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Jun 04. 2022

그 옛날에도 여성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컷! 을 외쳤다는 전설적인 여성 영화감독이 있다. 한국 최초의 여성 감독 박남옥의 이야기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여성 감독이 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이중 삼중고를 겪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10년 동안 영화감독으로 일했고 얼마 전 세 번째 영화를 개봉했지만 관객이 너무 적어 곧 종영을 앞두고 있는 여성 감독 지완은 우연히 《여판사》라는 1962년 작 영화의 복원 작업을 맡게 되면서 그 영화를 만들었던 홍은원 감독의 발자취를 좇게 된다.


무주산골영화제에 와서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이정은 배우가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 망설임 없이 이 작품을 선택했지만 권해효, 탕준상과의 호흡은 정말 기가 막혔고 특히 상영 후 신수원 감독과 권해효 배우의 GV가 있는 것까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정은 배우가 충무로를 시작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예전 영화 관계자들을 만나러 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관금붕의 《완령옥》을 떠올렸고 철거가 예정되어 전기도 안 들어오고 천정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 영화를 상영하는 시골 영화관 장면에서는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마지막 영화관》이 생각나기도 했다. 충무로의 다방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나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며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읽어 보다가 구기고 다시 쓰고 했다는 홍은원 감독의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다. 가슴 한 구석이 찡해졌다.


탕준상이 낭독하는 쉼보르스카의 아름다운 시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이 끝나자 아내는 '여성의 눈으로 보면  감동적인 영화'라는 자신의 소감을 말했다. 이어진  GV에서는 권해효 배우의 '똑똑함' 빛나는 시간이었다. 누군가 그의  취한 연기에 감탄하며 어떻게 그런 연기를   있었냐고 묻자 그는 ' 취한 연기에 초점을 두지 않았고 멀어진 아내와의 관계를 표현하는  주력했다. 배우가 그런  생각하지 않고 단지  취한 모습만 흉내 내면 망하는 것이다.'라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자연스러운 연기에 대한 칭찬에 대해서도 '무조건 자연스러운 연기만 추구하는 것은  닳은 일반론을 그대로 재현하는 '이라는 평소의 신념을 피력했다.  소리를 듣고 옆에서 듣던 신수원 감독이 기뻐했음은 물론이다.

나도 손을 들고 일어나서 이정은이 가는 곳마다 어떤 단서들을 계속 발견하다가 결국 철거가 예정된 극장에서 결정적인 반전(여기서 선물로 받은 모자 테두리에서 유실되었던 필름의 일부를 발견하게 된다)이 이루어지는데 어떻게 이 극장을 생각해 냈고 천정에 뚫려 있는 구멍은 실제 있었던 것이냐 등등을 물었다. 신 감독은 원주에 있는 극장에서 이 장면을 찍었고 천정의 구멍은 그 정도로 크지 않았는데 CG로 더 확실하게 표현을 했다고 세세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누군가 극장에서 영화를 함께 본다는 것의 의미를 묻기도 했는데 신수원 감독은 그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오늘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이 작품 홍보를 좀 많이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예전 영화보다 훨씬 쉬워졌고 이번에 아무도 죽지 않아 좋았다는 친구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그러나 사실은 이 영화에도 죽는 사람이 나온다). 신 감독은 제목 오마주에는 '추앙'이라는 뜻도 있다고 농담을 하며 웃었다. 나는 서울에 가면 이 영화 참 좋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홍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작품 자제로도 좋지만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후회하지는 않을 영화니까. 2022년 제20회 피렌체 한국영화제 최고상인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밤에 숙소에서 열린 영화제 뒤풀이 자리에서 행사 사회를 맡은 배우 김혜나가 신수원 감독에게 나를 소개해 주었다. 내가 GV시간에 질문을 했던 사람 중 하나라고 인사를 하자 신 감독이 반가워하며 내 질문 내용이 무슨 교수님 같았다고 웃었고 그 얘기를 옆에서 들은 아내는 "제 남편은 교수가 아니라 백수"라고 정정해 주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 영화를 봐야 할 사람들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