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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04. 2022

첫사랑의 애틋함을 제대로 담아낸 뮤지컬

김효근 아트팝 뮤지컬《첫사랑》

너무나 닳고 단 속물과 마주치면 '저 사람에게도 첫사랑이란 게 있었겠지?'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때의 순진함과 순수함은 다 어디 가고 저렇게 야비하고 노회한 인간만 남았을까. 어쩌면 그래서 '첫사랑'이라는 단어는 모두의 가슴에 촉촉한 온기를 불러오는 게 아닐까. 최근 연극 《초선의원》 극본과 영화 《헌트》 각색을 맡아 실력을 증명 중인 오세혁 작가가 극본을 쓰고 연출까지 겸한 뮤지컬 《첫사랑》을 보았다. 오 작가는 '김효근이라는 작곡가의 가곡들로 극을 만들 수 없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일 년 동안 김효근 작곡가의 곡들을 반복해서 들으며 극을 구성했는데 심지어 가까운 이들과 술을 마실 때에도 김 작곡가의 모든 노래를 틀어 놓았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일 년 만인 올봄에 열여섯 곡으로 이루어진 뮤지컬 '첫사랑'이 탄생했다.


대학가곡제에서 우승해서 이탈리아로 떠나고 싶어 하는 선우가 있고 그녀를 사랑하는 학보사 사진기자 태경이 있다. 이야기는 타임슬립을 통해 30 후의 태경과 현재의 태경을 오간다. 극은 복잡하지 않게 가난한 연인 태경과 선우의 이야기를 순하고 아름답게 끌고 간다. 제목에 붙은 '아트팝' 작곡가 김효근이 기존의 가곡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낸 단어라고 한다. 그는 경제학도이면서도 1 MBC 대학가곡제에서 우승한 경력을 가지고 있고 그가 만든 노래들은 TV 드라마 삽입곡 등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뮤지컬 내용 중에 대학가곡제 얘기가 잠깐 나오는데, 웃기는  내가  대회를 직접 정동에 있는 빌딩에 가서 보았다는 것이다. 1981 당시 라디오 프로그램에 보낸 엽서 상품으로 대학가곡제 티켓이 발송되는 바람에 얼떨결에 보러 갔던 것이다. 그때가 중학생이었으니 당연히 대상을  김효근을 기억하진 못한다)


이 뮤지컬은 아름다운 음악과 노래, 잘 짜인 극본 말고도 매력 포인트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윤영석, 변희상, 양지원 등 주연배우들의 호연이다. 《팬텀 오브 오페라》 초대 주연을 맡았을 정도로 명망이 높은 윤영석 배우는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긴장감에서 벗어나 '힐링'을 경험하는 중이라고 했고(오세혁 작가가 로비에서 말해주었다) 일본에서 활동하다 국내로 돌아온 변희상도 젊은 태경을 사랑스럽게 소화해냈다. 걸그룹 출신인 양지원은 얼굴과 목소리, 연기까지 너무나 러블리해서 선우 역으로는 다른 사람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공연이 끝나고 일어서는 관객들 중엔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많았다. 저마다 가슴속에 숨어 있던 첫사랑의 추억을 어렵지 않게 꺼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리라. 아내는 극이 복잡하지 않아서 좋았고 나중에 오케스트라를 'AR'로 바꾸고 코러스를 축소하면 소극장 공연으로 해도 예쁠 것 같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오늘 공연을 보기 직전에 동네 주민인 오세혁 작가가 자신의 신분을 이용해 우리 커플을 마포문화재단 분들께 소개해 주었는데, 마침 홍보팀 나다윤 대리가 내 팬이라고 하시며 스크랩한 인터뷰 기사까지 보여주는 바람에 깜짝 놀랐다. 오세혁 작가도 놀라는 눈치였다. 역시 착하게 살아야 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ABBA의 히트곡들로 이루어진 《맘마미아》, 김광석의 노래들로 구성된  《그날들》에 이어 또 하나의 명품 '주크박스 뮤지컬'을 갖게 되었다. 어제, 오늘, 내일 단 사흘 간만 공연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단 사흘밖에 하지 않는 공연에 대한 리뷰를 굳이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거꾸로 말하면 이렇게 좋은 공연이 사흘만 존재하기에 그 감동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써야 한다.  매진이라고 실망하지 마시라.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니 반드시 기억해 놓으시기 바란다. 아트팝 뮤지컬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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