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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May 31. 2022

내 삶에 들어온 책들

월간 국회도서관 기고 : 모퉁이만 돌면 새로 나타나던 책들

국회도서관 매거진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다. ' 삶에 들어온 '이라는 코너였는데 코너명 그대로 '불쑥 혹은 스며들듯  삶에 들어온, 또는 들어왔던  이야기' 나누어 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 책은  권이  수도, 여러 권이  수도 있습니다'라는 청탁서 귀퉁이의 무심한  구절이었다.  참고하라고 보내온 다른 필자들의 예전 원고를 보니 모두  권의 책을 다루었던데 나는 여러 권을 얘기해도 되는 걸까, 궁금해지면서도 나는 굳이 질문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삶에 들어온 책이라면 얼른 꼽아 봐도 여러 권인데 거기서   권만 고르는  싫었던 것이다. 원고 청탁 담당자의 실수라면 고마운 일이고 규정이 바뀌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그냥  맘대로 원고를 쓰기로 작정했다. 여러 권이면 어때서. 인생에서 모퉁이만 돌면  새로운 책들이 나오던데, 하면서.      


용돈을 모아서  최초의 책은 아마도 조흔파의 『에너지 선생』이었던  같다. 조흔파의 소설은 당시 신문 연재를 하고 있는 오영민의 작품보다 재밌었다.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모범생이 아니고 어른들 말씀을 듣지 않는 학생이라서 좋았다. 당시엔 읽을 책이 별로 없었다. 나는 마루 책장에 꽂혀 있던   리처드 버튼의 『아라비안 나이트』를 우연히 꺼내 읽었는데 내용이 어마어마하게 야했다. 왕비가 흑인 하인과 통정을 하게  것을 알게  왕은 '여자는 욕정투성이'라는 편견에 빠져 매일 새로운 처녀를 왕비로 맞이하고는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지 못하면 바로 죽이는 엽기 행각을 벌였다. 그때 세헤라자드라는 영민한 처녀가 들어와 이야기꾼의 기지를 발휘하는데 들려주는 이야기 내용이 농밀하고도 재밌어서 왕은 그녀를 죽일  없었다. '천일야화' 탄생이었으나 나는  말이 야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뒤늦게 깨닫고 어른들에게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실존주의'라고 하는 정체를 얼른 파악하기 힘든 사조와의 날카로운  키스였다. 책을 읽고 시로  독후감을 학교 시화전에 냈다. 제목은 '미스터 M에게'였는데 이는 당시 극장에 가서 몰래  배창호의 《깊고 푸른 밤》 남자 주인공 안성기를 장미희가 '미스터 '이라고 부르던  흉내  것이었다.  시를 눈여겨본 국어 선생님이    내가  다른 시를 백일장에서 뽑아주는 바람에 최초로 조회 시간에 나가 학교장 직인이 찍힌 상장을 받기도 했다.


한수산, 이병주, 김홍신, 황석영, 최인호  국내 소설가들을 닥치는 대로 읽던 나는 당시 구파발역 입구에 있던 '진양서점' 단골 학생이었다. 책방 주인은 '신춘문예 6수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재희 누나였는데 겨울이면 연탄난로를 피운 서점에 단골들이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경리의 『토지』를 열심히 읽던 동네 직장인 처녀가 서점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어떡해. 용이 아재가 죽었어." 하고 울던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도 마루에 누워 이병주의 『행복어사전』을 읽어 어머니의 걱정을 샀다.


