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가을 햇살에 눈이 부시는 요즘이다. 일을 하다 창문으로 내다보면 언제나 푸르를 것만 같았던 나뭇잎들이 노란색으로 바래어가고 그 위에 햇살이 쏟아진다. 창가를 통해 들어온 노란 햇살을 맞으며 아이들은 단잠에 빠져있다. 요며칠 날씨가 많이 쌀쌀해져서 다들 집안으로 몰려들어와서 낮잠을 즐긴다. 아이들 수에 맞춰서 춥지 않게 담요나 방석을 깔아주고 있지만 ‘방석 파괴범’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어서 제 모습을 갖춘 방석을 찾기란 쉽지 않다. 말썽을 부리지 않으면 나의 아이들이 아니니 이 정도는 그냥 눈감아주고 넘어간다. 그래도 말썽 안부리고 코코 잘 때가 가장 이쁘기는 하다.
나는 요 며칠 굉장히 바빴다. 반가운 손님이 찾아와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고, <미스터 트롯>의 ‘김희재’를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 서울로 콘서트를 보러 다녀오기도 하였다. 엄마와 좋은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새삼 깨달으며 이런 시간을 많이 갖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맘앤대디>라는 사료회사와 모델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아주 쑥스럽기는 하지만 광고사진 촬영도 하였다. 나에게는 특별한 기회였고 아주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며칠 무리를 해서 일까? 며칠전부터 몸이 굉장히 안좋았다. 아무래도 몸살이 단단히 난 것 같았다. 몸이 아파도 내가 하는 일을 대신해서 해줄 이가 없기에 나는 탈난 몸을 끌고 다니며 나의 아이들 시중을 들고 산책도 하였다. 다만 고양이방에는 출입을 하지 못하였다. 자율급식이니 밥을 주지 않아도 되었고 화장실은 몇 달전에 아기 욕조를 들여와서 제법 큰 화장실을 마련해주었으니 하루 정도는 괜찮겠지 했다. 그런데 다음날 들어가보니 새로 갖다논 화장실 모래 봉지를 물어 뜯어서 전부 방에 엎질러 놓은 것이다. 내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단단히 화가 난 것임에 틀림없었다. 나는 “이 놈들아~ 엄마한테 왜 그래~ 이게 모야~”하면서 투정섞인 말을 하자 엄마인 산이가 나에게로 다가왔다. 궁둥이를 떼려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궁둥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혼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몸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내가 애들과의 약속을 안지킨 것이니 산들이만의 잘못도 아니었다. 이제 다시는 모래 주머니를 산들이 방에 놓지 말고 약속도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 최고의 말썽쟁이인 눈복이가 떠나가고 눈복이의 자리를 탐내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산책을 나가면 어찌나 풀숲을 헤치고 돌아다니는지 아이들의 몸에는 항상 풀씨가 가득했다. 그 중에서도 다리가 불편한 건복이가 제일 심했다. 다리는 불편하지만 싸움을 잘하고 달리기도 잘하는 건복이였다. 그런 건복이는 언제나 선두에서 아이들을 이끌고 숲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고는 하였다. 그런 건복이의 뒤를 잘 따르는 화음이도 온통 풀씨 투성이다. 리듬이는 겁이 많아서 숲풀 속으로 잘 가지 않는데 화음이는 용감해서 건복이를 따라 잘도 들어갔다 나오고는 했다. 다행히 건복이는 금방 산책로로 돌아와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집으로 귀가하고는 하는데 풀씨 털어주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다.
편백이는 원래 다리를 어렸을 때 심하게 다쳐서 좀 불편해하기는 했는데 최근에 그게 더 심해졌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관절을 더 아파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이 탓인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다리가 아프면 내 침대로 와서 전기장판에서 몇 시간이고 몸을 지지고 있고는 하였는데, 요즘에는 통 발길을 들이지 않는다. 편백이가 덩치에 안 맞게 고양이를 무서워하는데, 내 방 옆이 고양이 방이 되고 나서부터는 아예 오지를 않는다. 내가 1박 2일로 어디를 갔다오면 꼭 돌아온 날은 내 침대에서 나랑 자는데 그 이외의 날은 오지를 않는다. 나는 그게 그렇게 섭섭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고양이를 다른데 옮길데도 없고...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양이가 고양이방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고양이 울음소리만 나도 기절할 듯 펄쩍 뛰어 나가기를 몇 차례 하더니 이제는 아예 발길을 끊은 것이다. 요즘에는 엄마 부엌에서 지내고 있지만 그래도 전기장판이 그리울 텐데 내 속도 모르고 겁쟁이 편백이는 내 방으로 오지 않고 있다.
정신없이 바쁜 나날들이 지나갔다. 이제 조금 한 숨 돌릴 수 있을 것 같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바쁘면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조금 깨져버린다. 매일매일 일정한 시간에 똑같이 되풀이 되는 일상이지만 나에게는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일상이다. 그것이 깨지는 것을 나는 사실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세상은 나와 아이들 이렇게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런저런 일도 해야할 것이다. 그러니 계획을 잘 세워서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내 삶은 나만의 것이 아니니 꼭 챙겨야 한다.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지켜주는 일이 나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