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안에서 유영하기』
김겨울의 팬이다. 김겨울의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을 구독하고 있고 그의 책을 몇 권 읽었으니 그의 팬이라 말해도 크게 어긋나는 얘긴 아닐 것 같다. 게다가 어제는 홍대 앞에 있는 책방무사 서울점에 가서 김겨울 작가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그가 일일판매사원으로 일하는 날이었기에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버스를 타고 책방무사로 간 것이다. 과연 17만 구독자를 가진 북튜버답게 서점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내가 이주일 전에 일일판매사원으로 일했던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책을 사러 온 사람이 많았다.
아내와 나는 요조 사장님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김겨울 작가에게 싸인도 받았다. 새로 나온 『아무튼, 피아노』나 『책의 말들』은 이미 읽었으므로 내가 모르던 책 『활자 안에서 유영하기』를 샀다. 그리고 '산울림'이라는 술집으로 가 장렬하게 술을 마시고 오늘 아침에 일어나 그 책을 펼쳐봤다. 이 책은 『운명』 『프랑켄슈타인』 『백 년의 고독』 『당신 인생의 이야기』 등 네 권의 소설을 읽고 김겨울이라는 독자이자 작가인 사람이 생각한 것들을 기록한 일종의 독서노트다. 소설책 딱 네 권을 읽고 그 책에 대한 생각만으로 한 권의 책을 완성한다는 것부터 대범한 발상이다. 사실은 서문만 살짝 읽고 덮으려고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김겨울이 쓴 서문의 어느 한 부분이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꿈이 이뤄지는 것이 꿈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는 것만 줄줄이 늘어놓는 지식 자랑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무자비한 자기연민으로 독자를 질식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 세 가지 모두 탁월한 수준에 이르면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겠으나, 셋 중 어느 것도 성취할 자신이 없으므로 내가 책과 나눈 소박한 대화를 최선을 다해 옮겨 적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믿었다.
그저 책과 나눈 대화를 옮겨 적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 책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여성의 권리 옹호』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등이 무시로 등장하는 등 그 깊이감에서 다른 저작들과의 차별점을 예고하고 있다.
김겨울의 유튜브를 시청하다 보면 그가 '전작주의'를 지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마거릿 애트우드든 배명훈이든 켄 리우든 어떤 작가의 작품 하나가 마음에 들면 그의 작품 전체를 다 찾아 꼼꼼하게 읽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작가에 대한 통찰은 물론 작품을 보는 안목도 높아지고 결국 북튜버로서 책에 대해 잘 말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는 것만 줄줄이 늘어놓는 지식 자랑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라고 밝히고 있으니 어찌 믿음직스럽지 않겠는가.
아마 나는 당장은 이 책을 읽지 못할 것이다. 이번 주는 특히 바쁘다. 그러나 언제든지 펼치기만 하면 마음에 드는 문장과 내용으로 가득한 책 한 권이 책꽂이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즐겁다. 오늘의 독전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