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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11. 2022

마술쇼를 닮은 판소리의 작은 축제

이자람 판소리 갈라 1 : 《바탕》리뷰

판소리는 음악 장르지만 마술쇼와 닮아 있다. 무대 위에 선 소리꾼이 혼자 소리를 하며 변화무쌍한 연기와 사설을 보여주고 들려주기 때문이다. 소리꾼을 도와주는 건 오로지 고수의 장단과 추임새뿐인 줄 알았는데 이자람은 '소리꾼-고수-관객'의 삼박자가 맞아야 비로소 판소리가 완성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어제 정발산역에 있는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열린 이자람 판소리 갈라 1 : 《바탕》은 이런 이론을 실제로 보여주는 완벽한 무대였다. '바탕'은 판소리 한 편을 뜻하는 단어로 한 바탕 논다는 뜻이다. '갈라'가 푸짐한 잔칫상을 뜻하는 영어에서 파생된 단어라고 하니 어제 공연은 수궁가를 중심으로 푸짐한 판소리의 잔칫상이 차려진 한바탕의 축제로서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판소리 공연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지만 나는 어제 처음으로 판소리가 '구라'의 세계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용왕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는 토끼의 간이 특효약이라는 말에 육지에 올라갈 신하를 뽑는데 거북이 별주부가 손을 들고 나서는 대목부터 시작해 토끼를 만나는 장면까지 이어지는 한 시간 남짓의 대목은 그 흥미로운 플롯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의 진수인데, 거기에 목소리와 자세, 표정 변화로 일인다역을 펼치는 이자람의 디테일이 더해져 공연의 품질은 단박에 최상위로 올라간다.

제일 웃겼던 건 육지로 올라간 별주부가 솦속 동물들의 나이 자랑을 구경하는 대목인데 부엉이, 늑대, 호랑이 등이 자리 배열 전 각자 자기 연륜을 과시하기 위해 역사적 유명인과 동문수학 했다느니 뻥을 치다가 급기야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퀀스에서 자세를 약간 바꾸고 목소리를 조금 바꾼 정도로도 완벽하게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이자람의 역량이 빛났음은 물론이다. 그는 공연을 할 때마다 '이렇게 고사성어나 옛날 말이 많이 나오는 공연을  관객들이 다 알아들을까?'라는 고민을 하다가 이번엔 어려운 말이 나올 때마다 자막을 넣는 방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요즘 박사논문을 쓰느라 이런저런 자료들을 더 자세히 살피다 그런 아이디어가 나왔다는 것이다. 역시 공부하는 소리꾼은 다르다. 그가 쓴 책 『오늘도 자람』을 읽어보면 단독 예술가로서의 그의 삶이 얼마나 성실하고도 고민이 깊은지 알 수 있다.


어제 이자람은 카키색 계열의 멋진 한복을 입고 나와 중간중간 설명도 해가며 여유 있게 판소리 마당을 펼쳤다. 극장 냉방 온도가 너무 낮아서  추웠던  말고는 전혀 나무랄  없었다. 공연 시작 직전에 누가 바로 뒤에서 " 작가님!" 하고 반갑게 부르길래 쳐다보니 불교방송국의 박광렬 PD였다. 내가 불교방송에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분도 워낙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깊은 분이니 이런 공연에서 만나는  신기한 일만은 아니라 생각했다. 이자람의 열혈팬인 아내 덕분에  좋은 공연을 보았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그냥 자랑하는  아니라 '이자람 공연은 이러이러한  좋으니 이번 기회를 놓쳤더라고 다음에  똑같은 공연이 올라가면  보시라' 당부와 부탁의 말씀으로 드리는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면서 아내는 다음  이자람의 갈라 시리즈 《작창》은 토요일 오후 공연으로 예약해놨으니 그리 알라고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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