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성준 Aug 15. 2022

잊지 못할 환대와 야외 식사


갑자기 포항으로 이박삼일 여행을 왔다. 디자인을 전공하신 이경형 교수님의 ‘단구예술농장’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사과 농장이고 실제로 지금도 사과 농사를 짓지만 알고 보면 여기는 교수님의 작업실이자 문화 커뮤니티 기지라고 해야 할 것이다(단구는 ‘붉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사실은 오래전부터 아내의 친구인 ‘나무 달팽이’의 정미 씨 희관 씨 부부와 함께 오기로 했는데 우리가 바쁜 척하는 바람에 이제야 내려오게 된 것이다.

교수님의 따뜻한 환대에 우리는 모두 무장해제했다. 컨테이너들 사이 마당에 차려진 테이블엔 건강한 식재료가 만드는 맛있는 식사가 끼니때마다 즐거움을 주었고 집과 마당 전체에 늘 흐르는 KBS제1FM의 클래식 음악은 현재 삶의 윤기를 더해 주는 것 같았다.

둘째 날은 이 교수님의 고향 선배이기도 한 박수철 화백님의 작업실을 방문하기도 했다. 박 화백은 빛과 그림자를 아주 잘 표현하는 멋진 화가였다. 우리는 박 화백이 만들어주시는 팥빙수를 먹으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들을 바라보았다. 아내와 나는 특히 가족이 식사를 하는 그림이 너무 좋았다. ‘구만인상2’라는 작품도 아주 환상적이었는데 우리나라 지도 중 꼬리처럼 톡 튀어나온 곳이 동녁끝 ‘구만(九萬)’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화실 밖으로 나오니 바로 옆은 단란주점인데 이름이 ‘지우개’였다. 여기서는 술을 마시고 나쁜 기억을 다 지우는 모양이지? 하고 감탄했더니 아내가 깔깔깔 웃었다.

포항물회도 사주셔서 맛있게 먹었다. 나는 다른 음식은 다 잘 먹어도 신 걸 못 먹는 편인데 여기서 파는 물회는 빙초산을 들이붓지 않아 맛있었다. 전날의 과음 때문인지 일행 중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어서 아내와 나만 멀리 떨어져 앉아 각 일 병씩 소주를 마시는 추태를 부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맥주를 몇 병 사 왔지만 다들 지치고 또 다음날 아침에 이 교수님이 외국으로 떠나시므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잊지 못할 환대와 식사 자리였다. 새벽에 깨서 아내와 두런두런 이런 얘기를 나누다가 샤워를 하고 이 글을 쓴다. 게으름 피우느라 미루다 보면 고마운 마음이나 흐뭇한 기억도 그냥 생각만으로 그칠까 봐서 지금 쓴다.

매거진의 이전글 놀랍도록 운이 좋았던 소금책 행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