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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Jul 29. 2022

《헤어질 결심》을 두 번 봐야 하는 이유

영원히 기억에 남기를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헤어질 결심》

어제저녁 아내와 함께 아리랑시네센터로 가서 《헤어질 결심》을 다시 보았다. 박찬욱 감독은 정훈희의 노래 <안개>를 듣고 이 영화를 만들 결심을 했다고 하지만 내 생각엔 '세상에서 가장 이루어지기 어려운 연애 상대를 굳이 찾아보면 살인사건의 형사와 피의자 정도가 아닐까?'라는 재밌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된 것 같다. 두 번째 보니 안갯속 같던 영화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탕웨이가 보살펴주던 '월요일 할머니'를 중심으로 스마트폰이 이용되었다가 버려지는 동선이 정확히 이해되었고 박해일과 탕웨이의 대사들을 주의 깊게 들으니 탕웨이의 두 번째 남편 임호신(박용우)이 죽었을 때 풀장의 물이 빠진 이유도 알게 되었다. 나아가 탕웨이가 그냥 놔둬도 곧 죽을 '철썩이'의 어머니를 굳이 살해했던 이유도 알게 되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중국어 번역기'라는 특별한 장치 덕분에 더 팔팔한 생명력을 얻는다. 중국어를 쓰는 주인공이 하는 한국말이라서, 또는 번역기를 통해 들려오는 한국말이라서 얼마나 새롭고 이질적으로 들리는지 생각해 보면, 게다가 연기 잘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탕웨이가 그 역을 맡아서 열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 콤비가 이 복잡한 이야기를 그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참 잘도 만들어 냈구나,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고산에서 실족사로 사망한(혹은 살해된) 탕웨이의 남편 기도수(유승목)가 출입국사무소에서 근무하는 한편 암벽 등반을 좋아는 유튜버이자 말러 교향곡을 즐겨 들을 정도로 고급한 취향의 남자라는 설정은 얼핏 억지스러워 보이지만 결국 영화를 위해 충실히 복무하는 기특한 복선들이다.


그래서 결국, 이 영화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일까. 간단히 얘기하자면 감독은 시랑의 시작점과 끝점을 일치시켜 어느 순간 완성하기보다는 영원히 기억에 남기를 선택함으로써 신화를 만들어 낸다. 즉, 살인사건을 일으켜서라도 박해일 곁으로 오고 싶어 하는 탕웨이는 결국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사랑을 경험하기보다는 차라리 영원히 기억되는 여인이 되고 싶어' 바닷가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가 앉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세상의 모든 작가들이 글을 쓰는 이유와도 같다. 그들은 자신의 글이 잠깐의 찬사보다는 바위 위 새겨진 글씨처럼 영원한 이야기로 남길 바란다. 박찬욱의 《헤어질 결심》은 이런 창작자의 근원적 욕망을 관념과 구체성을 적절히 비벼 넣어 형상화 하는데, 문체로 치면 김훈의 문장과 비슷하고 그림으로 떠올리자면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 같기도 하다. 아내는 "이 정도로 영화를 잘 만들면 칸느에서 감독상을 안 주기도 힘들겠어."라고 말했고 공처가인 나는 그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뭐, 공처가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 영화라면 아내의 평에 쉽게 반박하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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