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lking_cat : 말하는 고양이 순자
새벽에 눈이 떠졌는데 다시 잠이 오지 않아 마루로 나와 뭘 할까 하다가 어제 찾은 『7년의 밤』 리뷰를 브런치에 올렸다. 11년 전에 소설을 읽자마자 쓴 리뷰였는데 어제 페이스북 '과거의 오늘'에 올라왔다. 다시 읽어보니 이름을 가리고 읽어도 내가 쓴 글이라는 게 느껴지는 특징이 몇 개 있었다. 이게 향일성일까 퇴보일까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좋은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베토벤이 5번 교향곡을 쓰고 한참 뒤 9번 교향곡을 쓰면서 '나는 왜 5번 때보다 나아지지 않고 이리 비슷한 걸까?'라고 고민하지는 않았겠지, 하고 내 멋대로 생각해 버리기로 한 것이다.
노트북과 대형 모니터를 함께 켜고 보고서 쓰는 아르바이트 자료를 좀 읽었다. 홍보회사에서 준 일인데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자료를 많이 봐야 한다. 자료를 살펴보다가 '코로나 19 이후의 미디어 환경 변화' 대목에서 생각나는 게 있어 격주간지 《기획회의》 557호를 꺼냈다. 책에는 요즘 출판 홍보환경의 변화에 대한 자세한 기고문이 실려 있었다. 예를 들어 교보문고의 '랜선 팬사인회' 같은 건 이전까지는 대면으로만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작가 사인회까지 온라인으로 옮겨온 케이스이고 '네이버 책방 라이브' 같은 라이브 커머스나 온라인 기자 간담회 같은 행사도 달라진 출판 풍경 중 하나다. 인스타 '라방'에서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는 작가 김영하와 김금희의 얘기도 있었다.
기획회의를 읽다가 다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김영하, 김금희 관련 글들을 검색해서 읽었다. 김금희 작가는 독서를 하는 사진 밑에 달린 '아름답습니다'라는 팬들 댓글들에 "아이쿠, 고맙습니다."라며 쑥스러워하고 있었다. 나도 김금희 작가의 팬이라 댓글을 달고 싶었지만 새벽에 너무 광적인 글을 달면 작가가 무서워할까 봐 참기로 했다. 스마트폰을 놓고 다시 책상 쪽을 바라보니 고양이 순자가 기획회의를 깔고 앉은 채 모니터를 턱 가로막고 있었다. 도대체 뭘 하자는 건가.
성준 : 도대체 왜 이러니.
순자 : 뭐가?
성준 : 왜 새벽마다 날 방해하는 건데?
순자 : 고양이들 습성이야.
성준 : 쓰읍...... (짜증이 나면서도 하긴 고양이니까, 하는 표정)
순자 : 요즘 통 잠을 못 자네?
성준 : 아내가 알러지 때문에 고생이야.
순자 : 아줌마 말고, 너 말야.
성준 :...... (꼬박꼬박 반말하는 순자가 밉고)
순자 : 오늘도 새벽 2시 반에 일어났잖아.
성준 : 사실은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와.
순자 : 돈?
성준 : 그렇지 뭐.
순자 : 지금 힘들어도 좀 참아.
올해엔 어떡하든 자리를 잡을 거야.
성준 : 청주에 두 달 있는 동안 경제활동을 전혀 못 했더니 타격이 좀 크네.
순자 : 일단 들어온 알바나 잘하셔.
성준 : 모니터 앞에서 방해나 하는 주제에 그게 할 소리냐?
순자 : 그건 고양이의 습성이라니까.
성준 : 습성을 고쳐!
순자 : 그럼 내가 사람이게?
성준 :...... (하긴 사람도 잘 못 고치긴 해)
순자와 입씨름을 하고 있는 동안 날이 밝았다. 새벽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메모를 하거나 뭘 읽기에 좋은 시간인데 순자 때문에 시간을 다 보내버리고 말았다. 사실은 순자 때문이 아니다. 그러나 자꾸 순자에게 핑계를 대고 싶어진다. 그녀가 이해하겠지, 하고 바라보니 울고 있길래 밥그릇을 살폈다. 텅 비었다. 그래, 배가 고픈 거지, 니가. 내가 순자를 너무 높이 평가했어. 그저 새벽에 잠깐 몇 마디를 할 수 있지만 결국은 고양이일 뿐인데. 그래도 비빌 언덕을 하나 얻은 기분이긴 하다. 앞으로 힘들 때마다 순자를 원망해야지. 나의 속 좁은 결심에 스스로 놀란다. 아무래도 이건 순자에겐 비밀로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