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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2. 2022

엄지가 두 개뿐이라 투 썸즈 업인 영화

이정재의《헌트》

이정재의 첫 감독작 《헌트》가 빼어나다는 소문은 개봉 전부터 파다했다. 이런 영화는 개봉 초기에 봐야 김이 빠지지 않는 법이거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계속 날을 잡지 못하다가 오늘 낮에야 겨우 관람을 했다. 1983년 버마 아웅산사태를 배경으로 '안기부에 잠입한 고위급 북한 스파이를 색출하는 이야기'라는 골격만 보면 얼른 《무간도》부터 떠올리기 쉽겠지만 정교하게 고증된 시대 분위기의 비장함과 품격을 따라가다 보면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에 더 가깝다. "당성 테스트는 오랜만이죠?'라는 정경순의 대사에서는 《노 웨이 아웃》을, 마지막의 파국은 《게임의 법칙》을....... 왜 이런 얘기를 마음 놓고 지껄이냐면 이 영화는 방금 열거한 레퍼런스들에 전혀 빚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평호(이정재)와 김정도(정우성)를 축으로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퀀스들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인데도 불구하고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게 만든다. 해외팀과 국내팀의 수장으로서 사사건건 맞붙던 두 사람의 감정 대립이 최고조일 때 북한 장교 이웅평이 미그기를 몰고 나타나는 장면조차도 개연성에는 해를 끼치지 않는다. 보통 이렇게 진지한 영화면 시간이 가면서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이 작품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다. 야비한 안기부장들 말고는 선악구도가 뚜렷하지 않아 두 진영이 계속 업치락 뒤치락하는 데다가, 자칫하면 관절이 뽑히고 쇠몽둥이로 두드려 맞는 잔인한 고문의 가해자가 몇 시간 만에 피해자로 변할 수 있다는 끔찍한 자각이 긴장의 끈을 놓치지 못하게 한다(한 번 찍히면 끝장난다는 점에서는 《매드 맥스》1편처럼 징그럽기도 하다). 이정재, 정우성을 비롯한 주연부터 정만식 전혜진 황정민 이성민 유재명 정경순 고유정은 물론 잠깐 비추는 우정출연, 단역에 이르기까지 모두 최선의 연기를 펼치는 것 역시 이 영화의 미덕이다. 물론 중요한 역까지 거리낌 없이 죽여버리는 작가와 감독의 결단력엔 박수를 아낄 이유가 없다.


암살 시도와 폭발이 존재하는 마지막 시퀀스에서 끝까지 목표물을 추격하는 이정재의 끈질긴 모습에 감동했다. 이건 주인공의 입장임과 동시에 이야기를 끝까지 추격하는 감독의 모습이기도 하니까. 나는 각색 작업에 참여했다는 동네 주민 오세혁 작가로부터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막상  정도로 멋진 영화일 줄은 정말 몰랐다. 함께 영화를  아내는 "남성 연예인  폼나게 나이 드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정재와 정우성은 정말 멋지게 나이를 먹는  같다."라며 뿌듯해했다. 극장 안에서 생각했다. 어차피   사는 인생인데  저렇게 피곤하고 불안하게 살아야 할까. 그러나 애국자도 매국노도 결국은 시대가 만들어낸다. 그때 태어났기에 어쩔  없이 해야  일을 하고 간다는 주인공들의 정당한 알리바이에 고개를 숙인다.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 같은 장삼이사가 지금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이  개뿐이라 아쉽다. 하나  있었으면 '쓰리 썸즈 ' 가능했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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