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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18. 2022

한옥 마당이 이렇게 좋은 파티 장소였어?

소금책 첫 번째 이야기 : 최예선 작가의 『모던의 시대 우리 집』 편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에 소행성에서 열리는 책수다 파티인 '소금책' 첫 번째 모임이 어제저녁 7시 30분에 저희 집 마당에서 열렸습니다.  『모던의 시대 우리 집』을 쓴 최예선 작가와 모요사 손경여 편집장이 같이 오셨고 선착순으로 모신 손님 열아홉 분 중에 열여덟 분이 오셨습니다. 다음 달 소금책의 주인공인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도 오셨고요. 첫 번째 주인공으로 최예선 작가를 모신 이유는 저희 집이 마침 이 책에서 다룬 '모던의 시대'에 서울에 지어진 대표적인 미니 한옥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더레이터로 나선 제가 인사를 하고 최예선 작가님에게 듣고 싶은 질문 몇 개를 던지며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레트로의 기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 덕분에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있었던 건축이나 사람들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고, 역사의 디테일을 아는 것이 관념적으로 그 시대를 짐작하는 것과 얼마나 다른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최예선 작가는 이태준이 살았던 성북동의 수연산방 얘기를 시작으로 당시의 건축과 정치에 얽힌 세세한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최 작가의 인문학적인 지식과 통찰에 대해 감탄하자 자신은 그냥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겸손해했지만 이야기를 들을수록 최고의 인문학 강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심윤경 작가의 소설로도 재조명되었던 벽수산장 등 적산가옥들에 대한 치우치지 않은 평가는 흥미진진 그 자체였습니다. 최예선 작가의 유려한 설명도 일품이었지만 옆에 앉아 주요 대목마다 톡톡 튀어나와 보충 설명을 해주는 손경여 편집장의 추임새가 기가 막혔습니다. 우리는 손 편집장이 같이 오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냐며 박수를 치며 즐거워했습니다.


이 행사는 강연자 혼자 얘기하는 북토크가 아니라 함께 대화를 하고 공감하는 자리이길 바랐기에 오신 분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확인하는 시간도 가져보았습니다. 아는 분도 있었고 처음 뵙는 분도 있었습니다. 멀리 제주도 애월에서 서울로 여행을 온 부부도 계셨고 지난번에 여행작가 강연에서 뵈었던 작가님도 계셨습니다(가져오신 맥주 잘 마시겠습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으로 메시지만 주고받다가 직접 만나 더 반가운 분들이 많았음은 물론입니다. 고양이 순자가 객석 중간에 버티고 앉아 강연자를 쳐다보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초대가수 루가 기타리스트 도경민 씨의 반주에 맞춰 '나의 옛날이야기'와 자작곡 '그럴게'를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습니다. 루는 드라마 삽입곡 등을 많이 부른 싱어송라이터라 음정도 정확한 것은 물론 음색도 아주 예쁜데 어제 역시 빛나는 무대를 보여주었습니다(앞으로도 계속 출연해 강연자들이 원하는 노래를 불러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아내가 당근마켓을 통해 구입한 플라스틱 찬합은 훌륭한 파티용 트레이가 되어 주었습니다. 김밥과 빈대떡은 광장시장 '박가네'에서  왔고 그래도팜의 토마토와 간단한 핑거 푸드도 준비했습니다. 술은 와인과 맥주를 준비했는데 안동맥주 양준석 대표의 소개로 남양주에 있는 에이피플 부루어리에서 ' 샤워'라는 맥주를 직접 가져다주셨습니다. 쌀이 51% 들어 있는 제품이었는데 맛이 좋아서 다들 이게 무슨 맥주냐고 물었습니다. 동네에 있는 고양이 서점 '책보냥' 김대영 작가와 손님방의 김혜민 씨가 솔선수범해서 열심히 음식을 나르고 사진도 찍어 주었습니다. 너무 고마운 분들입니다.


정겹고 낭만적인 밤이었습니다. 북토크인데도 술이 나와 좋다는 분도 계셨고 초대 가수 루의 노래가 좋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양서를 집필한 저자와 직접 얼굴을 맞대고 책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고 질문하는 친구 모임 같은 분위기였을 겁니다. 손님들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와 밝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저는 한 번 오신 분들이 계속 와서 멤버십을 쌓아가면 좋겠다고 했고 손님들 대부분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다음 달 강연자인 파우저 교수님이 잠깐 '예고방송'을 하셨고  손님들은 저자 사인을 받고 방명록을 작성한 뒤 집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방명록엔 다음 행사에도 꼭 연락을 달라는 부탁이 많았습니다. 저희 집 한옥 마당이 이렇게 좋은 파티 장소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잘 될까 걱정도 했던 소금책 행사가 너무나 훌륭하게 끝을 맺었습니다. 와인 컵, 찬합, 술병 등 부시고 치울 게 많았지만 그래도 너무 기쁘고 좋아서 아내와 저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 순자도 웃었습니다. 걔는 표정 변화가 없어서 그렇지 가끔 웃는다는 걸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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