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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28. 2022

내가 고등학교 동창회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

정지우의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

나는 고등학교 동창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이다. 초등학교나 대학교 동창회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고등학교 동창회에서만 대화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겉돌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선후배들에게 두루 잘하고 매사에 방어적이면서도 스타 의식이 강했던 한 친구가 내게 가시 돋친 말로 몇 번 레이저 총을 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다들 골프나 사업 아이템에 대해 말할 때 나 혼자 구석에 앉아 요즘은 무슨 드라마가 재밌네, 무슨 책이 좋네 따위나 지껄이고 있었던 시대착오적 언행 때문은 아니었을까.


정지우 작가의 신작 『내가 잘못 산다고 말하는 세상에게』가 2쇄를 찍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스무 살 무렵부터 책을 쓰고 얼마 전엔 변호사 시험에 합격해 법률 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그 역시 내가 동창회에 나가 느꼈던 것처럼 '혹시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에 시달리던 사람이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사를 해서 일 년 만에 몇 억을 벌었다고 한다. 누구는 주식 투자로 몇 천을 벌었다고 한다. 이런 뉴스나 소식들은 정 작가의 전작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던 일이든 아니든 성실하게 일하고 평생 월급을 받으며 사는 건 희망이 없으니 어떡하든 목돈을 마련해 굴려야 한다는 충고와 어서 재테크 관련 스터디 모임에 가입하거나 그 분야의 책, 유튜브 방송을 보라는 권유가 넘쳐나는 세상. 정지우 작가는 이런 세상에서도 책 읽기와 글쓰기를 통해 너는 잘못 살고 있다는 그들의 말에 항거하는 '희한한' 사람이다.


이 책의 부제는 '시대의 강박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고민들'이다.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본받을 어른이나 이상적인 가치가 없다. 그나마 아름답거나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 기성세대가 있다면 유명인 또는 부자들뿐이다. 이들에게 정신적인 자산을 쌓으라고 한다면 (마거릿 애트우드가 강연장에서 들었다는) "그렇게 똑똑하다면서 왜 돈은 못 버는 거예요?"라는 질문에 시달릴 게 뻔하다. 그러나 정말 세상엔 돈이 최고인가. 돈이 될 만한 아이디어나 물건이 아니면 다 허망한 것인가. 정지우 작가에게 물어보자. 그는 핫플레이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그걸 SNS에 올려 그 순간을 기념하는 등 서로 으쌰 으쌰 해주는 삶이  훨씬 가깝게 도달할 수 있는 행복으로 보인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행복이다, 가 아니라 행복으로 '보인다'에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동창회에서 들을 수 있는 그들의 압도적인 행복은 어쩌면 '시대의 강박'에 의한 전시품일지도 모른다는 인식 말이다.


이 책은 '인생 뭐 있나. 돈 벌고 인기 있으면 그만이지'라는 속물적인 생각에 조용히 저항하는 백면서생의 글 모음이다. 그러나 그는 세상과 담을 쌓고 책만 파고드는 샌님이 아니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역삼동 빌딩에 매일 출근해 법률가로 일하면서도 쉬지 않고 매일 자신의 글을 쓰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아무것도 모르는 모범생이 아니라 날라리들과 교류하면서 공부도 잘하는 고등학교 동창놈' 같은 존재인 것이다. 나는 요즘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마음에 맞는 주변 친구들과 책과 연극, 드라마, 음식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게 훨씬 더 큰 공감과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뭔가 찜찜하면 정지우 작가의 글을 읽는다. 오늘 아침 다른 페이스북 친구의 글에서 읽은 '외롭다는 느낌은 주변에 사람이 없을 때가 아니라 나와 공감하는 사람이 없을 때 온다'는 말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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