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점 간판마다 붙어있는 '할매'라는 글자들을 보고
부산으로 여행을 와서 느낀 점은 서울에서처럼 부산도 할머니들의 활약이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오늘 오후에 해운대시장 거리를 걷던 나는 간판마다 등장하는 수많은 할매들을 가리키며 아내에게 물었다.
남편 : 할매들은 왜 나이 들어서도 쉬질 못하실까?
아내 : 그러게. 늙어서도 저렇게 매일 일을 해야 하니.
남편 : 근데 할배들은 일 안 하나? 그냥 죽나...?
아내 : 할아버지들은 할머니한테 일을 시키고 노니까...
남편 : 할매들이 불쌍해.
아내 : 그러게.
초등학교 때 나를 가르친 선생님들은 '음식은 여자들이 잘 하지만 결국 호텔 주방장은 다 남자다' 라며 터무니없는 남자들의 우월성을 주입시키곤 했다. 이는 중학교 때 선생님들도 고등학교 때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다(대학 때는 '할매순대국집'에 가서 술 마시고 노느라 교수님들 얘기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 여자들이 남자들에 비해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 있어서 그렇다거나 남성 위주의 역사 덕분이라는 통찰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제주에서 해녀들만 소라 전복을 따는 이유가 남자들은 고기 잡으러 먼 바다 나가서 다 빠져 죽어서 그렇다, 는 거짓말은 좀 심하지 않은가. 평생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기진맥진하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 생각이 나서 그런다. 이제라도 할매들을 쉬게 하자. 평생 그렇게 일 하셨으면 이젠 관광버스라도 타고 좀 놀러 다닐 만하지 않은가. 아직도 자식새끼나 영감태기들 대신 카운터에 앉아서 웃음을 팔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