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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pr 28. 2022

책으로 다시 읽는 인생드라마 - 《나의 아저씨》

인생드라마 작품집 시리즈 : 박해영의 『나의 아저씨』

박해영 작가의 인물들은 지독하게 쓸쓸하고 슬프다. 가진 게 없거나. 겨졌다가 잃었거나, 가져볼 생각조차 못하고 살았던 사람들이 어느 날 문득 누군가와 만나면서 자신의 쓸쓸한 그림자와도 마주치고 당황한다. 익살스럽거나 재치 있는 대사를 치는 인간들도 알고 보면 서럽고 쓸쓸한 존재라는 걸 느끼게 해주는 게 박해영의 힘이다. 특이한 점 하나는 박해영의 《나의 아저씨》 극본은 지문에도 심리 묘사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훈이 지안에게 이름의 한자 뜻을 물을 때 '이를 지(至)와 편안할 안(安)이'라고 대답하자 "좋다"라고 하는데 그냥 좋다고만 쓰여 있는 게 아니고,  


지안 :... 편안할 안이요.

동훈 :...! (처지와 정반대인 이름, 짠하다. 그렇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 좋다... 이름 잘 지었다.... (커피를 들고 자리로)


이런 식으로 표시되어 있다. 대사가 아닌 지문에도 대사와 같은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니 연기자들이 다른 길로 샐 염려가 없다. 이선균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촬영하기 전에 감독이 이 대본을 악보에 비유했다고 하던데 대본집을 읽어보니 비로소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다.


책에는 인터뷰와 사진 등의 부록이 좀 붙어 있는데 2권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만 읽어봐도 대박이다. 슬픈 얘기를 한 것도 아닌데 눈물이 난다. '서사보다 인간의 결을 느끼고 싶어서 영화와 드라마를 본다'는 철학을 가진 박해영 작가는 자신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역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촘촘히 부여한다. 그리고 그런 정성 속에 무심한 듯 빛나는 명대사들이 속속 탄생한다. 특히 지안이 후계동 사람들에게 할머니 장례식 때 도움을 받고 이 은혜 꼭 갚겠다고 하자 "인생 그렇게 깔끔하게 사는 거 아녜요."라는 제철의 대사를 듣고 어느 시청자가가 '풀려나는 기분이었다'라고 썼다는 댓글 소개는 찡했다.


1 말미에 있는 '감독의 ' 읽어보면 만드는 사람들 모두  드라마를 얼마나 사랑하면서 작업했는지   있다. 인터뷰어가  《나의 아저씨》를 촬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꼽아보라고 하자 김원석 감독은 4 건축업자를 찾아간 동훈의 망치 (상훈을 무릎 끓게 했던 건축업자를 찾아간 동훈이 건축구조기술사 지식을 활용해 조그만 망치로 벽을 두드려 가며 협박하던 장면), 5 술에 취해 눈길에 미끄러진 동훈이 걱정돼 뛰어가는 지안, 7 유라가 희네에서 망가진  좋다고 말하는 장면, 처음으로 지안이 웃는 엔딩..... 15 지안이 길에서 "잘못했습니다"   외치는 장면.....  이외 정희네와 요순 , 후계동 골목의 모든 장면 등등을 하나하나 꼽는데,  자체로 감동이다.


이러다가 대본집 리뷰를 쓸 기세다. 더 궁금한 분들은 어서 책을 구입하시라. 이 인생드라마 작품집은 "좋아하는 그림을 벽에 걸듯, 좋아하는 드라마를 머리맡에 놓아둘 수 있다면"이라는 기획의도로 제작되었다고 하니까. 잘 쓴 대본을 읽으니까 나도 좋은 드라마를 써보고 싶어진다. 아무래도 나는 이 대본집을 앞으로도 몇 번은 더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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