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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1. 2022

예술가들을 위한 홍상수식 변론

홍상수의 스물일곱번째 영화《소설가의 영화》

예술가들은 분명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시인이 그러하듯 소설가나 영화감독들도  번에 정확히 찌르지 않고 에둘러 이야기하길 즐긴다. "아시잖아요. 무슨 얘긴지......"라는 말로 운을 떼기도 하고 " 어떤,  범주 안에서 우리가 추구했던......" 같은 모호함을 오데코론처럼 뿌리거나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거야. 너는 똑똑하니까." 같은 언변으로 동업자들을 포섭하는 식이다. 그런다고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아니고 예술이라는  원래  꼬집어 얘기하면 그때부터 매력이 없어지는 장르라 그렇다. 홍상수의 스물일곱 번째 영화는 그런 얘기다. 아니 그렇게 느꼈진다(나도 확정적으로 얘기하지 않을 테다).


실로 많은 작품을 썼지만 이제는 글을 쓰지 못하게  소설가 준희(이혜영) 다소 신경질적이 되어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주 소리를 지른다. 카리스마 있다는 말에도 화를 내고, 결혼을  일을 쉬고 있는 길수(김민희)에게 '아깝다'  영화감독 효진(권해효)에게도 화를 낸다. 그러나 준희가 단어의 적확성이나 따지려고 화를 내는  아니다. 자신도 예술을 하고 싶은데   되니까 그러는 것이다. 그래서 돈과 인기를 쫓느라 예술을 포기한 탐욕스러운 감독 효진처럼 되어서는  되겠기에 즉흥적으로 길수와 단편영화를 찍기로 하고, 결국은 영화를 찍어 시사회까지 열지만 막상 '끌로 파서 만든'  작품을 주연 배우와 함께  용기가 없어 옥상으로 올라가 담배를 피운다. 아무리 애써도 예술은 원래 의도대로 되는  아니니까. 40 분의 영화가 끝나고 김민희가 상영장 밖으로 나왔을  느껴지는  어색하고 민망한 분위기는 예술가들이 느끼는 흔한 곤혹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옥상으로 올라간 그녀가 준희와 무슨 얘기를 나누었겠냐고? 에이, 홍상수 감독이 그런  보여줄 리가 없지.


나는 정말 홍상수 영화의 '빠'였다. 첫 영화부터 열여덟 번째 영화까지 그의 영화를 '추앙'하다가 《다른 나라에서》에서 처음으로 그의 영화가 재미없어졌다 느꼈고《도망친 여자》를 보면서 의미가 생기려고만 하면 강박적으로 지워버리려는 그의 태도에 질려 아예 관심을 끊었다. 그러나 어제 무슨 일로 아리랑시네센터 홈페이지에 갔는데 7천 원에 이 작품을 상영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제 저녁 아내에게 《소설가의 영화》를 보지 않겠느냐고 물었고 아내는 오늘 다른 약속이 있으니 나 혼자 봐도 된다고 했다. 표를 예매했더니 이번 일요일 오전 오동진 기자가 헤이리시네마에서 하는 GV가 바로 그 영화라고 했다. 예매 취소를 할까 하다가 그냥 두 번 보기로 하고 오늘 저녁 극장에 갔더니 개봉일이라고 포스터를 선물로 주었다. 오랜만에 홍상수 영화를 두 번 보게 되었다.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나 《오! 수정》같은 영화는 수도 없이 반복해 보았으니 두 번 정도야 가뿐하다. 한 번 봤으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공범이 된 기분으로 영화를 볼 생각이다. 이혜영의 연기는 신경질적이고 날카롭지만 전반적으로는 서글픈 유머가 가득하다. 베를린영화제 은곰상 수상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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