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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n 22. 2022

좋은 소설을 읽는 기쁨 - 백수린의 『여름의 빌라』

독하다 토요일 시즌 7 마지막 모임 후기

지난주 토요일은 '독하다 토요일' 시즌 7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연희동에 있는 미경 씨의 작업실에서 모였습니다. 빨리 책 얘기를 마치고 그 동네에 있는 중국집 '락희안'에 가서 음식과 요리를 먹으려는 속셈이었죠. 그날은 모임 마지막 날이고 시즌 8은 한 달 쉰 다음에 다시 열기로 했으므로 우리가 좋아하는 '뒤풀이'를 할 명목이 뚜렷했거든요.  우리가 작업실에 모여 얘기한 작품은 백수린 작가의 소설집 『여름의 빌라』였습니다. 저는 표제작을 도서관에서 처음 읽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글이 너무 좋았고 특히 마지막 구절들이 강렬하고 아름다워서요. 백수린은 '읽고 나면 잔향이 남는 작가'라고 어느 평론가가 그랬다고 하는데 제 생각엔 잔향 정도가 아니라 성숙한 인간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작가입니다. 작품을 읽어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미경 씨는 소설의 문장들이 너무 좋아서 시를 쓰던 사람이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고 합니다. 저도 읽을 때 편안하면서도 탄탄한 문장에 감탄했는데 그도 같은 마음이었나 봅니다. 이 작가는 말을 아낄 줄 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지 글로 이루어진 소설 「여름의 빌라」에서는 당신이라 부르던 '베레나'의 이름을 뒤에 가서야  밝힌다든지 '여름의 빌라'가 있던 도시의 이름만 언급하다가  캄보디아라는 국명은 뒤에 가서 슬쩍 쓴 것도 어떤 자신감으로 느껴졌습니다. 꼭 필요한 얘기만 쓰다 보니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별로 뺄 게 별로 없는 문장을 쓰는 작가라고나 할까요.


기홍 씨는 인물들이 다 실제 어딘가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게 신기하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캐릭터 구축을 잘했다는 뜻이겠죠. 저도 첫 번째 실린 「시간의 궤적」을 읽고 나니 파리에서 주재원으로 있던 '언니'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살면서 헤어진 남자에게 가끔 전화를 하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도 마지막에 잃어버린 반지를 찾으러 왔다가 소나기를 만나는 장면이 참 좋죠. 읽으면서 이와이 슈운지가 만든 짧은 영화 《4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저는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의 인터뷰집 『스무 해의 폴짝』에서 만났던 백수린 대표에 대해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백수린 작가는 상을 많이 탄 사람이었습니다. 젊은작가상, 문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탔는데 특히 현대문학상은 이 책에 수록된 「아직은 집에 가지 않을래요」로 탔습니다. 상을 탔다고 꼭 좋은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남들과 경쟁해서 수상한다는 건 뭔가가 있다는 얘기니까요.

성희 씨는 요즘 바쁘고 심란한 일이 있어서 글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나날이었는데도 이 소설집 만큼은 잘 읽히더라는 말로 책의 가치를 설명했습니다. 특히 여자나 아이들의 심리 묘사가 탁월해서 작가가 혹시 이혼 가정이나 조부모 밑에서 크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습니다. 뭐 어쨌든 상관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저와 혜자 씨가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을 거론하며 어린아이들의 섹스에 대해 얘기했더니("세상에. 정말 개구리 자세였어!")  미경 씨가 자기 아이 생각이 나서 약간 불편했다고 말했고 선생님인 기홍 씨가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하는 바람에 청소년의 교육과 어른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혜자 씨는 독하다 토요일이 시즌 7까지 오는 동안 적어도 마흔두 권의 한국 소설을 읽고 나니 이젠 어떤 게 잘 쓴 글인지 느낌이 온다고 하며 여성의 심리를 쿨하게 잘 전달하는  백수린 작가의 문장과 스토리텔링 능력을 칭찬했습니다.  저는 백수린 작가가 조용하지만 거침없는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고 미경 씨는 글에서 억울함이나 분노가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효성 씨가 책을 꺼내 저자 사인을 보여주며 웃는 것이었습니다. 백수린 작가와 개인적 친분이 있다는 얘기에 우리는 모두 부러움의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행복이 가득한 집》에 다니는 효성 씨는 산책에 대한 글을 의뢰하느라 백 작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사랑과 이해의 시선으로 보듬어 주어 좋았다'는 미경 씨의 말이 실제 작가에게서 그대로 느껴진다고 말했습니다.


좋은 책을 선정했다는 자부심이 몰려왔습니다. '락희안'으로 옮겨 요리와 술을 즐기면서도 계속 소설 얘기를 했습니다. 혜자 씨는 사전을  들고 프랑스 할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하는 「흑설탕 캔디」의 할머니가 귀엽다고 했고 저는 작가가 보브와르 전공자라서 할머니를 파리로 보낸 것이라며 아는 체를 했습니다. 그러나 자꾸 사람들이 모르는 얘기를 하길래 물어보니 제가  하나 읽지 않고  작품 「폭설」이 좋다는 얘기였습니다. 저는 집에 가서  작품 마저 읽겠다고 결심했습니다(그러나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식당으로  재희 씨가 「여름의 빌라」 마지막에 꼬마가 땅에 그은 금을 발로 지우고 다른 아이를 들이는 장면이 너무 감동적이었고 하는 바람에 저도  장면이 너무 좋았다고, 그래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베레나의 마지막 기억이  장면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마지막 문장의 감동에 대해 마구마구 떠들었습니다.


중국집에서 흥이 오른 우리는 내친김에 그 동네에 있던 혜자 씨의 옛날 단골 '템프테이션'에 가서 또 술을 마셨습니다. 지금은 연희동에 있지만 예전 이대앞에 있을 때 제가 가서 비싼 씨레이션 안주를 먹으며 "칼만 안 들었지 강도죠."라는 멘트를 들었다고 했더니 사장님도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아내인 혜자 씨가 어려울 때 템프테이션 사장님에게 정신적으로 많이 의지를 했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 저와도 이런 인연의 고리가 있었던 게 신기합니다. 술을 마시고 귀가한 뒤 독하다 토요일 후기를 써야지 써야지 하고는 뒤로 미루다가 오늘 새벽에 눈이 떠지는 바람에 마루로 나와 이 글을 씁니다. 왜냐하면 효성 씨가 백수린 작가에게 이 모임의 후기를 들려주기로 했다는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작가가 뭐 그딴 거 신경이나 쓰겠냐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작가들도 누가 자기 얘기했다고 하면 '뭐라고 했나' 다 궁금해합니다. 더구나 이렇게 칭찬 일색을 때는 작가에게 더 떳떳하게 후기를 보여줘야죠. 그나저나 독하다 토요일에 들어오고 싶다는 분들께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이번 모임 뒤풀이에서 확인한 바로는 다음 시즌에도 빠지는 멤버가 없어서 당분간  신입회원 영입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모임의 크기를 늘려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그러기엔 저희가 너무 게으르고 사소해서 늘 포기하고 맙니다. 그냥 이대로 읽고 마시며 저희들끼리 계속 놀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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