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떡궁합
나는 어렸을 때부터 명절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혼자서 놀거나 동물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다던 나는 일가친척이 전부 모이는 자리는 왠지 불편했다. 오랜만에 보는 사촌들이 반갑기는 했지만, 명절 때마다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를 보는 것은 매우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나이때부터 결혼한 뒤 겪게 될 며느리의 삶이 치가 떨리게 싫다고 느꼈었다.
조금 커서는 친척들의 덕담을 듣는 것이 썩 좋지 않았다. 성적 얘기, 대학 얘기, 직장 얘기 그리고 결혼 얘기까지 나는 뭐하나 듣고 싶은 주제가 없었다. 30대가 가까워지면서 나는 결혼얘기에서부터 엇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명절 연휴가 다가오면 자진해서 병원에 남아 일을 하는 것을 택했다. 그 편이 몸도 마음도 편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명절에 참석하고 안하고는 나의 선택에 의해 결정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제는 1년에 한번 제사때만 친척들이 모이게 되었고, 명절에는 오빠네와 조촐하게 하던지 여행을 가던지 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드디어 엄마가 해방되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대신해서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지 않았으니 우리 집의 여자들은 편하게 명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엄마를 위하는 오빠는 요번 추석을 맞이해서 가평으로 여행을 준비했다. 멋진 숙소를 잡고 부모님과 나를 초대해 주었다. 나는 짧은 기간이라도 아이들과 떨어지는 것을 싫다 보니 몇 번을 고심하다 가족들의 설득에 넘어가 참석하기로 하였다. 최근에 대학교 강의에, 책 마감일에 쫒기다 보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또 머리를 좀 식히고 재충전하는 시간을 갖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펜션은 그림 같은 집이었다. 나는 제일 예쁜 방을 골라 짐을 풀었다. 이런 방에서 지내면 글이 술술 써질 것 같았다. 나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오랜만에 반신욕도 하고 글을 쓰려고 노트북을 펼쳤다. 그런데 글은 안 써지고 나없이 이 밤을 보낼 내 새끼들이 떠올라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침대 위에 토하고 오줌 싸고 하는 통에 매트리스 있는 침대를 사기가 꺼려져 이제껏 라꾸라꾸에서 지내던 내가 푹신한 더블침대에서 혼자 자려니 잠도 오지 않았다. 편백이가 이런 침대를 보면 제일 좋아할텐데 혼자 이 호사를 누리자니 아까워서 잠이 오래도록 들지 않았다. 그렇게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나의 아이들이 격렬하게 반겨주었다.
저마다 할말이 많은지 나를 붙잡고 늘어지고 서로 얼굴을 들이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런 아이들을 몰고 내 방으로 가서 라꾸라꾸 침대에 누우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림 같은 집이 아니어도 내가 있는 이곳이 가장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내가 생각할 때 나는 내 아이들과 천생연분, 찰떡궁합인거 같다. 이렇게 서로 조금도 떨어져 있기 싫어하니 말이다. 그 어디서도 받아주지 않던 아이들이지만 나에게는 하나하나 없어서는 안되는 아이들이니 이렇게 궁합이 좋을 수가 없다.
명절이 이렇게 편하게 변한 것을 반가운 일이지만 나는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하는 명절을 꿈꾼다. 명절때만 되면 혼자 남겨지는 아이들이 안타까워 혼자 시골에서 명절 연휴를 보낸 적도 많지만, 가족과 함께 그리고 나의 아이들과 함께 같이 명절을 보내는 것을 가끔 꿈꿔본다. 이러다 나중에 결혼하게 되서 아이들을 두고 시댁에 가야 할지도 몰라 덜컥 겁이 나기도 하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걱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그저 내 침대에 누워서 내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애들을 보며 마음껏 행복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