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름에 보내는 소식지

장마가 가고 무더위가 찾아왔다.

by 손서영

매년 여름이 되면 더위와 벌레에 쫒겨 정신을 차리기 힘들다. 숲 속에서 맞이하는 여름은 어쩔때는 두렵기도 하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게 해줄 것 같지만 사실 작정하고 내리쬐는 햇빛을 피할 곳은 별로 없다. 결국 집 안으로 들어와 에어컨을 킬 수 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고 아이들은 나를 따라 들어와 에어컨이 주는 시원함을 만끽하며 집에서 데굴데굴 산책 시간이 될 때까지 머무른다. 얼핏 보면 평화로워 보이지만 내가 조금만 움직여도 아이들이 동요하며 짖어대기 시작한다. 나는 결국 화장실도 참을 때까지 참고, 목이 말라도 꾹 참으면서 아이들이 잠에서 깨지 않도록 조심한다.


KakaoTalk_Photo_20200817_1139_54906.jpg 장마였을 때 처마밑에 모인 나의 아이들, 그때는 비만 그쳤으면 했는데... 비가 그치자 지금은 너무 덥다.


한두 달전쯤부터 산책길이 농로에서 과수원으로 바뀌었다. 개구리잡기를 유독 좋아하는 눈복이가 자꾸 개구리를 따라서 논으로 들어가 더 이상 논 옆길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개를 키우는 사람은 언제나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하고 또 주의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나의 잘못으로 인해 다른 개들이 피해를 입을 수가 있다. 가뜩이나 동물에게는 조금은 박한 시골에서 개가 농사를 망쳤다는 소리가 나오면 모든 들개부터 주인있는 개들까지 같이 곤란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5년간 애정해온 산책길을 버리고 과수원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 이놈의 눈복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수원에서도 잡기 놀이에 한창이다. 눈복이 때문에 어쩌다 나타나는 두꺼비는 (개구리는 너무 빨라서 잡지를 못한다) 보이는 즉시 냅다 들고 튄다. 눈복이가 안보는 안전한 곳에 내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KakaoTalk_Photo_20200817_1139_45375.jpg 자신의 죄를 아는지 모르는지 눈복이는 과수원에서 그저 신이 났다. 다들 보물찾기가 한창이다.


말썽꾸러기 복삼이와 복이가 조금은 나아지고 있다. 이제는 산책할 때 굳이 목줄을 하지 않아도 자기네들이 실컷 놀고 나서 자기 자리로 돌아온다. 나는 좀 더 놀다 오라고 아침을 주기 전까지 묶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가 내가 오면 얌전히 목줄을 한다. 기특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요즘에는 산책할 때 두 손이 자유로워 애들 사진을 찍어주기 좋다. 나는 풀도 없고 길도 포장된 농로로 산책하는 걸 더 좋아하지만, 아이들은 풀 숲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진드기를 잡아주는 건 내몫이다). 며칠 전에는 고라니가 뛰어 나와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애들이 고라니한테 뛰어가서 목이 터져라 불러서 무사히 고라니가 도망갈 수 있게 해주었지만 나는 목소리를 잃을 뻔 했다.


KakaoTalk_Photo_20200817_1140_12692.jpg 동복이는 유독 더위를 탄다. 그래서 아무데나 배를 깔고 눕기 일쑤이다. 더러워진 몸을 닦는 건 또 내 몫이다.


월복이와 화복이는 보호소 출신이다. 어느날 보호소에 새끼 강아지 15마리가 한꺼번에 들어왔고 열악한 환경에서 그 새끼들은 살아남기 힘들어 보였다. 나는 아픈 강아지 5마리를 입양했다. 죽더라도 치료를 받게 해주고 싶었다. 그 5마리 중 3마리는 하늘의 별이 되고 2마리만 살아남았다. 월래 월,화.수.목,금복이였는데, 그 중 월,화복이만 살아남았다. 지극정성을 다했더니 기적처럼 월,화복이가 기운을 차렸고, 지금 굉장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 다만 나랑 같이 산책을 안 다닌다. 그 대신 자기들끼리 집 안 곳곳을 누비며 자유롭게 지낸다. 특히 요즘에는 옥상 위에서 노는 것을 좋아한다. 한여름이라 더워지면 집에 들어오지만 아침에는 꼭 옥상에서 논다고 밥도 옥상에서 먹기도 한다. 여름이 지나면 비도 피할 수 있고 올라가서 잠도 잘 수 있는 시설을 만들어주려고 한다.


KakaoTalk_Photo_20200817_1147_57703.jpg 어릴적 월, 화복이. 까만애가 월복이이고, 노란애가 화복이이다. 정말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다.
KakaoTalk_Photo_20200817_1140_21507.jpg 옥상을 좋아하는 월,화복이. 둘은 없어서는 안될 단짝 친구다.


밤이 오면 바깥 날씨는 조금은 선선해 진다. 숨통이 조금은 트이는 것 같다. 방역을 해줘도 모기가 많아서인지 나 같으면 시원한 밖에서 잘 것 같은데 아이들은 다 나를 따라 방으로 들어온다. 아이들의 헥헥대는 입김이 히터를 틀어논 것 같이 방안을 데운다. 하는 수 없이 에어컨을 틀고 아이들의 숨소리가 잦아들면 살며시 끈다. 나 혼자 지내면 선풍기로도 충분한데 털코트를 입고 헥헥대는 녀석들 때문에 에어컨이 쉴 틈이 없다. 나의 아이들이 시원한 곳에서 잠이 든 모습을 보면 모든 아이들이 여름에 시원한 물과 그늘막이 있는 곳에서 고생하지 않고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소원을 품으며 나도 아이들 옆에서 잠이 든다.


KakaoTalk_20180820_083835490.jpg 깊은 잠에 곱게 빠져있는 소복이와 은복이. 천사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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