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람 판소리 갈라 1 : 《바탕》리뷰
판소리는 음악 장르지만 마술쇼와 닮아 있다. 무대 위에 선 소리꾼이 혼자 소리를 하며 변화무쌍한 연기와 사설을 보여주고 들려주기 때문이다. 소리꾼을 도와주는 건 오로지 고수의 장단과 추임새뿐인 줄 알았는데 이자람은 '소리꾼-고수-관객'의 삼박자가 맞아야 비로소 판소리가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제 정발산역에 있는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열린 이자람 판소리 갈라 1 : 《바탕》은 이런 이론을 실제로 보여주는 완벽한 무대였다. '바탕'은 판소리 한 편을 뜻하는 단어로 한 바탕 논다는 뜻이다. '갈라'가 푸짐한 잔칫상을 뜻하는 영어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하니 어제 공연은 수궁가를 중심으로 푸짐한 판소리의 잔칫상이 차려진 한바탕의 축제로서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판소리 공연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나는 어제 처음으로 판소리가 '구라'의 세계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용왕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토끼의 간이 특효약이라는 말에 육지에 올라갈 신하를 뽑는데 거북이 별주부가 손을 들고 나서는 대목부터 시작해 토끼를 만나는 장면까지 이어지는 한 시간 남짓의 대목은 그 흥미로운 플롯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의 진수인데, 거기에 목소리와 자세, 표정 변화로 일인다역을 펼치는 이자람의 디테일이 더해져 공연의 품질은 단박에 최상위로 올라간다.
제일 웃겼던 건 육지로 올라간 별주부가 솦속 동물들의 나이 자랑을 구경하는 대목인데 부엉이, 늑대, 호랑이 등이 자리 배열 전 각자 자기 연륜을 과시하기 위해 역사적 유명인과 동문수학 했다느니 뻥을 치다가 급기야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퀀스에서 자세를 약간 바꾸고 목소리를 조금 바꾼 정도로도 완벽하게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이자람의 역량이 빛났음은 물론이다. 그는 공연을 할 때마다 '이렇게 고사성어나 옛날 말이 많이 나오는 공연을 관객들이 다 알아들을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이번엔 어려운 말이 나올 때마다 자막을 넣는 방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요즘 박사논문을 쓰느라 이런저런 자료들을 더 자세히 살피다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역시 공부하는 소리꾼은 다르다. 그가 쓴 책 『오늘도 자람』을 읽어보면 단독 예술가로서의 그의 삶이 얼마나 성실하고도 고민이 깊은지 알 수 있다.
어제 이자람은 카키색 계열의 멋진 한복을 입고 나와 중간중간 설명도 해가며 여유 있게 판소리 마당을 펼쳤다. 극장 냉방 온도가 너무 낮아서 좀 추웠던 것 말고는 전혀 나무랄 게 없었다. 공연 시작 직전에 누가 바로 뒤에서 " 작가님!" 하고 반갑게 부르길래 쳐다보니 불교방송국의 박광렬 PD였다. 내가 불교방송에 한 번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이 분도 워낙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깊은 분이니 이런 공연에서 만나는 게 신기한 일만은 아니라 생각했다. 이자람의 열혈팬인 아내 덕분에 또 좋은 공연을 보았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건 그냥 자랑하는 게 아니라 '이자람 공연은 이러이러한 게 좋으니 이번 기회를 놓쳤더라고 다음에 또 똑같은 공연이 올라가면 꼭 보시라'는 당부와 부탁의 말씀으로 드리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아내는 다음 달 이자람의 갈라 시리즈 《작창》은 토요일 오후 공연으로 예약해놨으니 그리 알라고 내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