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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03. 2022

절대 지면 안 되는 장군과 망하면 안 되는 감독의 만남

김한민의 《한산 : 용의 출현》

이순신 장군이 홀로 종이를 펴놓고 앉아 학익진을 구상하는 장면이 있다. 이순신은  종이 위에 배들을 배치하고 장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적어 넣으면서 고민하고  고민한다. 어떻게 하면 왜군을 완벽하게 물리칠  있을까. 나는  장면을 보면서 이순신의 얼굴 위에 김한민 감독의 얼굴을 올려놓아 보았다. 이렇게 거대한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마음에 부담이 클까. 얼마나 신경 써야  일이 많을까.


충무공 이순신은 23 23,  전승의 사나이다(62 62승이라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는 그가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증명하는 사실이지만 뒤집어 말하면  번이라도 지면 큰일 나는 사람이기도 했다는 뜻이 된다. 당시 정세는 이순신이 패하면 한반도가 그대로 일본에게 먹히는 것은 물론 명나라까지 위험해지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변요한이 역을 맡은 일본 장수 와키자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명나라에서 만나자' 서찰과 황금부채까지 받는다.

그런데 이는 영화의 연출을 맡은 김한민 감독도 마찬가지다. 유치했든 '국뽕'이었든 어쨌든 전작 《명량》은 1,761만이  국내 관객 동원 1 작품이다. 이번 작품 또한 전작 못지않게 엄청난 자본과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음은 물론이다. 홍상수가 영화 만들듯  수는 없다는 말이다.  감독은 어떻게 하면 실패하지 않을  있을까  고민하고  고민한다. 나처럼 스케일이  전쟁물이나 에픽을 그리 즐기지 않는 일반 관객을 위해서는 와키자카와 이순신이  전쟁을 운명으로 받들고 수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맥락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한다. 그는 2시간 9분의 러닝타임 거의 대부분을 이를 위해 쓴다. 빌런이 후지면 영화의 매력도가 떨어지므로 와키자카는 영리하고 신중한 인물로 그리고 이순신은 이보다  멋져야 하므로 싸움을 하는 명분도 분명히 한다.  부분은 조선의 편으로 돌아  항왜 '준사'와의 대화로 해결한다(" 전쟁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의와 불의를 위한 것이다.")

 영화는 연애 사건도 없고 간계나 질투 같은 양념도 없이 시종일관 전쟁에만 몰입하는데 여기서 관객들은 감독의 진정성을 느끼게 된다. 김한민은 섬세한 사람은 아니지만 뚝심 있는 스토리텔러인 것이다. 소설가로 치자면 김진명에 가깝다고나 할까. 마지막 40 간의 해상 전투씬은 많은 쾌감을 선사한다. 나는  쾌감을 만끽하기 위해 아이맥스 영화관을 선택했고  결정은 옳았다고 본다. 김한민은 끝까지 관객에게 친절하다. 예를 들어 학익진을 보여줄 때마다 그게 '바다 위에 쌓는 '임을 여러  설명해주고도 마지막에 원균의 입을 통해    언급한다. 심지어 전투씬에서 포탄 소리나  부딪히는 소리 등에 묻혀 대사가  들릴까  우리나라 배우들이 말을  때도 자막이 뜬다. 관객을 위해   있는   한다는  블록버스터 감독으로서의 미덕이라 생각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런 영화를 그리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한산 : 용의 출현》은 취향을 고집하느라 그냥 넘길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의 직업인 글쓰기와 강연을 위해서라도 당대의 텍스트를 빨리 접하는 게 바람직하다. 그리고 이왕이면 개봉 초기에 큰 극장에서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이런 영화를 나중에 노트북 화면이나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은 불어 터진 평양냉면을, 그것도 얼음이 다 녹은 후에 깨작거리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4D나 아이맥스까지는 아니더라도 꼭 극장에서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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