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킹 캣 순자 : 순자의 임무
순자는 낮엔 마당으로 나가 딩굴딩굴하며 최대한 게으르게 낮잠을 즐깁니다. 그러다가 밤이 되면 소행성 식구들을 감시하죠. 저것들이 술을 마시나 안 마시나, 요즘 책은 뭘 읽고 있나 등등 나름대로 스파이짓을 하고 통신 위성을 불러 보고를 하지만 본부의 반응은 대체로 시큰둥합니다. 물론 성북동 소행성에 사는 인간들은 그런 순자의 행동을 보고 웃음을 터뜨립니다.
순자는 원래 '팅커테일러솔저스파이' 행성에서 전문 스파이 배양 프로젝트의 베타 버전으로 태어났습니다. 팅커테일러에서는인류를 감시하기 위해 스파이들에게 인간과 비슷한 체형과 능력을 주지만 어느 과학자 하나가 "인간은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고양이 스파이도 하나쯤 있으면 좋지 않겠어?"라는 낭만적인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바람에 그녀가 만들어진 거죠.
그녀는 이천오백 년 전쯤 팬더 스파이 군단과 함께 중국으로 파견될 예정이었는데 그 과학자가 모델 넘버를 잘못 적어내는 바람에 연구소 구석 금고에 밀봉된 채 방치되었다가 2017년에 극적으로 재생되었습니다. 순자(荀子)라는 이름은 이천 년 전엔 흔하다가 지금은 거의 사라졌는데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쓰이는 예가 있다 하여 한국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나이로는 아주 고참이자만 능력은 초보인 B급 스파이 순자는 비교적 쉬운 임무를 맡게 됩니다. 바로 작가 편성준과 출판기획자 윤혜자를 감시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워낙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이라 순자는 나름 괴롭고 실망이 큽니다. 아, 제게도 좀 중요한 임무를 주십시오, 이런 하찮은 인물들 말고. 그러나 본부의 방침은 이렇습니다. 순자 요원, 당신은 거기서 한 십칠 년 정도 쉬며 스파이 능력 자체 배양에 힘쓰십시오. 그리고 로얄캐닌이 고양이 평균 식성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대한 임상 실험에도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로얄캐닌은 원래 최음제 용도로 제작되어 지구에 먼저 살포된 사료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