했던 아이, 마치 작은 소형견같이 애교가 많던 아이였다. 먹는 걸 너무 밝히기도 하고, 장난이 심해서 간혹 힘에 부치기도 했던 아이였지만 나는 그 모든 순간이 그리웠다. 눈복이가 여름에 더워할까 걱정하고, 개구리를 자꾸 잡는 통에 개구리 걱정까지 하게 만든 아이였지만 그 걱정들이 행복한 고민이었다는걸 너무 늦게 깨달아 버렸다.
나는 그렇게 가버린 눈복이의 묘 앞에서 이 슬픔을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눈복이는 그 두꺼운 털옷을 벗어버리고 훨훨 나비가 되어 날아갔는데... 나는 아직 그 거죽을 붙잡고 놓아주지를 못했다. 어떻게 이 슬픔을 이겨내야 할까... 그때 한 다큐를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개식용문제에 관한 다큐였다. 개식용문제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논쟁과 이슈에 지칠대로 지쳐버려 내가 잘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분야였다. 그리고 개농장의 개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더 외면하던 이슈였다. 그런 내가 갑자기 그 다큐를 보기 시작했다. 다큐는 주제에 걸맞지 않을 만큼 단백했다. 단백하다 못해 매우 논리적이고 깔끔했다. 개식용문제를 끝도 없는 윤리적인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닌 상대적으로 명확한 법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했다. 그리고 그 접근은 매우 논리적이어서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다.
그 다큐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눈복이와의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만 나는 또 할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물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알리는 일 말이다. 지금 당장 개농장의 개들을 모두 데리고 나올 수는 없지만 어떻게라도 그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 눈복이가 나에게 선물해 주고간 행복을 조금이나마 갚아나가는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동물을 이분법적으로 잘 나누지를 못한다. 내 아이와 남의 아이, 반려동물과 먹는 동물, 내가 도움을 주는 동물과 내가 이용하는 동물... 이렇게 구별을 두지 못한다. 그냥 다 내 아이같다. 그래서 마음이 아플때가 참 많지만 나는 나의 이런 성향을 싫어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들을 위해 힘써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일원이 되어 동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다큐를 제작하는 사람들, 다큐에 나오는 수많은 동물을 위해 일하시는 분들, 또 이 다큐를 보고 힘이 되어주실 많은 분들이 있기에 나는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복이의 죽음이 슬픈만큼 다른 아이의 죽음도 슬프다. 그 죽음을 외면하지 말고 온몸으로 슬퍼하고 그 슬픔이 반복되지 않게 더 열심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눈복이를 보내고 얻은 깨달음이다. 눈복이도 아마 내 생각에 동조하며 그 큰 얼굴과 그 작은 눈으로 활짝 웃고 있을 것이다.
'고기가 되지 않을 자유' (Freedom Not to be meat, 2021) - 개식용종식을 위한 다큐멘터리! - YouTube -
https://m.youtube.com/watch?v=V-s9WlR9-bU&feature=youtu.be
[생각보다 보기 힘든 장면이 별로 없다. 많은 분들이 보시고 공유해주시길 바란다. 응원의 댓글도 남겨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