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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Aug 14. 2022

놀랍도록 운이 좋았던 소금책 행사

소금책 : 마야 리 랑그바드의『그 여자는 화가 난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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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책이었다. 거의 모든 문장이  '그 여자는 화가 난다'로 끝나는데(1500번 이상 나온다) 그 생경한 어미의 반복은 결국은 굉장한 울림과 쾌감을 만들어 내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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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난다의 김민정 시인이 『그 여자는 화가 난다』라는 시집을 쓴 마야 리 랑그바드가 두 달 반 정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덴마크로 돌아가기 전 여는 마지막 북토크는 작은 책방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는데 아내 윤혜자가 '성북동소행성에서  그 행사를 하면 어떠냐?'라고 물었고 김민정 시인이 흔쾌히 허락해 주는 바람에 '소금책 번외편'이 성사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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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작가였고 대단한 시집이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동성애자 소설가이자 시인이라는 특이한 정체성은 작가가 '발명'한 독특한 문장 형식(그 여자는 화가 난다)과 분명한 주장(국가 간 입양 거래 고발)이 만나면 얼마나 대단한 웅변이 될 수 있는지를 알려 주는 전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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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셀럽들이 우리 집에 모여드는 기적이 일어났다. 지은 지 80년 된 한옥 성북동소행성 마당에 김민정 시인, 송원경 통역가, 오은 시인, 박연준 시인, 김혜순 시인 이 왔고 김혜순 시인의 딸이자 아티스트인 이피(Lee Fi)화가, 나희덕 시인, 편혜영 소설가, 김봄 작가가 왔다. 관객 속에는 가수이자 작가인 요조도 섞여 있었다(이피 작가의 전시가 목포 오승우미술관에서 진행 중이라니 꼭 가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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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은 날이었다. 한옥 마당을 강연이나 모임 장소로 써보자는 윤혜자의 아이디어는 회를 거듭할수록 탁월한 기획이었음이 밝혀졌고 모인 사람들은 네모로 뚫린 하늘과 노란색 전등이 만들어내는 고즈넉한 분위기, 고양이 순자의 뻔뻔한 자태에 열광했다.  날씨마저 도와주는 날이었다. 며칠 내내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이 날만 그치고 하늘이 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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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녀는 화가 난다'라는 원제를 '그 여자는 화가 난다'로 고쳐준 김혜순 시인이 우리 집에 오신 건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마야는 10년 전 체코에서 열린 시 낭송 행사에서 김 시인을 처음 만났는데 그녀의 '바리데기 공주 시론'에 감명을 받아 그때부터 존경하게 되었다고 고백했고 김 시인 덕분에 한국어판으로 책을 낼 수 있었다고 고마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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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시인의 시원시원하고 능숙한 진행이 돋보이는 행사였다. 시종일관 다정하고 유머러스한 오은 시인이 자리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음은 물론이다. 그는 이 시집을 70권이나 사서 지인들에게 선물하는 놀라운 애정을 과시한 '과독자'다(김민정 시인이 진행 도중 이젠 71권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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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운전사로도 활약한 작가 유성원 과장님이 인스타 라이브를 담당해 주었다. 광장시장 박가네에서 주문해  빈대떡과  마약김밥, 민정 시인이 가져온 와인이 활약했고 언제나   도움을 주는 고양이 책방 '책보냥' 김대영 작가와 손님방의 김혜민 , 동네 주민 성화순 선생이 사람들과 우리 커플을 기쁘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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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도 여한이 없다. 죽겠다는 얘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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