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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성준 Sep 12. 2022

왜 지금 하마구치 류스케가 최고인지 알 수 있는 영화

《우연과 상상》리뷰


광화문시네큐브에서 보려다 바빠서 놓쳤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우연과 상상》을 티빙을 통해 보았다. 어제 티빙을 해지했는데 '이번 달 28일까지는 뭐든지 볼 수 있다'는 안내가 뜨길래 마지막으로 뭐 볼 거 없나 하고 고르다가 발견한 작품이다.

세 가지 단편으로 구성된 영화이고 첫 번째 에피소드 택시 안에서 오로지 대화만 주고받는 두 친구 츠구미(구미 짱)와 메이코의 씬에서 감탄 또 감탄을 거듭했다. 가네시로 가즈키의 소설 첫 장면처럼 촬영장에서 만나  작업 후 같은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두 친구.  "에에~?"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오자 택시 운전사가 운전을 하며 뒷좌석의 두 손님을 슬쩍 돌아보는 장면이 나온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시작될 거라는 기대감을 주는 장면이다. 새로 생긴 남자 친구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순간부터 두 사람의 대화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가볍게 만나 차나 한 잔 하자고 했다가 술 한 잔으로 바뀐 이야기, 결국은 둘 다 막차를 놓치고 15시간을 같이 있었고 충분히 첫날 같이 잘 수도 있었는데 결국 그러지는 않고 다음을 기약한 이야기 등등. 좁은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뿐인데도 농밀하고 공감 가는 대화는 보는 사람의 상상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린다. 그런데 구미가 내리자마자 타고 온 택시를 타고 다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메이코의 반전이 놀랍다. 택시 안에서 들었던 구미의 새 남친은 사실  메이코의 2년 전 남자친구였던 것이다.

두 번째 이야기도 재밌다. 아쿠다가와상을 받은 불어 교수 세가와를 찾아가 소설의 특정 대목을 낭독하며 유혹하는 늦깎이 대학생 나오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섹스 파트너이자 유급생인 사사키의 부탁으로 교수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 언론에 팔려고 했던 사실을 결국 당사자에게 고백하게 된다. 그 과정이 매우 건조하면서도 에로틱한데 마지막에 녹음 파일을 보내줄 테니 그걸 들으며 한 번만 자위를 해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는 장면이 재밌다.

세 번째는 20년 만에 우연히 만난 두 여고 동창생 이야기인데 알고 보면 착각 때문에 벌어진 사건이다. 모르는 사람이기에 더 무심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이 에피소드의 통찰력이다.

어떤 분은  번째 이야기가 제일 좋다고 하던데 나는 단연  번째다. 물론  번째,  번째도 좋다. 영화를 보면서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있을까 생각했다. 배우들이 일본인이고 일본어로 얘기할 ,  영화는 현대인이라면 지구촌 어디서나 공감할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이고 씁쓸하게 끝나지도 않아서 좋다. 아무래도 하마구치 류스케가 겁을 내지 않고 이야기를 장악할  있기에 가능했던  같다. 거장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드라이브 마이카》에서도 그는 원작의 명성에 전혀 주눅 들지 않았을  아니라 새로운 설정과 이야기를 덧붙여 어쩌면 원작을 능가하는 굉장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영화도 제목이나 포스터만으로는 짐작할  없는 흥미로운 지점들이 숨어 있다. 영화를  보자마자 다시 처음부터    보고 싶어졌다. 아무래도 9 28 이전에 그럴  같다.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곰상) 수상작이다.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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