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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08. 2022

한낮의 행운

뮤지컬 《킹키부츠》를 보게 된 사연


신용카드  장을 한꺼번에 잃어버리는 바람에 아내의 카드를 빌려 쓰는 신세였다. 꼼짝없이 집에서 지내다가 오후에 아리랑고개에 있는 아리랑도서관에 가서 강연 준비나 해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이동원 PD 느닷없이 전화를 했다. 오후에 특별한 일이 있느냐는 거두절미 질문에 아내는 “인덕션 기사님이 상판을 갈러 오시는  말고는 별일 없는데요.”라고 대답하자  PD 인덕션 공사를 뒤로  미룰  있느냐고 물었다. 지금 당장 뮤지컬을 보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얘기인즉슨, 자신이 예매해  ‘킹키부츠표가   있는데 갑자기 급한 회의가 걸려서 관람 기회를 날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야호 환호성을 지르다가 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친한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라 비싼 표를 예매했는데 돌발상황 때문에  가게   PD 심정이 오죽할까 하는 미안함 때문이었다.

낮 공연이 있는 수요일 오후 2시의 충무아트센터는 뮤지컬 팬들로 가득했다. ‘킹키부츠’는 소문대로 굉장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춤, 노래, 코러스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이 딱딱 들어맞았고 유머와 눈물이 교차하는 진심 어린 연기들이 있었다. 관객들은 찰리 역의 김호영과  롤라 최재림에 압도당했다. 아내가 평소 김호영 배우의 팬이라 나도 그의 연기에 더 주목하면서 보았다. 사실 김호영은 최근 턱 부상으로 하차한 김성규 대신 '킹키부츠'에 합류했다. 그러나 이미 지난 2016년과 2018년 시즌에 찰리 역을 한 적이 있었기에 두 번의 연습만으로도 공연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의 인스타그램에 가보니 그가 2014년 뉴욕에 가서 처음 킹키부츠를 보았던 일부터 자세한 이야기가 쓰여 있었다.


물론 그도 다른 관객들처럼 드랙퀸 롤라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런데 2016년에 갑자기 찰리의 입장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찰리를 되살리자! 그는 오디션에 임했고 찰리 역을 따냈다. 이번에 갑자기 투입되었어도 그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다이애나킴 여사가 얘기하셨다는 ‘김호영 천재설’ 때문이 아니라 이런 마음과 노력 덕분이었다(그는 글도 참 잘 쓴다. 댓글 중에 ‘어머, 책 내셔야겠어요’라는 내용에 나도 공감했다). 2016년 오디션 당시 사진도 올렸던데 나는 왜 그걸 보자마자 눈물이 핑 돌았는지 모르겠다.

‘kinki’는 변태적이라는 뜻이다. 이 단어에서 드랙퀸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여유와 서글픔이 함께 느껴진다. 그러나 막상 극을 대하면 너무 신이 나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고 소리를 지르게 된다. 이 뮤지컬은 천재 뮤지션 신디 로퍼가 처음으로 뮤지컬 음악을 맡은 역작이기도 하다. 네이버에 들어가서 임진모 선생이 쓴 신디 로퍼 이야기를 읽었는데 가슴이 찡해져 또 눈물이 났다. 아, 눈물이 흔해져서 큰일이다. 아무튼 김호영이 활약 중인 '킹키부츠'는 오는 10월 23일까지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상연한다. 가서 보면 주연 배우들은 물론 앙상블들의 칼 같은 가창과 화음, 율동만으로도 소름이 쫙쫙 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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