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전쟁

by 손서영

엄마는 나만큼 아이들을 아끼시지만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은 확연히 내가 많다. 아이들 산책부터 밥을 주고 놀아주는 모든 일들이 내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보통 나를 더 따르고 내가 있는 곳은 항상 아이들로 북적였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아이들이 엄마의 부엌을 맛보고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부엌이 있는 곳에 가면 애들이 줄줄이 따라왔다가 내가 부엌을 빠져나가면 줄줄이 빠져나왔던 아이들이 한 마리, 두 마리 나를 따라오지 않고 부엌에 남기 시작한 것이다. 부엌에 있으면 항상 엄마가 맛있는 걸 준다는 걸 아이들이 서서히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KakaoTalk_20210613_123943052.jpg 산책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병아리반 아이들. 차례차례 집으로 고고씽~!!


엄마는 부엌에서 일을 하시니깐 아이들이 부엌에 주렁주렁 메달려 있는 것이 성가시다고 말씀하시면서 부엌에 찾아오는 아이들 입에 맛난걸 넣어주는 걸 멈추지는 않으셨다. 나는 아이들을 모두 뺏기는 기분이 들어 수차례 간식을 주지 말라고 엄마에게 말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급기야 아예 부엌으로 이사를 가버린 아이들까지 생기면서 부적이던 나의 방은 몇몇의 의리파들(귤복이, 소복이, 연복이, 별복이, 하울이, 바둑이, 꾀복이, 꽃복이, 전복이, 후복이, 예복이, 편백이)만 남고 다 부엌으로 떠났다.

KakaoTalk_20210613_124032799.jpg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별복이. 제일 의리파다. 엄마(해복이)와 누나(달복이) 모두 부엌에 남아도 단 한번도 나를 안따라 나온 적이 없다. 내 사랑둥이다.


애들 때문에 발을 디딜 틈이 없다고 푸념을 하시면 나는 그게 그렇게 부러웠다. 나도 애들 때문에 발 디딜 틈이 없던 예전의 내 방이 그리웠다. 엄마는 항상 제발 애들 데리고 너 방으로 가라고 말씀하시지만 이미 내 방보다 훨씬 짭잘한 곳이 부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애들을 무슨 방도로 데려갈 수 있겠는가 말이다. 내가 부엌을 떠나 내 방으로 갈 때 애들 이름을 부르며 같이 가자고 사정사정을 해봐도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다 내가 좋다고 나만 따라다니더니 이제는 눈길도 안주는 아이들에게 살짝 배신감이 느껴지는 건 내가 속이 좁아서이기 때문일 것이다.


KakaoTalk_20210613_124021109.jpg 부엌에 놓여있는 아이들 침대에 항상 애들이 가득가득하다. 부엌이 너무 좋은 이 녀석들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내 속만 태우고 있다.


엄마는 나와 전혀 경쟁할 생각이 없는데 자꾸 엄마가 라이벌로 보이고 있다. 나는 더 이상의 아이들을 빼앗기기 싫어서 내 방에 있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모른다. 최대한 많은 시간을 쓰다듬어 주고 예뻐해주고 간식도 주고 공을 드리는데 아이들은 점점 내 방으로의 발길을 끊기 시작했다. 나는 내 방이 북적북적하고 애들이 방석마다 그득그득한 모습을 보며 자랑스레 불을 끄고 잠을 청하는데 익숙했다. 하지만 요즘 방석은 모두 비어있고 몇 안되는 아이들만 있다보니 여간 섭섭한게 아니다. 게다가 여름이 되자 엄마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으니 아이들의 발걸음은 더 뜸해지게 됐다. 엄마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에어컨이다. 나는 더위를 엄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타다보니 에어컨을 하루종일 가동시키는 일이 별로 없다. 한여름은 되어야 아이들을 위해 에어컨을 트는데 엄마는 더위를 많이 타시다보니 벌써부터 에어컨이 연일 가동 중이다. 내방보다 시원하고 맛난 것도 입에 들어오고 나 말고는 아무도 안들어오는 내 방보다 엄마, 아빠, 나의 출입이 잦은 부엌이 더 재미있는 아이들은 결국 점점 더 부엌에 몰리고 있다.

KakaoTalk_20210613_124101929.jpg 식탁 밑에서 장난치고 있는 아이들이다. 뭐가 그리 신이 나는지 맨날 식탁밑이 바글바글하다.


내가 엄마 때문에 아이들을 다 뺏겼다고 푸념을 하면 엄마는 의기양양하게 “제발 애들 좀 데려가라. 성가셔서 죽겠다.”고 말씀하신다. 엄마의 말이 진심인 걸 알면서도 왠지모르게 얄밉게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질투심에서 비롯된 일일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악조건 속에서도 나를 따라 내 방으로 복귀하는 나의 아군들이 나는 더없이 귀엽고 소중하다. 어쩜 그렇게 의리가 있는지 나를 향한 나의 아군들의 충직함에 항상 고마움을 느끼는 요즘이다.

KakaoTalk_20210613_124010512.jpg 부서진 낡은 문에서 머리만 쏙 내민 전복이도 대표적인 의리파이다. 항상 나보다 먼저 내 방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가면 나를 맞이해준다.


그래도 나는 자신의 의지대로 이리로 왔다가 저리로 갔다가 하며 지내는 아이들을 보면 왠지 마음이 놓인다.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개가 얼마되지 않기 때문이다. 1m의 삶을 살고 있는 시골개는 말할 것도 없고, 아파트에서 사는 개들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구 집안을 돌아다니게 해주는 집도 많지 않다. 이런 저런 이유로 아이들을 울타리에 가둬서 키우는 모습을 보면 나는 그게 그렇게 안타깝다. 우리 애들을 보면 이 아이들이 얼마나 강한 자유의지를 지녔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 세상이 빨리 도래했으면 좋겠다.


KakaoTalk_20210613_123957538.jpg 연복이가 이불 위에서 편히 쉬고 있다. 연복이는 먹을 것을 너무 좋아하는데도 나를 따라와준다. 그래서 더 이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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