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고 있는 곳은 소동물병원이 없는 곳이다(소동물 병원이란 개와 고양이를 진료하는 병원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개들이 아파도 치료할 수 있는 곳이 없어 1시간 가량을 차로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시골 개들에게 그 만큼의 시간과 돈을 투자할 사람들은 별로 없다. 한마디로 여기는 의료 사각지대이다. 다행히도 시골 개들은 특유의 잡종견답게 건강하지만 간혹 가다가 사고가 나거나 서로 싸워서 상처가 나는 등의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한다. 차에 치어 하반신이 마비가 오거나, 서로 싸워서 얼굴이 찢어지거나, 뱀에 물려 얼굴이 퉁퉁 붓는 등의 일들이 벌어진다. 그러면 나를 아시는 분들은 나에게 연락을 하신다.
뱀에게 물려서 얼굴이 퉁퉁부웠던 환자. 진료할 때는 사진을 찍지 않아서 사진이 없다. 이 사진은 보호자가 찍어서 보내주신 사진이다.
나는 그런 분들에게 내가 집에 있다면 시간대가 어떻든 지에 상관없이 오시라고 하거나, 환자를 데리고 오기 힘든 상황이면 내가 직접 가거나 한다. 나는 불행히도 검사 장비는 가지고 있지 않아서 눈으로 보거나 청진기에 의존에서 진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진단을 내리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아예 진찰을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진단이 내려지면 약을 처방하고 상처난 부위를 꿰매기도 하고 수액을 놔주기도 하는 등의 진료행위를 한다. 아직까지는 큰 문제없이 잘 치료되어 무척 가슴 뿌듯하다.
행복이 코에 뽀뽀하는 예복이, 예복이도 목에 둘러져 있던 쇠사슬때문에 상처가 났었다. 치료 후에 우리 집에서 키우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새끼를 낳은 진도믹스견을 보게 되었다. 새끼를 낳고 키우느라 몸이 말라있던 녀석에게 닭가슴살을 몸보신 하라고 주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그 길을 지날 때면 항상 맛난 간식을 챙겨다니게 되었다. 그 아이의 이름은 ‘순이’였다. 순이는 그래도 집도 있고 목줄도 1.5m 정도로 다른 묶어서 키우는 개들보다는 조금 더 긴 줄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쪽 면은 벽으로 막혀있고 다른 쪽은 트럭들이 세워져 있어서 무척 지루한 환경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 순이가 안타까워 친구가 되어 주면서 자주 찾아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갑자기 배가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다. 새끼를 낳은지 얼마 안되서 다시 임신을 했을 리는 없었다. 나는 배를 조심스럽게 만져보고 복수가 찬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엄마를 잃은 화복이와 월복이.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어 내 보살핌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리고 한 가족이 되었다.
순이의 주인을 만나 순이의 상태를 얘기하고 심장사상충 검사를 받기를 권유하였다. 다행히도 심장사상충 검사는 작은 키트하나로 가능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는 양성이 나왔다. 나는 복수를 뽑고 심장사상충 치료를 해 나갔다. 심장사상충 치료는 무사히 끝났지만 복수는 계속 차 올랐다. 나는 순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서 복수의 원인에 대한 검사를 더 진행하고 싶어졌다. 분명 다른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은 순이를 병원에 데려가는 것을 꺼려 했고 나는 다시 나의 눈만으로 진단을 내려야 했다. 만일 심장에 의한 복수라면 이뇨제가 들어야 했다. 하지만 순이는 이뇨제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간에 의해 복수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복수가 심하면 분명 황달이 같이 와야 하는데 황달 소견은 없었다. 그 다음으로 의심되는건 PLE(Protein losing enteropathy)라는 자가면역성 질환이었다. 흔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한번 약물에 대한 반응이 있는지 확인을 해야 했다.
다리가 덫에 걸려 나에게 치료를 받고 한 가족이 된 건복이. 지금도 다리를 살짝 전다. 그래도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다시 복수가 차는지를 보기위해 복수를 뽑아주고 약물을 투약하기 시작했다.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복수가 차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순이의 상태가 점점 좋아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얼마나 그 동안 순이 걱정을 했는지 말로 다 하지 못할 정도였었다. 그런 순이가 건강을 되찾은지 얼마 안되서 다시 임신을 하고 말았다. 이제는 주인에게 중성화에 대해 설명을 드릴 차례가 온 것이다. 더 이상의 임신은 막아야 했다. 임신을 하면 새끼들이 젖을 빨지 않고 커졌던 젖이 줄어들면 그때 중성화 수술이 가능하다. 그때가 되면 주인에게 중성화를 권해볼 생각이다.
집 앞에 버려져 있었던 사총사 중에 복일이와 복삼이. 그 사이에 별복이가 껴있다. 쿨쿨 잘도 잔다.
동물병원에서도 진료를 보지만 여기서 시골 개들의 진료를 보는 일이 나는 더 행복하다. 속 시원하게 검사를 해볼 수도, 다른 수의사들과 상의를 해가며 진료를 볼 수도 없지만, 나는 맨몸으로 마주하는 의료봉사가 더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앞으로 내 병원을 갖게 된다면 더 많은 아이들에게 의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지금처럼 자신의 개가 아픈 것을 그냥 넘기지 않고 나를 찾아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너무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시골 개들이 아프지 않기를, 그리고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그리고 내가 조금이나마 이런 일들에 도움이 되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가을이 내려 앉은 길을 우리 아이들이 신나게 거닐고 있다. 요즘에는 산책길이 너무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