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부엌에서의 맛있는 글쓰기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이다』로 하는 글쓰기 강연

by 편성준

글쓰기 책을 냈으므로 글쓰기 강연을 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막상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라는 책을 놓고 강연을 한 최초의 장소는 지리산의 '제철음식학교'였습니다. 강연을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저자를 보내겠다는 윤혜자 씨의 '저자 배송 서비스' 소식을 듣고 냉큼 신청한 분이 고은정 선생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래전에 예약해 두었던 '이자람의 작창' 공연을 취소한 뒤(아이고 아까워라) 버스를 타고 지리산으로 내려갔습니다. 실상사에서 버스를 잠깐 멈춰 달라고 해서 내린 아내와 저는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지리산의 '맛있는 부엌'으로 들어섰죠. 음식을 공부하는 분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 드려야 할까 고민하다가 '맛있는 부엌에서의 맛있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강연록을 준비해 갔습니다.


복날이라고 선생님들이 끓여주신 민어탕과 민어회, 그리고 각종 산나물이 즐비한 밥을 맛있게 먹고 7시 반부터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음식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면 음식과 상관없는 이야기로 시작해야 하다는 얘기로 문을 열었습니다. 쓰고 싶은 소재로 바로 달려들면 소재가 놀라서 달아나 버린다는 일본 소설가 다카하시 겐이치로의 말이 생각 나서였습니다. 그러면서 요조의 『아무튼 떡볶이』 김봄의 『너 뭐 먹고 살쪘니?』 권여선의 『오늘 뭐 먹지?』처럼 음식이나 안주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얘기하고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했습니다. 특히 김서령의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는 놓치지 말고 꼭 읽으라는 당부도 했습니다. 아, 박찬일 요리사의 그리운 짜장면 이야기 『곱빼기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도 빼놓을 수 없었죠.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김지수 기자가 쓴 이어령 인터뷰집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엔 죽음이라는 것이 별 게 아니고 저녁 늦도록 밖에서 뛰어놀고 있던 아이에게 엄마가 "밥 먹어라"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했는데 고은정 선생의 책 『밥을 짓다 사람을 만나다』에서 엄마가 부르는 내 이름이 "밥 먹어라"의 다른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는 구절이 나오니까요. 이처럼 밥은 한 사람의 삶을 북돋아주기도 하고 끝내기도 하는 근원적인 존재였습니다. 저는 고은정 선생의 글 중 바지락 때문에 죽음의 문턱에까지 갔었던 이야기에 주목했습니다. 그 글은 '냉이 바지락 밥 탄생 비화'일 뿐이라고 의뭉을 떨고 있지만 사실은 바지막 때문에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던 여섯 살 고은정과 한창 일 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니다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워두고 잠들었다 죽을 뻔했던 중년의 고은정을 교차시킴으로써 식재료와 한 사람이 인생이 어떻게 어우러지는가를 보여주는 멋진 글이었습니다. 교육생들과 함께 앉아 제 해석을 들은 고은정 선생은 "제 책을 쓰기만 했지 읽어본 적은 없는데, 이제라도 읽어봐야겠어요."라고 농담을 하며 좋아했습니다.


열여덟 명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을 내는 순간이었습니다. 음식을 공부하는 사람은 인생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저의 믿음처럼 여기 모인 분들 모두 글쓰기에 대한 열망 또한 가득했습니다. 실제로 동화 작가를 준비하는 분도 계셨고요. '나는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인데, 두 개나 된다'며 자신의 이름 양운석을 재치 있게 소개한 분은 정말 감탄스러웠습니다. 저는 제가 알고 있거나 경험했던 글쓰기에 대한 지식을 나눠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엔 '요즘 젊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괴리를 느낀다'는 분의 말씀을 놓고 윤혜자 씨 등과 함께 한참 동안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고은정 선생은 '편성준 선생의 제철음식학교 강연 소식을 들은 약선요리학교 수강생 분들의 항의가 있었다'면서 한 번 더 강연을 해줘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제는 마침 저희 집에서 열리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이 쉬는 주말이라 내려갈 수 있었는데 약선요리학교도 매번 주말반이므로 쉽게 시간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윤혜자 씨의 눈을 쳐다보니 그녀는 벌써 다음 강연 날짜를 고르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무래도 지리산에 한 번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야 뭐, 윤혜자 씨가 내려가라면 내려가는 사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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