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4월이 왔다. 4월에 태어나서 인지 나는 4월을 참 좋아한다. 이곳에는 꽃나무들이 많아서 시기별로 꽃이 만발한다. 그러면 나는 아이들하고 같이 이곳저곳에 핀 꽃들을 살펴보고 사진도 찍고 그렇게 따뜻한 햇살을 만끽했다. 하지만 이번 봄은 병원 개원으로 바빠서 그런 사치를 부릴 여유가 조금은 없었다. 그래도 분주히 병원과 집을 오갈 때 흩날리는 꽃잎을 보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찬란한 봄을 느끼고자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병원 휴무 날이다. 하지만 병원을 오픈하고 토요일을 완벽하게 쉬어본 날은 손에 꼽는다. 그날도 병원에 출근하지 않고 아이들과 있어야겠다고 생각한 화창한 토요일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좀 안좋다고 데려가면 안되겠냐는 전화가 왔다. 애가 아프다는데 어떻게 오지 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빨리 데리고 오라고 하고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보았다. 아이는 집을 나간지 하루만에 돌아왔는데 상태가 좋지 못했다. x-ray 검사상 다행히 차에 치이거나 한 것 같지는 않았으나 턱부위가 크게 부워있었고 혈액검사상 간수치가 높게 나왔다. 나는 뱀에 물린 것 같다고 했고 빨리 수액을 주기 시작했다. 근데 아이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나는 광주의 큰 병원에 연락을 돌리며 항독소 주사제를 구했다. 항독소 주사제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사실 뱀에 물린게 확실할 때 들어가야 하는 주사지만 아이는 죽어가고 있었고 뭐라도 해야 했다. 행여나 부작용이 생길까 겁이 나서 새벽에도 나가서 지켜보고 있었다. 다행히 그 아이는 항독소 주사를 맞고 밥을 스스로 먹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심장이 쪼이는 기분이었다. 나는 환자가 안좋으면 긴장을 많이 한다. 행여 잘못될까봐 전전긍긍하고 그 환자 앞을 떠나지를 못한다. 그간 대진 수의사로 근무를 하면서 사실 내가 환자를 끝까지 진료하는 일이 없자 이런 심장 쪼이는 기분을 잊고 살았었다. 하지만 이 불편한 기분 후에 환자가 회복되는 것을 보는 기쁨은 그간의 노고를 말끔히 씻어주고도 남는다. 밥을 먹는 그 환자를 보호자와 함께 흐믓하게 바라보았다. 정말 환희에 찬 순간이었다.
예전에는 우리 애들 수술을 하려면 광주에 있는 병원까지 가야했는데 이제는 내 병원이 생겨서 아이들 수술을 내가 자유롭게 해줄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도 멀미하며 1시간 가량 차를 타지 않아서 고생을 좀 덜 시킬 수 있어 너무 좋았다. 근데 수술을 거의 다 해주어서 막상 내가 해주려니 나이가 많은 단밤이와 이제 1-2살인 단비만 남아있었다. 일단 단밤이는 마취의 위험성이 있어서 단비만 수술을 진행하였다. 단비는 수술을 하고 나자 눈에 띄게 어린양이 늘었다. 나만 보면 자기 배를 보여주며 여기 이렇게 됬다고 빨리 이쁘다하라고 재촉을 해댔다. 나는 그럼 단비를 안아서 단비 성에 찰때까지 배를 쓰담쓰담해주었다. 단비가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잘 회복하고 있어서 참 다행이다.
단밤이는 아주 작은 노령견이다. 몸무게가 3키로 정도 될까말까하는 아이인데 겨울 동안 춥다고 산책을 안했었다. 날이 풀리면서 내가 항상 안고 산책길에 오르곤 한다. 처음에는 나에게 안겨서 산책을 하더니 요즘에는 날이 좋아서인지 과수원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내려달라고 한다. 단밤이는 나이가 많지만 하나도 귀찮게 안하는 좋은 아이이다. 같은 노령견인 다복이는 무릎 위에서 사는데 반해 단밤이는 산책할 때 안기는 거 외에는 혼자서 잘 있는다. 우리 집은 딴게 효도가 아니다. 그냥 혼자 잘 있어주는게 나에게 해주는 가장 큰 효도이다. 그런면에서 우리 단밤이는 아주 효녀다. 겨울동안 좀 우울해 보였는데 이제 아주 활기차졌다.
봄이 오기가 무섭게 쑥을 캤다. 마중나온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아이들과 함께 여유롭게 쑥을 캐는 일이 너무 행복했다. 그때만 해도 내가 병원을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지금도 손님이 미어터지는 상태는 아니지만 그래도 쑥을 캘 시간적 여유가 없어져 버렸다. 지금은 아쉽게도 쑥이 너무 자라버려서 더 이상을 쑥을 캘 수도 없다. 대신 과수원 끝자락에 있는 두릅은 아마 지금쯤 딱 먹기좋게 자라있을 것이다. 이번 주말엔 꼭 아이들 데리고 두릅을 따러갈 생각이다.
오늘은 봄비가 내린다. 요며칠 너무 더워서 꼭 여름비 같지만 어쨌든 가물었던 땅에 비가 내리니 나는 반갑다. 고양이들이 걱정되긴 하지만 말이다. 요즘은 하루해가 어떻게 저무는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다. 나의 아이들과 같이 낮잠을 자던 달콤했던 시절이 조금은 그립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일이니 기쁜 마음으로 하려고 한다. 글을 쓸 여유를 내기가 쉽지 않아 글이 많이 늦어졌다. 끝까지 조용히 기다려주신 독자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