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발달린 털복숭이 나의 가족

가슴으로 낳은 나의 자식들

by 손서영

우리 집에는 모두 23마리의 개들이 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개들의 엄마다. 나는 결혼을 안했기 때문에 자식도 물론 낳아본 적이 없다. 하지만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나는 줄 곳 누군가의 엄마로 살아왔다. 엄마라는 호칭을 갖는 순간, 그 아이들은 나를 그 누구보다 따른다. 그 대신 그 책임감 또한 무겁다. 하지만 나는 그 책임감을 기꺼이 둘러 맬 수 있다. 나를 연신 졸졸 쫓아다니는 통에 내가 있는 곳은 언제나 만원 버스마냥 정신없다. 행여 누구 발이라도 밟을까 조심해야 한다. 행여 꼬리라도 밟으면 아프다고 난리난다. 그래서 항상 조심조심 이리 피하고 저리 돌아가고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게 좋다. 나는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가 그렇게 행복하고 좋을 수가 없다.


여름이라 덥다고 사총사가 신방장에 누워있다. 문도 부셔놓고, 장판도 다 찢어놓고 뭘 잘했다고 다들 시원한데를 찾는게 우스워 죽겠다.


개라는 생명체는 참 기구한 운명을 타고났다. 세상에서 제일 변덕이 심한 인간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이런 운명 탓에 언제 차가운 거리로 내쫓길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간다. 가끔은 나는 하늘을 원망하고는 한다. 거리를 끝도 없이 헤매고 있는 개를 보거나 보호소의 차가운 바닥에 사람의 손길을 갈구하며 웅크리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원망한다. 왜 개라는 생명체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였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나에게 나의 개들이란 매일 나를 반겨주고, 늘 눈을 맞추고,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순간들을 조용히 지켜봐주는 존재들이다. 이런 존재 없이 나는 이 세상을 살아갈 엄두가 안 난다. 그래서 나 같은 인간들 때문에 개들이 존재하나 보다. 그래도 하늘은 개들에게 너무 하기는 했다.


새로온 블루를 위해 캣타워를 들여놨더니, 사총사가 더 신이 났다. 조만간 부셔놓지 않을까 싶다.

나와 나의 아이들 사이에는 깊은 유대감이 있다. 내가 그들에게 날카로운 바늘을 갖다 대어도, 중성화 수술을 하여도, 아이들은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든다. 이렇게 까지 나를 믿어주고 사랑해주는 존재가 또 있을까? 말이 통하는 사람하고도 이 정도의 유대감과 신뢰감을 쌓기란 어려운데, 반려동물과는 말없이도 이런 굳건한 관계가 죽을 때까지 지속된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나를 믿고 좋아해주는 녀석들을 위해 나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된다. 엄마는 용감해진다는데, 감히 진짜 아이들을 둔 엄마에 비하진 못하겠지만, 나 같은 반려동물 엄마도 슈퍼우먼이 된 것만 같다.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나가서 일(대부분 집에서 일을 하지만)을 하고 돌아와서 애들 산책과 밥을 챙겨주고 잘 때는 애들 다리피고 자라고 밤새 쪼그리고 자고. 그래도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 지는게 털복숭이 아이들이 꽤나 사랑스러운가 보다.


새로온 월복이와 화복이. 똥꼬 발랄하게 둘이서 놀고 있다. 난 이런 모습을 볼 때가 가장 행복하다.

예전에는 이런 아이들이 말을 못한다고 해서 고통도 못 느끼고, 의식도 없는 존재라고 여겼다. 그래서 갖은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사실 동물 학대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다. 가끔 신문이나 뉴스에서 아동 학대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 나는 그 인간의 잔혹함에 치를 떨며 동물들에게는 얼마나 알려지지 않는 학대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자신의 자식도 때려죽이는 세상인데 동물은 말해 무엇 하랴 싶다. 나는 여건만 된다면 그런 아이들의 상처를 내가 보듬어 주고 싶다. 그럴 때마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속세의 감정이 머리를 든다. 시골로 내려오면서 그저 나의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한평생 만족하며 살겠다 생각했는데 직업이 수의사라 그런지 자꾸 눈에 밟히는 아이들을 볼 때면 돈 욕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이들에게 유독 치이는 다복이와 화복이를 위해 상자를 쌓아서 만들어준 이층 침대다. 두 마리 다 맘에 들었는지 요즘 자주 애용하고 있다.

나는 어디가서 내가 23마리의 개를 키운다고 말하지 않는다. 내가 줄이고 줄여서 10마리의 개를 키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만 해도 나를 이상한 여자로 보거나 자신의 개를 맡기려고만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동물을 가까이 두면 안 된다는 황당무계한 괴변을 늘어놓는 사람도 많이 봤고, 결혼하는데 동물이 방해가 된다며 그래서 결혼을 못하셨나보다는 말까지 들었다. 이러니 내가 개들하고만 자꾸 놀게 된다. 그게 젤 재밌다. 아이들은 모두 제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있고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도 서로 다 다르지만, 나에게 항상 유쾌함을 선사해준다. 웃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재주들을 다 가지고 있다. 쓸데없는 연설로 나를 괴롭히지도, 같잖은 조언으로 나를 당황시키지도 않는다.


아이들 등살에 다부서져 나간 나의 불쌍한 문짝이다. 천으로 막아놨더니 소복이가 뭐가 궁금한지 고개만내밀고 있다.


반려동물은 인생의 여정을 함께하는 몇 안 되는 가까운 동반자이다. 그런 그들에게 조금더 따듯한 시선을 그리고 좀 더 굳건한 신뢰를 약속해주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도 나를 에워싸는 호위무사들과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나의 개벤져스들은 달콤한 잠에 빠져있다. 나는 그저 그들이 자고 있는 내 침대로 비집고 들어가 조심조심 몸을 누이면 된다. 정말 신나는 밤이 될 것 같다.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나 가까운 사람의 안녕을 위한 편협한 노력이 아니라 세상 모든 의식적 존재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를 키우는데서 온다.” - 달라이 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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