대학은 영문과로 갔는데 영어와 문학을 50  50으로 가르칠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교수님들이 하도 영어만 강조하는 바람에 금세 흥미를 잃고 방황했다. 스무 살은 책보다 술과 담배, 연애가  막강하게 덤비는 나이였다. 친구들과 술집에서 담배를 피우며(지금은 끊었다) 황지우가 좋으냐 이성복이 좋으냐 싸우고 있는 와중에 장정일이라는 신성이 나타났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나 『길안에서 택시 잡기』 같은 그의 시집은 시를 이렇게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발랄한 상상력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군대에 가서 선임들에게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소개했더니 이상한 놈이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무라카미 류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났다.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가 파란 새벽 같았다면 69』는 귀여운 초록색이었는데 하루키의 단편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와 장편소설 『상실의 시대』를 읽고 나니까 망한 부잣집 도련님처럼 ‘데카당 류보다는 하루키가  믿음이 갔다. 나는 하루키를 읽고  읽었다. 『댄스 댄스 댄스』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던 나를 보고 "이젠 댄스 교본까지 읽느냐" 비웃던 후배 얼굴이 기억난다. 하루키는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켰고 우리나라 작가 지망생들에게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상실의 시대'라는 책은 나중에 원본을 살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출간되었는데 그게 비틀스의 노래 'Norwegian Wood'에서 따왔다는  알았지만 실제  매카트니가  곡을 만들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  목재 가구를 뜻했다는 것까지는 몰랐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의 중요성을 처음 느낀 사건이었다. 재밌는  하루키 본인은 '노르웨이의 '이라는 오역을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이다. Legend of the Fall》이라는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추락의 전설이 아닌 '가을의 전설' 번역된 것과 비슷한 사례였다.


나의 20대는 대하소설의 시대이기도 했다. 박경리의 『토지』를 시작으로 이병주의 『지리산』 황석영의 『장길산』  조정래의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 등은 우리 역사와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역작들이었다. 사회생활에 찌든 직장인들 중엔 감방에 갇혀  책들이나 읽으며 지내면 좋겠다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나쓰메 소세끼는 일본의 국비 유학생 1호였는데 그렇게  국민의 추앙을 받는 작가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명성에 비해 너무 시니컬하고 귀여운 작품이었다. 나는 나중에 소세키 전집을 구입함으로써 젊은  나를 즐겁게   작가에게 나름의 고마움을 표했다. 무협지를 즐겨 읽지 않았지만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비롯한 삼부작은 예외였다. 알고 보니  책은 저작권 개념이 희박할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마구잡이로 편집해 천만  넘게 팔아치웠던 슈퍼 베스트셀러였다. 무협소설가 김용은 대만에서 신문사를 창간하고 평생  신문의 주필로 일한 언론인이었다. 그는 독재와 싸우고 잘못된 사회문제에 일침을 가하는 것을 자신의 숙명으로 여기며 살았다.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그가 남긴 무협소설들은 - 세계적으로 히트하고 나중에 그의 문학만을 연구하는 ‘김용학이라는 장르까지 만들어졌지만 - 어디까지나 신문의 발행부수를 늘리기 위한 수단이었다. 김용과 비슷한 사람이 하나  있는데 바로 스웨덴의 스티그 라르손이었다.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에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냐 싶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스티그 라르손도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엑스포라는 언론사를 세우고 극우파나 파시스트, 인종주의자들과 평생 싸운 사람이었다. 항상 적들에게  살해 위협을 느끼며 사느라 여자 친구와 결혼도 하지 못하고 삼십   동거만 했다고 하는 그가 농담 삼아 ‘노후보장용으로 구상한  ‘밀레니엄 시리즈 이름 붙은 사회파 추리소설들이다.  번째 소설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을 시작으로 10부작까지 구성되었지만  번째 소설까지 원고를 넘기고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고 만다.  소설 역시 김용만큼이나 많이 팔렸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미국에서는 데이빗 핀처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되었다).


광고대행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면서 광고 서적보다는 소설을  열심히 읽었다. 그중에서도 인생의 책으로 꼽는  바로 아사다 지로의 『칼에 지다』였다. 살인이나 대의에는 관심이 없지만 가족을 봉양하기 위해 사무라이의 길을 걷다가 결국 자결한 주인공 겐이치로는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윌리 로먼만큼이나 짠한 캐릭터였다.  소설과 함께 인생 소설로 꼽는 작품이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없게 가까운』이다.   역사적 배경이나 문학적 스타일은 판이했지만 끝내주는 스토리텔링이라는 면에서는 따라갈 자가 없었다.


