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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31. 2022

'의외로'가 많았던 여행작가들과의 글쓰기 강의

강연자가 직접 쓰는 강의 후기

월요일 저녁에 서울역 삼경교육센터 8층에 있는 여행작가협회에 가서 글쓰기 강연을 했습니다. 여행작가인 박동식 작가와의 개인적 인연 덕분에 얻게  기회였죠. 여행작가들 앞에서 하는 강연이라 제목을 <글쓰기라는 신나는 내면 여행>이라 잡았습니다. 요즘처럼 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팬데믹 상황에서는 글쓰기로 내면 여행을 하는 것도 대안이   있다는 취지였는데 나중에 들으니 박동식 작가는 약간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뭔가 내면으로 침잠하는 얘기만 늘어놓으면 어떡하나 하고요.


그러나 강의는 생각보다 순조롭고 재밌었습니다. 스무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였는데 일단 저를 바라보는 분들의 눈동자가 한결같이 반짝반짝 빛났고 경청의 분위기가 장난 아니었습니다. 저는 감동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월요일 저녁 7시에 이렇게 한 장소에 모여 앉아 있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는 신이 나서 여행과 글쓰기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여행에 대해 쓰는 글은 결국 인생에 대해 쓰는 글이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달라진 글쓰기에 대해 말했고 스토리텔링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글을 쓸 때 유머와 위트를 넣으면 더 많은 독자를 만날 수 있고 여운도 줄 수 있다는 점을 역설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글은 억지로 짜낼 수 있는 게 아니라 늘 일상에서 건져내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무엇보다 자신을 '여행 작가'로만 묶어두지 말고 뭐든 쓸 수 있는 전천후 작가가 되어달라 부탁했습니다.


여행을 할 때는 물론 일상에서도 어떡하면 그때그때 그 소재를 놓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느냐는 어느 분의 질문엔 '그 순간에 집중해서, 다른 사람에게 욕먹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반드시 그때 메모하고 그날 써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다 보면 '잠깐 천재'가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 느낌과 더불어 글을 완성했다는 성취감도 꼭 한 번 느껴 보시라 했습니다. 한 시간 반 안에 강의는 물론 질의응답까지 다 마쳐야 하기에 제 얘기는 점점 더 빨라졌고 나중엔 숨이 차서 호흡곤란 증세가 올 정도였습니다. "저 오늘 왜 이렇게 숨이 차죠? 강의 오기 전에 뭘 많이 먹었나......?"하고 혼잣말처럼 투덜거렸더니 누군가 마스크를 벗고 하라 했습니다. 그 얘기에 용기를 내 마스크를 벗었더니 살 것 같았습니다. 청중과 좀 떨어져 있는 거리라 계속 마스크를 벗고 얘기했습니다.


제 책을 가져온 분은 "별 기대 없이 책을 펼쳤는데 너무 잘 읽히고 재밌어서 의외였다."라는 소감을 밝혀주셨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우리가 책을 읽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연과 동기가 필요한지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그걸 펼쳐 읽어야 가치가 생기는 법인데 거기까지 가기가 참 쉽지 않은 거죠. 저만 해도 책보다는 스마트폰을 먼저 열기 일쑤니까요.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는 물론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를 가져오신 분도 많았습니다.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를 펼쳐 싸인을 받으시던 분은 책 안에서 저의 평소 독서량을 확인하고 놀랐다고 했습니다. 책을 안 읽게 생겼는데 좀 의외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습니다.  박동식 작가가 오더니 강의가 의외로 재밌고 알찼다며 고마워했습니다. 뭐든 '외외로'가 많았던 저녁이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박동식 작가가 둘이서 맥주나 한 잔 하자고 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동석을 해서 더 즐거운 자리게 되었습니다. 맥주집에 오신 분들 중엔 이미 책을 내신 분도 있었습니다. 특히 김보리 작가는 낸 지 얼마 안 된 에세이 『불량주부의 명랑 제주 유배기』가 2쇄를 찍게 되었다고 해서 박수를 받았습니다.

11시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 일어나 전철을 타고 집으로 오는  박동식 작가가 "작가님, 오늘 강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들 톡으로 너무 좋았다고 난리입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코로나 19 이후 처음으로 열린 여행작가협회 월례강좌였는데 의외로 좋았다고...... 저는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읽다가 내릴 역인 한성대입구역을 지나 성신여대입구역까지 갔고 거기서 터덜 터덜 걸어 집으로 왔습니다.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먹다가 아내에게 그렇게 늦게까지 마시고  맥주를 마시냐고 야단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아내도   하고 잤습니다. 아마 아침에 얼굴이 부었다고 화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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