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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06. 2022

세상을 향해 두려움 없이 전력 질주하던 그 남자 이야기

연극 《초선의원》리뷰

아내가 《초선의원》이라는 제목의 대학로 연극을 하나 예매했다고 알려왔다. 프리뷰 기간이라 50% 할인된 가격으로 예매를 했다고 자랑을 했지만 그보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해서 끌렸다고 한다. 내가 연극을 보는 당일 뒤늦게 스마트폰으로 연극 정보를 찾아보고는 “여보, 이 연극은 《보도지침》을 쓴 오세혁 작가 작품인데, 누구나 세상과 부딪히는 걸 두려워하지 않을 때가 있잖아. 오 작가가 자료를 찾아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그게 초선의원 시절이더래. 그래서 88 올림픽과 겹치는 그 시기를 희곡으로 쓴 거라네. 누구나 그런 순간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연극이라는군."라고 마루에서 문어체로 소리쳤다. 안방에서 내 말을 들은 아내는 "여보, 당신은 아내를 바보라고 생각하지? 난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인데 왜 잘난 척을 하는 거지?"라고 구어체로 받았다. 나는 풀이 죽어서 "아니, 그냥 나는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 러닝타임이 90분이라네. 노 전 대통령 이름은 최수호로 바꾸었고."라고 소심하게 속삭이고는 다른 일을 하는 척했다.


연극은 재미있었다. 막이 열리면 88 올림픽 열기를 중계하는 카메라맨과 리포터가 나오는데 일반 시민인  알고 인터뷰를 해보니 정치활동 억압과 억울한 노동자의 죽음을 규탄하는 최수호 변호사다. 당황한 리포터가 마이크를 빼앗아 지나가던 대학생을 인터뷰하니 그는 가슴에서 불온 유인물을 꺼내 뿌리는 운동권 학생이었다. 극은 이런 식으로 최수호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서 떨어지고 다시 초선의원이 되어 국회에서 활약하던 이야기를 올림픽 경기와 섞어 재미있게 표현한다. 우리는 극단 골목길의 작품에서 자주 만났던 성노진 배우 캐스팅으로 봤는데 역시 성노진의 연기는 안정감 있고 인간적이어서 노무현의 아우라를 전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고 장명균, 곽나윤, 김건호  모든 배우들이 때로는 코믹하게 때로는 찡하게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쳐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특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악역을 도맡아 하던 최경식 배우가 인상적이었다. 배우들의 과격한 액션과 발성으로 즐거워하던 관객들은  5공청문회가 생방송으로 진행되던 당시의 상황을 TV 화면과 함께 생생하게 재현하는 후반부를 보며 화를 내거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대통령 출마를 결심하는 최수호 의원 장면에서 끝난 연극은 기타를 치며 '상록수' 부르는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으로 짧은 여운을 남겼다.

오세혁 작가는 정치와 시사 문제를 잘 다루는 작가라고 하는데 나는 처음 만났다. 《초선의원》을 보고 나니 그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어졌다. 아내는 '다 좋은데 배우들의 액션을 생각하면 무대가 좀 작은 것 같다'며 좀 더 큰 무대로 옮겨서 또 공연하면 또 보러 갈 것 같다는 소감을 남겼다. 6월 3일부터 7월 3일까지 한 달간 대학로 TOM극장에서 상연한다.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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