광고대행사를 그만두고 나를 위해  것은 고우영의 『삼국지』와 인정옥 작가가 대본을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DVD였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면 돈이 떨어지는  당연한 일이라 다시 크리에이티브 부티크와 CM 프로덕션에 잡혀 들어가 일을 해야 했다. 커트 보니것의 『제5도살장』 같은 시니컬하고 기발한 작품들이 지친 직장인의 위로가 되어 주었다. 김훈은 지극히 ‘높고도 쓸쓸한산문의 정점이었다. 『칼의 노래』 같은 역사소설도 좋았으나 산문집 『자전거 여행』은 백목련처럼 피어나 한순간에 사라지는 비장미로 가득한 문장의 향연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김훈을 흉내 내려다 실패하고 비참하게 쓰러졌다. 김훈만큼이나 비관적이고 시니컬한 소설가는 필립 로스였다. 나는 『미국의 목가』를 읽은  그의 추종자가 되었다. 스티븐 킹은 공포소설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적이 없지만 다른 소설도 너무나  썼고 심지어 글쓰기에 관한 책도 재밌게 썼다. 스티븐 킹을 흠모하는 소설가 정유정의 7년의 밤』을 좋아한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다른 소설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소설들 역시  다시 읽는 작품이 되었다.


회사 후배 카피라이터가 한국 소설을 전혀 읽지 않는 것에 충격을 받아 아내와 함께 ‘독(讀)하다 토요일’이라는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한국소설을 읽었는데 덕분에 권여선 한강 정세랑 조해진 황정은 김연수 김언수 김금희 최은영 같은 글 잘 쓰는 작가들의 작품을 놓치지 않고 접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있던  나는 하루 종일 회의실에서 일을 하다 밤늦게 겨우 집으로 들어가 TV 뉴스를 켰다. 아내는 뉴스를 보며 혼자 소주  병을 마시고 자고 있었다. 암울하게 멍든 마음을 어루만져준 책은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였다. 나는 정혜신이명수의 북토크에 다녀온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들이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던  아니고 이미 결심을 굳힌 일이었다. 퇴직을 하고 제주도에 내려가  달간 글을 썼고  글은 『부부가   놀고 있습니다』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카피라이터로만 살다가   책이었는데 운이 좋아서   만에 6쇄를 찍을  있었다. 책을   기회로 사람들에게 글쓰기 강의를 하러 다녔다. 내가  글만 얘기할  없어서 다른 작가들의 책을  추천했다. 가장 많이 거론하는 책은  라모트 『쓰기의 감각』이나 로버트 맥기의 『시나리오 어떻게  것인가』지만 요즘은 『김이나의 작사법』이나 박연준의 『쓰는 기분』을  많이 권하고 다닌다.


생각해 보면 인생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새로운 책들이 나타났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거의 쾌락을 위해서다. 영화나 음악도 좋지만 책만큼 꾸준하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글쓰기를 도와주는 친구는 지금까지 없었다. 아울러 나는 누구나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너는 카피라이터 출신이니까 글을 쓰지."라고 말하지만 카피라이터 출신이라 글을 쓰는 게 아니라 그냥 글쓰기를 열심히 하는 것뿐이다. 글쓰기는 인생을 바꿔준다. 그리고 글쓰기의 시작은 좋은 책을 읽는 것이다. 물론 글쓰기를 전혀 하지 않아도 책은 읽어야 한다. 누벨바그의 기수 장 뤽 고다르가 얘기한 ‘씨네필의 3단계’처럼 글쓰기의 첫 번째 단계인 독서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책을 귀히 여기고 기억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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