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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라와디의 먹부림 Aug 18. 2019

'진짜' 고깃국

초등학교 때 읽은 동화책에서 '고깃국' 이란 단어를 처음 보았다. 고기로 만든 국이라니 대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일까. 그전까지 먹어본 '고깃국' 이란 기껏해야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 정도였다. 고깃국이라는 단어는 내 머릿속에 강하게 박혔지만, 어쩐지 고깃국을 먹어 볼 기회는 없었다. 엄마는 종종 '곰국'이라고 하는 국물을 한 솥 끓여주었지만, 그건 고깃국이라기보다는 뼛국물에 가까웠다. 게다가 난 기름이 둥둥 뜬 그 국물을 아주 싫어했다. 자라면서 설렁탕, 도가니탕 따위의 음식을 알게 되었지만 직접 먹어본 적은 없었다. 그렇게 고깃국의 이미지도 기억 속에서 어렴풋이 잊혀져 갈 즈음, 나는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다.


모든 것이 낯설고, 챙겨주는 이 하나 없는 직장. 나는 행여나 실수하지 않을까, 사람들에게 밉보이지 않을까 잔뜩 긴장해 있었다. 점심시간에 다같이 모여 도시락을 먹었지만 감히 다른 반찬에 젓가락도 대지 못하고 내 밥만 조용히 먹곤 하면서, 왜 사람은 때가 되면 밥을 먹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고찰할 경지에 이르렀다. 그만큼 밥 먹는 시간이 불편했다.


어느 날 팀장님께서, 오늘은 나가서 점심을 먹자 하셨다. 이미 메뉴를 정해놓으신 듯 한 팀장님의 뒷모습을 졸졸 따라가며 도착한 곳은 갈빗집이었다.

물론 점심으로 갈비를 굽진 않았으나, 그보다 더 멋진 메뉴를 받게 되었다. 바로 갈비탕이었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갈비탕을 받게 되자, 잊고 있었던 고깃국의 이미지가 굳어 있던 머릿속에서 살아났다.

맑은 국물에 오로지 살코기가 붙은 뼈 두어 개가 들어 있는 갈비탕. 추가 재료는 잘게 썬 파뿐이었다.

이게 고깃국이구나 싶었다. 진짜 고기로 만든 '국'. 


그 날 팀장님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갈비탕의 그 진한 국물맛은 또렷이 기억나는 걸로 보아 나는 실로 오랜만에 불편하지 않은, 맛있는 식사를 했으리라.


갈비탕은 맛있지만, 밖에서 먹으려면 의외로 파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요리라곤 달걀프라이밖에 모르는 못난 불효녀는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다.

엄마, 갈비탕이 먹고 싶어. 내가 재료를 대령할게요. 한 번만! 엄마는 못나디 못난 딸년을 위해, 한여름에 갈비탕을 끓여주셨다. 덥고도 더운 주방에서, 엄마는 고기를 끓여 핏물을 빼고, 또 끓이고 끓여 뭉근한 갈비탕을 완성해 주었다.

그 갈비탕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아, 이게 '진짜' 고깃국이구나.

엄마의 갈비탕에는 고기뿐이었다. 행여나 딸 입에 들어가는 게 부족할까 싶어 잔뜩 넣은 고기, 고기, 그리고 고기. 그리고 혀로 씹어도 될 만큼 부드러워진 고기에서 떨어진 뼈 두어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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