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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06. 2022

자발적 고독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해 준 책

김겨울의 『아무튼, 피아노』

에필로그에서 김겨울은  책으로 자신을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글쓰기가 어떻게 자신을 구원했는지   없을 것이라고 썼다. 그렇다.  책은 김겨울이 피아노에 대해  글이다. 김겨울의 팬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19 명의 구독자를 거느리고 있는 북튜버이자 라디오 DJ, 싱어송라이터, 작가, 댄서  이것저것  잘하는 '사기 캐릭터'.


책과 음악에 관계된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피아노에 관한 책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라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읽어보면 그가 어느 한 대상에 얼마나 집중하고 깊이 들어가는지 알 수 있게 된다. 피아노에 대한 그의 사랑은  끝없이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들에 대한 지식과 경험만으로도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는다. 단언컨대 피아노에 대해 쓴 글이 너무 많아서 편집 과정에서 삼분의 일쯤은 덜어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은 피아노를 전공하지 않았고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며 프로페셔널 피아니스트처럼 피아노를 잘 치지도 못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쓰는 이유는 그가 피아노를 즐겨 연주하고, 음악을 만들고, 발표도 하며, 클래식 공연에 자주 가고, 피아노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무슨 곡인지 대번에 알고,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사용되는 곡이 어떤 곡인지 다 안다는 자부심 때문이다. 이는 마치 어렸을 때부터 책을 열심히 읽고 글도 쓰며 다른 작가들의 글을 그때그때 자유자재로 인용하고 써 놨던 글이 넘쳐 마침내 책까지 낸 사람을 우리가 '작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적으로는 키스 자렛과 도미닉 밀러의 재즈 연주 얘기를 하다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에 쉴 새 없이 코드가 바뀌는 부분을 거론하는 게 재밌었다. 김겨울이 '정신 나간 코드 진행'이라 부르는 이 부분을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 들려줬더니 요조는 "클래식에도 싸이키델릭이 있나요?"라고 했고 김제형은 "폭풍우가 몰아치는 나선형 계단을 오르는 개인, 난제를 풀고 있는 수학자의 머릿속, 톰을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제리가 생각난다."라고 했단다. 도대체 안 물어봤으면 어쩔 뻔했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절묘한 대답들이다. 또 반가운 대목은 그가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지 못한다는 고백이었다(나도 그런데!). 책을 읽을 때 음악을 듣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구체적이다. 단지 계이름이 들려서가 아니라 글의 프레이징과 음악의 프레이징이, 글의 구조와 음악의 구조가 서로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란다. 음악과 글에 대한 통찰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멋진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피아노 얘기를 썼다고 해도 김겨울은 역시  쓰는 사람이고 크리에이터다. 나는 마지막 부분에 가서  책의 숨은 진가를 깨닫게 되는데 그건 김겨울이 2019 여름에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얘기다. 졸지에 목소리를 빼앗긴 그는 침묵을 택한다.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필사적으로 읽고 듣는다. 아침 7 30분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었다. 말하는 대신 최선을 다해 경청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누군가의 얘기를 듣는 동안은 침묵이 필요하고 우리 모두에게는 그런 순간이 필요한 것이다.  말하고  움직이다가도 잠깐 멈추는 순간의 성찰, 그런 침묵의 순간이 없으면  자신의 소리도 다른 누군가의 소리도 들을  없기 때문이다. 돌아보지 못하는 인간은  능력이 아무리 화려하고 출중해도 결국엔 망한다. 침묵과 고립만이 스스로를 겸손하게 만든다.  제목이 '아무튼, 피아노'지만 나는  책에서 '자발적 고독의 중요성' 대해 다시 생각하게  것이다, 아무튼. 다소 엉뚱한 결론의 독후감이라도   없다. 원래 책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들이  그러니까. 같은 책을 읽었다고 리뷰까지 똑같으란 법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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