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순이와 편백이
나에게는 2마리의 늙은 개가 있다. 내가 이곳에서 살 생각이 전혀 없었던 시절, 정년퇴임을 하신 아빠는 시골과 서울을 오가며 지내셨다. 그때 개 한 마리 없이 혼자 지내시는 아빠가 걱정되신 친척분이 새끼 진순이를 얻어오셨다고 한다. 진순이는 어렸을 때부터 여기서 살아왔지만 난 작고 어린 그 시절의 진순이를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어린 시절의 진순이를 너무 보고싶지만 그 당시에 나는 서울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던 터라 관심조차 없었다. 그렇게 진순이는 커갔고 성견이 다되어 1살이 되었을 때에 나는 편백이를 병원에서 만나게 되었고, 그 인연으로 편백이는 시골집에서 아빠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게 되었다.
편백이를 시골집에 데려다 주러 내려갔을 때 나는 처음 진순이를 보았다. 진순이는 매우 영리하고 몸짓도 날쌨으며 집안에 있는 쥐들을 잡는 것이 낙인 아이였다. 그렇게 나와 진순이의 짧은 조우는 끝이나고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가 내 생활에 집중했다. 편백이는 시골에 남겨져 제 2의 견생을 맞이했으며 아빠의 가장 친한 친구로 자리를 잡고 진순이와 이곳 저곳을 누비며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며 살게 되었다.
편백이가 시골에 오고나서 얼마 있다가 암컷이었던 진순이는 옆집 개와 교배를 하여서 새끼를 낳게 되었다. 나는 유기견의 발생이 무분별한 번식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 절대 새끼를 낳는 일은 발생시키지 않았지만, 내가 없는 시골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아빠를 원망하기도 하였지만 새끼 1마리만 남겨 놓은 채로 다른 아이들은 모두 분양을 보내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얘기지만 그때는 이미 일이 벌어지고 나서야 나는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렇게 남겨진 새끼 한 마리가 바로 행복이다. 행복이는 엄마와 함께 즐거운 삶을 이곳에서 누리게 되었고 행복이가 중성화 수술을 할 수 있는 7개월이 되었을 때, 나는 시골로 내려가 진순이와 행복이의 중성화 수술을 해주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안생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진순이가 6살, 편백이가 5살 되던 해에 나는 시골로 내려왔다. 내가 온 뒤부터는 하루에 2번씩 꼬박꼬박 산책을 시켜주었고 진순이와 편백이는 산책시간을 사랑했다. 진순이는 특유의 영리함과 날쌘 몸놀림으로 자꾸 야생동물을 사냥했다. 꿩을 잡아오기도 하고 뱀을 잡기도 했으며 오소리도 잡은 적이 있었다. 나는 더 이상의 야생동물의 희생을 묵과할 수 없어 진순이만 산책시에 목줄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진순이는 목줄을 몹시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진순이를 목줄을 하고 2년간 산책을 하다가 진순이가 눈에 띄게 움직임이 둔해졌다는 것을 느끼고는 목줄 없이 산책을 했다. 진순이는 어느덧 늙은 개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야생동물을 쫒지도 않고 산책로를 벗어나 달려나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뒤를 이어 편백이도 산책로를 벗어나지 않았다.
내가 산책하는 길은 산책로 오른편으로는 논이, 왼편으로는 산이 있어서 아이들이 걸핏하면 산으로 들어가 버리고는 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대꾸도 하지 않고 산 속으로 유유히 사라지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대신 이제는 사총사(복일, 복이, 복삼, 복오)가 산속으로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하며 왁자지껄 산책을 한다. 그리고 나의 늙은 개들은 그저 내 뒤를 조용히 따라올 따름이었다. 이렇게 세대가 교체되고 있었다. 저 멀리로 달려 나가는 편백이를 멈추게 하려고 이름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그때가 생각나고, 야생동물을 행여나 또 잡아올까 달려 나가겠다는 진순이와 목줄을 잡고 씨름을 했던 그때가 그립게 느껴졌다.
나의 늙은 개들은 더 이상 밖에서 보초를 서면서 짖거나 하지 않게 되었다. 밤이 새는 줄 모르고 짖어대는 통에 잠을 설치게 하던 녀석들이었다. 편백이는 원래도 침대를 좋아했지만 요즘에는 전기장판을 틀어주면 거기 누워서 꼼짝도 안하고 잠만 자고, 진순이도 틈만 나면 집에 들어와서 담요 위에서 잠을 청하기 일쑤이다. 겁 없고, 이 일대를 호령했던 나의 개들이 이제는 만사가 귀찮은 듯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을 보면 마음 한켠이 쓰라리기도 하고,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을 달래곤 한다. 아직 적어도 5년은 더 남아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 아이들의 삶은 더없이 행복했을 거라고 말이다. 편백이는 남다른 체구와 외모로 가족들의 사랑도 받고 이웃에서도 다른 아이들의 이름은 몰라도 편백이는 알 정도로 우리집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로 자리매김을 하였고, 진순이는 집을 잘 지키고 어린 애들의 군기반장으로 질서를 지키는데 큰 공을 세운 아이였다. 그런 나의 아이들이 내 곁에서 나이들어 갔다는 것은 나에게는 행운과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다는 것이 나로하여금 그 어떤 일보다 행복한 일이 되고 있다. 나는 지나가는 세월을 탓하거나 슬퍼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의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더 많은 사랑을 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나는 나의 늙은 개들과 함께 매일매일 소중한 추억을 쌓아가려고 한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믿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