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쉼표

꿀같은 방학

by 손서영

나는 건강한 체질이라기보다는 골골한 체질이라는 말이 더 맞는 사람이다. 잔병치례가 많고 조금만 무리를 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즉각 반응하는 편이다. 정신적으로는 그다지 힘이 들지 않은데 몸이 오히려 더 먼저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세상 살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었다.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등하교를 하던 시기가 끝나자 항상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출퇴근을 하는 삶이 계속되던 때에는 나의 이런 몸은 성가실 정도로 무거웠다. 한마디로 데리고 다니기 참 거추장스러웠다고 할까. 아무튼 이런 몸둥아리를 데리고 사는 데에는 지금 같은 프리랜서의 삶이 더 맞았다. 나는 내 생체 리듬에 맞추어 나의 스케줄을 맞추어 가며 조금씩 안정적인 삶에 도달했었다.


꾀복이는 나를 보면 항상 뛰어오른다. 작은 몸짓으로 열심히 나를 향해 반가움을 표시하는 것이 좋아 나는 꾀복이를 안아 올린다. 사랑스런 아이이다.


그러다가 나는 덜컥 한 수의과대학에서 동물복지학을 강의하기로 해버렸다. 참 평화로운 일상에 갑자기 강의가 끼어든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나는 무대공포증이 있었다. 사람들 앞에 서면 앞이 깜깜해지고 머리는 새하얘지고 그리고 가장 싫었던 것이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이 있었다. 다른 건 어떻게 해서든 감출 수 있는데 목소리가 떨리는 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컨트롤이 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나는 모든 발표수업 때마다 발표를 피하게 되었고 그렇게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잘 피해 다니며 대학을 졸업했다.

해복이 일가는 항상 꽁냥꽁냥 모여있다. 한가족을 함께 키우는 일은 정말 멋진 일이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니 발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들이 나에게 너무도 많이 찾아왔다. 대학원에서의 잦은 발표 수업과 조교 시절 실습교육부터 병원에서 임상강의까지... 이런 일렬의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떨리는 버릇이 고쳐졌지만 나는 여전히 남들 앞에 서는 것이 익숙해지지 않았다.

세상일은 정말 뜻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는데, 나에게 그것이 발표, 즉 강의이다. 이번이 두 번째 대학 강의이지만 여전히 하기 싫고 피하고 싶고 그렇다. 게다가 나는 ‘어떻게 되겠지뭐’ 라는 패기와 배짱을 타고나지를 않았다. 준비에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는 성격이다 보니 강의가 잡혀있는 주는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저 한 사람에게라도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 동물을 존중하는 마음을 심어주고 싶다는 욕심만 없었다면 때려 치워도 10번은 때려치웠을 일이었다.


산책하다가 건복이와 예복이가 장난을 치고 놀고 있다. 서로 밀고 당기고를 하다가 결국은 둘다 엎어졌다. 나는 이런 광경을 볼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런 강의가 드디어 방학을 하였다! 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학생들에게 제대로 나의 강의가 전달되었는지는 또 고민할 문제이지만 일단은 끝났다는 것에 환호를 보내는 바이다. 이제 다시 나의 일상으로 되돌아온 기분이었다. 나의 아이들과 실컷 낮잠도 자고 내가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는 삶이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이런 행복도 잠시다. 1월부터 병원에 매주 1박 2일로 진료를 나가기로 또 덜컥 일을 잡아놨기 때문이다. 병원이 멀어서 출퇴근이 힘들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이들과 떨어져서 하루 밤을 보내야 한다.


나는 분명 작은 새끼를 키웠는데 이제 다 큰 어른이 되어 버렸다. 그 모습이 제법 집을 지키는 개들같다. 그래도 나에게는 그저 어린 강아지같은 품안의 자식이다.

그래서 아주 잠시지만 나에게 쉼표같은 시간을 선물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의 아이들에게도 나와 실컷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나는 세상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제일 좋고, 세상에서 아이들과 함께하는 나의 집이 제일 좋다. 아이들이 투닥투닥 장난치는 것도 좋고, 맛난 것을 세상 맛있게 먹는 것도 좋고, 담요 위에서 코코 잠들어 있는 것도 좋다. 하나하나가 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집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모른다. 하루가 너무 짧아 항상 아쉽다. 나의 아이들도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기를 바라는데 잘 모르지만 그런 것 같다. 아침이 되면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나를 깨워되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눈뜨는 순간부터 잠들때까지 아이들 옆에 꼭 붙어있을 생각이다. 1월까지는 자유다. 우리 아이들 만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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