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긴 장마를 보내는 방법

25마리의 장마 대처기

by 손서영

올해의 여름은 무더위로 지치기 보다는 끝날 것 같지 않은 장마로 인해 참 지루하기 짝이 없다. 나의 아이들은 지독히도 비를 싫어해서 비가 오는 날에는 모두 집안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늘어지게 잠을 잔다. 그런데 요번 장마가 끝도 없이 길어지자 나의 아이들은 더 이상 집에만 있기 지루한 듯 나가서 각자의 위치에서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복일이가 요즘 좋아하는 자리는 파라솔 밑이다. 저 자리가 마음에 드는지 하루종일 이러고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의 산책을 거를 수는 없는 일. 아침 산책은 새벽 6시부터 비와 나의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아이들의 잠을 깨울 수 없어 가만히 눈만 뜨고 누워서 창밖의 비가 잦아지길 기다린다. 비가 조금 약해지면 나는 얼른 애들을 앞세우고 산책길에 나선다. 복삼이와 목줄로 줄다리기를 하면서 산책을 하다보면 어느새 산책이 끝나 있다. 요즘에는 복삼이와 복이를 데리고 다니느라 산책할 때 사진을 찍을 겨를이 없다.


처마 밑에서 비를 지켜보고 있는 눈복이와 편백이다. 둘이 절대 같이 안놀지만 많은 시간 같이 있는다.


산책을 하고 아침을 먹고 나면 다들 각자의 자리에 가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린다. 편백이는 지붕이 있어 비가 가려지는 정자에 가서 대부분의 시간을 누워서 지내고 눈복이는 편백이와 함께 정자에 있다가 지루하면 혼자 개구리를 잡으며 논다. 편백이는 이제 노령견이고 눈복이는 한창때이니 같은 장소에 있어도 편백이는 주로 누워서 지내고 눈복이는 장난할 거리가 없는지 찾아 이곳 저곳을 살펴보느라 바쁘다. 눈복이는 털이 그 사이에 제법 자라서 이제는 대충 봐줄만하다. 그간 눈복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좀 마음이 놓인다.

아빠와 함께 정자에서 쉬고 있는 편백이와 눈복이다. 요즘엔 정자가 바람도 불고 비도 막어주어서인지 거의 정자에서 시간을 보낸다.


만삭의 몸으로 구조되어 우리 집으로 온 또복이는 밖에서 지내는 걸 참 좋아했던 아이인데, 요 근래에는 거의 집 안에서 지낸다. 덩치가 커도 마음이 여리고 순한 은복이와 장난치고 노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홀(공동생활구역)에서 지내는 모든 아이들은 은복이와 장난치는 것을 좋아한다. 애들도 착하고 성질부리지 않는 친구를 단박에 알아보고 좋아하는 걸 보면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 어디서근 성격 좋은 친구가 인기가 많다. 은복이는 학대를 받던 아이여서 참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지금은 인기쟁이가 되었다. 나는 은복이가 든든한 베이비 시터 같아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은복이에게 기대어 있는 애가 또복이고 하얗고 큰 애가 은복이다. 둘다 너무 성격좋고 착한 아이들이다.


그러다가 날이 살짝 개면 나의 아이들은 귀신같이 알고 앞마당으로 뛰어 나간다.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은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꼼짝도 안해서 그 아이들 콧바람이라도 씌워줄려고 나도 덩달아 밖으로 나온다. 실컷 장난치고 놀고 들어오는 아이들은 젖은 흙에서 놀아서 발이 엉망이다. 하나하나 씻겨줄 수 없어서 침대에 올라오는 애들 위주로 닦아 준다. 이러니 집안 청소를 해도 티가 안난다. 그래도 나는 나의 아이들이 좋고 그 흙발도 좋다.


오랜만의 햇빛이 신이 났는지 공중에서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서로 자매 사이인 월복이와 화복이다.

저녁때에도 4시반부터 비와의 눈치게임을 하다가 큰 마음 먹고 우비를 입고 복이를 데리고 저녁 산책에 나선다. 산책로는 다행히 나무가 많이 있어 빗방울을 튕겨내어 준다. 그리고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듣기 좋다. 하지만 이런 낭만을 즐길 새도 없이 나는 복이와 목줄 줄다리기를 하며 산책을 한다. 복이도 개구리 잡는 것을 좋아해서 갑자기 괴력의 힘으로 뛰어가기도 하고 멈춰서서 안가고 버티기도 해서 요즘 산책을 하고 나면 온 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다. 그래도 하루종일 묶여있다 그 짧은 시간 자유를 맛보는 것이라서 되도록 복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배려한다.


드디어 침대를 바꿨다. 라꾸라꾸에서 자다가 침대에서 자니 꼭 호텔에 온 것 마냥 매일 밤 설랜다. 편백이도 맘에 쏙 들어하니 이보다 더 기쁠 수가 없다.

원래 내 방에서 자던 아이들이 아닌 밖에서 자는 눈복이와 건복이까지 밀고 들어오면 그 날은 백프로 밤새 비가 내린다는 뜻이다. 내 방은 애들이 뭍히고 들어온 물기로 습기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제습기를 부지런히 돌리고 선풍기도 회전으로 거실에 하나 내 방에 하나 틀어주어서 꿉꿉하지 않도록 노력해본다. 아이들을 뽀송한 방에서 자게 하고 싶은데 요즘은 나의 제습기가 너무 작은지 24시간 돌려도 습기가 꾸물꾸물 올라온다. 어쨌든 비가 오는 하루가 지나가는 밤이 오면 나는 먼저 침대에서 자고 있는 편백이가 깨지않게 조용히 올라가 좌 소복, 우 동복이를 배치하고 잠을 청한다.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배경으로 아이들의 코고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리들을 들으며 나도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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