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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26. 2022

의자와 얽힘, 책과 얽힘

김진우 교수의 북토크

김 교수는 연애를 시작한 딸이 "엄마,  데이트를 하다 보니 내가 가는 공간은 다 돈으로 사야 하는 것 같더라."라던 푸념을 전하며 웃었다. 시내 어디를 가든 집이 아닌 곳에서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들어가는 곳이 거의 없더라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는 어떨까. 김 교수는 유학을 했던 코펜하겐을 예로 들었다. 학생 시절 숙소는 좁아도 공동 주방이 잘 되어 있어서 생활에 불편함이 없었다. 시내는 어디든 앉아서 쉬거나 책을 읽을 곳이 많았는데 정책적으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곳을 꾸준히 줄여서 지금은 예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한다. '아무나 앉을 수 있는 데가  많은 도시일수록 행복지수가 높다'라는 스승 얀헬 교수의 말 그대로다.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  걷다가 앉다가 보다가, 다시』 등의 책을  김진우 교수의 북토크를 보러 어제저녁 강남구청역 근처에 있는 '책과얽힘' 갔다. 조금 늦게 도착한 나는 책방 주인인 한상기 박사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열심히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수는 '소행성 책쓰기 워크숍'에서 함께 책을 쓰기도 해서 가깝지만 그보다 먼저  대학 써클 '뚜라미'   후배이기도 하다.

건국대 충주캠퍼스에서 디자인과 교수로 일하고 있는 김 교수는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의자에 특히 관심이 많다. 그리고 나아가 디자이너가 사회와 시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늘 탐구하는 학자다. 김 교수는 흔히 '명품'이라 불리는 상위 10퍼센트를 위한 디자인은 권력과 재력,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독점하기 마련인데 윤호섭이나 시게루 반 같은 공공 디자이너들에 의해 그 경계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는 걸 책과 강연을 통해 알려준다. 윤호섭 교수가 만든  '골판지 방석 의자'나  독일의 '24유로 의자' '100유로 아파트'도 다 같은 생각에서 나온 시도들이다.

북토크를 보러 온 분들도 디자인이나 건축 관련 일을 하는 분들이라  현재 디자이너의 위상, 생활공간에 대한 참신한 생각들, 앞으로 펼쳐질 바람직한 미래상 등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답변들이 오갔다. 김 교수는 '요즘 SF 소설가 천선란이 기획회의에 참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라는 화두를 던짐으로써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인문학으로 무장해야 함을 역설했고, 그 얘기를 듣던 한상기 박사는 예전에 삼성전자에서 디자이너들과 한 팀에서 일했던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저자의 책방 주인이 코드가 맞는 것이다. 말이 빠른 김 교수와 유머러스한 한 박사가 핑퐁처럼 주고받는 대화는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내고 디자인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생각을 글로 쓰고 책으로 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김진우 교수는 뛰어난 사람이다. 자신의 관심사에 경험과 아이디어를 더해서 책으로 펴내는 것도 대단한데 이후에도 북토크나 강연을 통해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또 전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세상은 이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저녁 7시에 시작한 행사가 9시쯤 끝이 났다. 나는 서점에 오면 책을 사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실천하기 위해 책꽂이를 서성였다.  '책과얽힘'은 과학이나 IT 책들이 많은데 나에게는 어려운 분야이므로 겨우 과학 소설 있는 곳을 뒤적이다기 아직 읽지 않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단편집  『아이, 로봇』을 발견했다. 한상기 교수님이 얼마 전 오동진 기자가 왔다가 두고 간 책이 몇 권 남았다고 하시길래 『당신은 영화를 믿지 않겠지만』도 한 권 샀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오동진 기자의 글을 몇 편 읽었고 집에 와서는 아시모프의 「이야기의 시작」과 「로비_소녀를 사랑한 로봇」을 좀 읽다가”당신 새벽부터 일어나 돌아다니느라 피곤했겠다.”고 한 아내의 말을 듣고는 곧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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