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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03. 2022

개막식에서만 가능한 즐거움

무주산골영화제 참가 후기

무주 산골에서 평일에 열리는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 동네에 살던 후배 김혜나가 아내와 나를 초대해 주는 바람에 어제 무주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녀는 해마다 ‘무주산골영화제’ 사회자로 활약하고 있는데 그때마다 우리 부부를 초대했는데 이제야 내려오게 된 것이다. 김혜나는 올해도 박철민 배우와 함께 사회를 본다. 영화제 규모가 매우 크거나 화려하진 않고 모토도 ‘좋은 영화 다시 보기’라는 조금은 느슨하고 편안한 영화 축제를 표방하고 있지만 코로나 19가 어느 정도 수그러진 후 처음 모이는 사정이라 그런지 다들 밝은 표정이었다.

조성하, 신소율, 이원종, 황승언 같은 배우들이 레드 카펫 아닌 ‘그린 카펫 밟았고 내일이 기대되는 배우를 조명하는 ‘넥스트 액터 전여빈 배우가 선정되어 무대 인사를 했다. 김홍준 감독과 배창호 감독의 모습도 보였고 씨네21 장영엽 대표도 나와 인사를 했다. 영화제에 도움을  군수국회의원들도 와서 사회자들이 시키는 대로 '만세삼창' 해서  웃음을 주었다. 김혜나 박철민의 사회로 개회가 선포되었고 축하공연으로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재즈 보컬리스트 말로의 무대가 있었는데 박주원이 영화 《러브 픽션 》에 삽입된 연주곡을 치기 시작하자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어진 말로의 노래는 세련되고 예술적인 라이브 무대의 진수였다. 특히  번째  ‘Sunny’ 중간 부분에 말로가 혼자 춤을   사회자 박철민이 나와서 함께 선보인 즉흥 댄스는  감동이었다. 좋은 사회자란 저런 존재구나 하는  느낄  있었고 덕분에 공연장은 한결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1934년에 만들어진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에 오케스트레이션과 변사의 라이브 멘트를 더해 다시 태어난《신 청춘의 십자로》는 10년 만에 다시 상연되는 작품이라 더 애틋했다. 영화 중간중간 뮤지컬 배우들의 노래가 더해져 작품을 입체적으로 만들었고 조희봉 배우의 능청맞은 즉흥 변사 연기에 다들 깔깔대며 웃었다. 스태프들이 객석을 돌아다니며 사탕을 나눠주기도 해서 옛날 극장 분위기를 만들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노을이 지는 하늘 밑에서 보는 무성영화의 맛은 각별했다. 영화가 끝나고 마련된 리셉션장에 가서 뷔페 음식을 집어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 아침엔 숙소 주변을 산책했다. 이렇게 조용하고 신록이 우거진 곳에 오로지 영화를 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생각하니 비밀결사조직에 가입한 것 같은 은밀한 연대감마저 생겼다. 아침 8시에 식당에 가서 밥을 먹는데 우리 옆자리로 배창호 감독 커플이 들어서자 젊은 식당 직원이 "영화제 때문에 오신...?"라고 물었고 배 감독은 예,라고 대답했다. 천하의 배창호 감독을 몰라 보다니, 생각하다가 저 친구들은 모르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오늘 낮엔 이정은 배우가 단독 주연으로 나선 영화《오마주》를 보기로 했고 저녁엔 선우정아의 공연도 있다. 서울에서 못 본 선우정아 공연을 무주에서 보게 되다니,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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