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가을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너무 추워졌다. 그렇게 걱정하던 겨울님이 결국 당도하신거다. 나는 겨울을 싫어한다. 추위에 유독 약한 나는 겨울만 오면 곰들처럼 겨울잠을 자려고 한다. 자꾸 따뜻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나는 그러면 안된다. 청소도 해야 하고 밥도 줘야 하고 놀아주기도 해야하며 열심히 돈도 벌어야 한다. 그런데 추운 날씨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나에게는 쉽지 않다.
겨울이 싫은 이유는 비단 개인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겨울은 동물들이 살아가기에도 너무나 혹독한 계절이다. 어디에서도 추위를 녹일 곳이 없는 아이들은 겨울의 칼바람에 무방비로 노출되며 다른 계절에 비해 먹을 것이 없어 더 지내기 힘들다. 실내에서 난방을 틀어논 것도 모자라서 이불 속으로 자꾸 기어들어갈려는 나에게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동물들은 밖에서 겨울을 나는데 너는 뭐가 춥다고 어리광이냐!”라고 말이다.
그런 내가 겨울을 좋아하기 위해 떠올리는 한 장면이 있다. 대학교때 친구와 일본에 여행을 갔었다. 그때는 여름방학 때여서 일본은 몹시도 더웠다. 한 숙소에서 만난 한 학생이 자신은 여름을 너무 싫어한다며 빨리 겨울이 와서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20년 전에 들은 이야기 인데도 그 이야기가 나는 잊혀지지가 않는다. 공부를 남들보다 오래한 나는 매해 겨울이 오면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고는 했다. 그러면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요즘도 집에서 책상에 앉아 일을 할 때마다 내가 마치 스웨터를 입고 도서관에 있는 상상을 하곤 한다. 지금은 도서관에도 못가고 아이들이 스웨터를 망가트려서 스웨터를 입을 수도 없지만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날이 점점 추워지자 그토록 기다렸던 편백이가 내방 침대를 찾아왔다. 나는 그런 편백이의 방문이 너무 좋아서 극진히 대접하고 있다. 편백이가 오면 전기장판을 틀어주고 옆에 앉아서 잠들때까지 토닥여 준다. 편백이가 잠이 들면 거실책상에서 일을 하면서 편백이가 깨지 않도록 조심조심한다. 이런 반갑기 그지 없는 편백이의 등장에 난색을 표하는 이는 다름아닌 소복이이다. 소복이는 그간 퀸사이즈 침대를 자신의 안방마냥 점령하고 이리 누웠다가 저리 누웠다가 하며 자유를 만낏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이 침대로 접근하면 무서운 이빨을 들어내며 꿋꿋하게 지켜오던 침대였다. 하지만 편백이는 그런 소복이의 방어공격에 정말 1도 신경쓰지 않으며 성큼 올라온다. 그러면 소복이는 금방 기세를 잃고 내 베개 위로 올라와서 또아리를 틀고 시무룩해 한다. 그 모습은 또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건복이는 사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더워도 실내로 들어오는 일이 좀처럼 없다. 더울 때에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 누워서 자거나, 추운 겨울에는 마루밑으로 들어가서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그런 건복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단연 ‘산책시간’이다. 산책시간만 되면 건복이를 필두로 복삼이, 후복이, 예복이, 꽃복이, 바둑이를 이끌고 과수원을 활보하며 신나게 돌아다닌다. 그런데 요즘 산책을 끝내고 다들 집으로 들어오는데 그때에도 들어오지 않고 한참 밖에서 놀다가 들어오는 일들이 잦아졌다. 내가 없는데 밖에 있는 것은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더 이상 이런 상황을 좌시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건복이를 목줄을 하고 산책을 데리고 나가게 되었다. 착한 건복이는 목줄도 가만히 잘하고 산책도 줄을 끌거나 하지 않고 잘해주고 있지만 왠지 기운이 한없이 빠져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대장이 없어서인지 건복이를 따르던 무리들도 산책이 끝나면 어김없이 일렬로 집으로 잘 들어왔으니 나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였다. 이럴 때마다 얼마나 나의 아이들과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모른다. 알아듣기 쉽게 찬찬히 몇 번이라도 말해줄 수 있으니 내 말을 듣고 집에만 제때 들어오면 목줄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건복이는 당분간 목줄을 하고 산책을 나가야 한다.
날이 추워져서 아이들이 방석을 부쩍 찾는다. 난방을 틀어주면 바닥이 뜨근뜨근해져서 바닥에 대자로 누워자는 애들도 많지만 난방을 안 트는 시간에는 방석을 찾는다. 나의 리듬이는 이제 방석쟁이가 되었다. 처음에는 방석도 담요도 싫다고 하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베개까지 비고 자려고 한다. 이런 변화를 볼때마다 사랑스런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날이 추워지자 방석의 소중함을 아는 듯 방석파괴범들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는 매일같이 솜폭탄 선물에서 모처럼 해방되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래도 밖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지만 이 녀석들이라도 내 곁에 데려와 품어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나의 손길이 닿지않는 아이들까지도 더 큰 품으로 끌어안아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며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