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서영 Dec 16. 2021

반려동물과 가족이 된다는 건

반려동물과 가족이 되는 일은 무척이나 신중해야 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정은 별다른 준비 없이 반려동물을 집에 들이기도 한다. 개나 고양이 한 마리쯤 집에 오는 게 뭐 대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 생명을 집에 들이는 일은 엄청난 책임감도 함께 지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생명은 365일 24시간 지속되는 것이다. 잠시 꺼두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아이를 집에 두고 나온다고 아이의 스위치가 꺼지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 순간에도 생각하고 외로워하며 무료해하고 기다린다. 365일 24시간 계속된다는 것은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다.     


[고무대야는 겨울에도 인기 만점이다. 작은 아이들은 꼭 서로 낑겨서 자야 제맛인 듯 저렇게 사이좋게 잠이 들어있다.]


가장 이상적인 스토리는 처음 그 까만 눈과 마주쳤을 때 그 아이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직감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직감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의 마음을 옭아맨다. 그리고 그들의 힘은 실로 대단하여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퇴근 후에 술 한잔을 즐기던 이들도 모든 약속을 뒤로 하고 퇴근길을 서두르게 하며, 주말마다 친구들을 만나기 여념이 없던 이들은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이곳저곳을 검색하게 된다.      

[편백이가 고무대야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어느새 몸을 잔뜩 웅쿠리고 그 안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거기서 자는 모습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새근새근 잘도 잔다.]


매일 아침 우리와 함께하는 세상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기쁨의 춤으로 표현하고, 늘 우리의 눈을 바라봐주고, 힘들고 상처받았을 때 조용히 우리 옆을 지켜주는 그들의 존재에 우리는 서서히 우리 삶 깊은 곳까지 그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교감의 연속 속에서 우리는 말 없이도 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멋진 경험까지 하게 된다. 반려동물과 맺은 깊은 유대감은 우리 사회에서 보기 힘든 종류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에 이제 반려동물에게 일어나는 어떤 일도 가벼이 넘어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화음이는 우리 집에 와서 아주 잘 적응하며 지내는 아이이다. 언제나 내 곁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잘 적응해줘서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그렇지 못한 스토리도 많다. 그들이 본능적으로 일으키는 모든 행동이 그들과 함께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이유가 된다. 그들이 먹고 싸는 일은 냄새 나고 짜증이 나는 일들이 되고, 그들이 집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 일은 그들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들여다보는 이는 아주 소수에 속한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버린 이들은 그저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호되게 야단을 치거나 벌을 세우기 위해 어딘가에 가둬버린다. 급기야는 밖으로 쫓아내기도 한다.     


[여름날의 동복이다. 저리 환하게 웃어주는 아이가 왜 버림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저 미소를 보면 그간 힘든 일들이 눈녹듯 풀어진다.]


나의 아이들은 저마다 이런 아픔이 있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들여다본다. 아무도 나의 아이들을 봐주지 않았기에 나만은 그들을 찬찬히 보아준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하면 왜 그랬는지 이해하려 한다. 가끔 너무 힘든 날도 있지만 대체로 힘들 것 없는 일상들이 흘러간다. 나와 아이들은 이제 나와 균형을 잘 맞추어 살아간다. 그들은 그런 존재들이다. 조금만 그들을 향해 눈높이을 맞춰주면 그들도 우리에게 맞추어 준다. 이들이 얼마나 인내심을 발휘해서 나를 가만히 기다려주는지, 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양보하며 나와 함께 살아가 주는지 안다면 그들에게 감히 화를 낼 수가 없다. 

     

   

[산들이는 내가 방에 들어오길 바라면 꼭 운다. 내가 허겁지겁 방에 들어가면 나랑 안놀고 지들끼리 논다. 그냥 내가 있는게 좋은 모양이다.]


종을 막론하고 반려동물로 우리의 곁을 찾아오는 동물은 우리의 사랑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들을 안전하게 돌보는 것 이외에도 차고 넘치는 사랑을 주려고 애를 써야 한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방귀를 뀌는 것도 좋고, 내 얼굴에 재채기하는 것도 좋고, 심지어 응아를 보기 위해 진지하게 자리를 잡고 포즈를 취하는 그 냄새나는 순간도 사랑한다. 반려동물과 가족이 된다는 것은 모든 순간의 반려동물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 할 수 있는 일이다. 단순히 천사같이 자는 모습만 또는 내 곁을 졸졸 따라다니는 그 이쁜 순간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동복이의 발냄새를 좋아한다. 저렇게 발을 보여주고 있으면 냄새를 맡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유혹에 시달린다. 그런 나를 유혹하려는지 동복이는 곧잘 발을 내놓고 잔다.]


반려동물은 인생의 여정을 함께하는 몇 안 되는 가까운 동반자이다. 우리는 그들 때문에 웃고, 그들 때문에 눈물짓게 된다. 그들은 우리의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를 보고 느끼고 사랑한다. 그런 그들이기에 반려동물에게 우리는 진짜 가족 같은 강한 연대감을 가져야 하며, 더 강한 책임감을 지녀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가족’이라고 부르는데 어떤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가족’이라는 말 이외에 달리 그들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데에 모두 머리를 끄덕여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나의 사랑스런 가족’인 반려동물을 기꺼이 사랑하고 함께해야 하는 것이다. 반려동물과 가족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