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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서영 Apr 06. 2022

초심을 잃지말자

나는 오래전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곳에서 작은 동물병원 하나를 열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꿈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동물병원은 물론 돈을 버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 더 유기견 발생을 줄일 수 있는 중성화 수술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해주고 싶었다. 보통 새끼 강아지는 입양이 잘 되는 편이지만 이곳은 새끼 강아지가 넘처 흐르는 곳이었다. 이런 비극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일은 중성화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제대로 된 수술과 치료를 받으려면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동물병원이 필요했다. 그렇게 나의 동물병원은 올해 2월 중순에 오픈을 하게 되었다.     


[현복이와 별복이가 똑같은 포즈로 잠을 자고 있다. 아이들의 잠든 모습에서 나는 행복을 본다.]


그리고 하늘이 도왔는지 내가 병원을 오픈한 2022년도부터 군에서 ‘마당개 중성화 사업’과 ‘길고양이 TNR 사업’을 시작하였다. 나는 정부의 지원금으로 내가 하고 싶던 중성화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사업지급비는 그리 큰 돈은 아니었지만 무료로도 해주고 싶던 나에게는 큰 금액이었다. 처음 TNR을 진행하였을 때 그 감회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전날 너무 뿌듯해서 잠도 잘 오지 않을 지경이었으니 말해 무엇하겠는가.

     

[마린이의 애정공세에 지친 얼룩이가 나를 쳐다보며 SOS를 청하고 있다. 나도 계속 마린이를 말려보지만 역부족이다. 마린이의 사랑은 언제나 직진이다.]


새삼 예전에 수의과대학 수시 면접 때가 떠올랐다. 교수님께서 왜 수의대에 진학하려고 하냐고 물으셨고 나는 동물들이 너무 많은 수가 있는 것이 도심 동물 문제의 핵심이라며 동물들에게 쓸 수 있는 피임약을 개발하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었다. 비록 수능점수부족으로 보기 좋게 낙방을 하고 재수를 해서 수의대에 가기는 했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에 와서야 그 포부에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피임약을 개발하지는 못했지만 피임을 해주고 있으니 좀 뿌듯해해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나가려고 일어나면 먼저 나가겠다고 아이들이 문앞을 점령한다. 이상하게 항상 문앞은 문전성시를 이룬다. 나가게 좀 비켜주라~]


그런데 한번은 8마리의 고양이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총 12마리가 들어왔는데 다른 병원(TNR 사업을 하는 병원은 총 나포함 3곳이다.)에서 4마리를 데려가고 나머지를 전부 내 병원으로 데리고 온 것이다. 나는 그 아이들이 행여나 밥과 물이 제공되지 안될까 걱정이 되어 전부 받기로 결정하였다. 오전, 오후 진료를 보면서 틈틈이 8마리의 수술을 하였고 나는 완전히 탈진 상태에 빠질 지경이었다. 보호소에서는 중성화비용은 군지원금으로 하고 입원비는 보호소 예산으로 따로 결제를 하겠다고 했다. 보통 암컷의 경우 수술 후 3일 입원을 권고하고 있어 총 입원료가 8마리, 5일이 나왔고 계산해보니 백만원이 넘었다.    

  

[산들이가 여전한 애정을 과시하고 있다. 산들이를 병원으로 거처를 옮기려고 한다. 아직 이사를 못갔는데 이번달 안으로 옮겨주려고 한다.]


보통 병원에서는 전자 차트를 사용하는데 전자 차트를 구입하면 대부분의 수가가 평균수가 정도로 차트에 입력이 되어 있다. 근데 그 가격이 좀 높다고 생각되서 나는 할인을 대부분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고생해서 할인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안 들었다. 그리고 그 얘기를 엄마한테 하자, 내 이야기를 들으신 엄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서영아, 너가 이번에 고생한 건 알지만 그래도 입원비는 3일치만 받는게 어떻겠니? 너가 입원비를 비싸게 받으면 너에게 아이들을 맡기기를 주저할 수도 있고, 입원일보다 더 앞당겨 데려갈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면 아이들이 고생하게 되니 그건 아닌거 같다. 언제나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단다.”

     

[지금의 성탄이도 이쁘지만, 예전의 성탄이가 조금 그립기도 하다. 이뻐도 너무 이뻤어서 그런가보다. 지금은 벌써 중년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내가 하는 중성화 수술이 베스트는 아니겠지만 난 적어도 장비도 갖추고 있고 2주 가는 항생제 주사도 놔주고 진통제도 꼼꼼히 챙기고 있다. 길고양이들이 최대한 아프지않게 그리고 밖에 나가서도 덧나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른 병원보다는 그래도 나에게 오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엄마 말씀대로 하는게 옳았다. 나는 그저 나에게 온 길고양이들이 힘든 기억으로 남지 않고 생선과 캔 먹은 기억만 가지고 무사히 살아나가길 바라는 것이 내 초심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귀염둥이 작은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잠이 들었다. 나는 애들 자는 모습 볼때가 뭐니뭐니해도 제일 좋다.]


엄마의 말씀을 듣고 나서인지, 내가 꿈에 그리던 동물병원을 열게 돼서인지, 요즘 초심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내가 어릴적 바라던 삶에 나는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남들은 내가 희생하는 삶을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저 앞으로 가고 있을 뿐이다. 내 병원을 찾은 보호자분이 이런 곳에 병원에 생겨서 든든하다는 말 한마디가, 나에게 온 길고양이가 깨끗하게 비워놓은 밥그릇에서 나는 뿌듯함을 느낀다. 초심을 잃지말고 이런 뿌듯함을 오래오래 누렸으면 좋겠다. 


    

*병원명과 병원사진은 사정상 올리지 못하는 것을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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